깜짝 아이디어 살 사람 없소?
  • 고명희 기자 ()
  • 승인 1992.02.20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후죽순 이벤트 회사 설립… 영세성 극복, 전문성 획득이 과제

모대학 응원단장 출신인 宋泰一씨는 스포츠 이벤트 대행회사 ‘연 · 하나로기획’의 사장이다. 손놀림 하나만으로도 관중을 좌지우지하는 타고난 ‘끼’ 덕택에 송씨는 지난 89년에는 올림픽 펜싱경기장에서 국내재벌그룹의 ‘창업 50주년’ 행사를 치어걸과 군악대, 아기선녀를 등장시켜 축제한마당으로 질펀하게 엮어내기도 했다.

연간매출액 15억원이 넘는 패션쇼전문 이벤트회사 ‘에이팀’ 사장 禹星華씨는 ㅅ대학 수학과 출신이다. 겉으로 보아서는 ‘끼’와는 다소 거리가 먼 듯하다. 하지만 우씨는 무대위에서만 펼쳐지던 패션쇼를 거리고 끌고나가 대중에게 ‘사건’으로 다가가도록 한 숨은 재주꾼이다.

이벤트란 영어단어 뜻 그대로 ‘사건’이다. 이벤트사업이 발달한 일본의 이벤트프로듀서 연합회에서는 ‘목적을 가지고 대상이 되는 사람들에게 특정기간에 특정장소에서 개별적이고 직접적으로 자극을 주는 미디어’로 정의하고 있다. 광고가 불특정 다수에게 방출되는 일방적 메시지라면 이벤트는 현장에 찾아온 대중들에게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쌍방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데 차이점이 있다. 지난해 말미를 장식한 ‘컴퓨터 영상축전전시장’(12월20~23일 · 종합무역전시장)은 공공차원의 이벤트이며, 백화점의 바겐세일과 패션쇼 등은 상업적 목적을 지닌 이벤트이고, 문화예술행사로서도 이벤트를 벌일 수 있다.

이런 일을 대행하는 국내 이벤트대행회사들이 88올림픽을 치르면서 급격하게 늘어나 현재 약 5백여개로 추산되고 있다. 시설 및 자본 기술력등 초기 투자비용없이 손쉽게 시장참여를 할 수 있다는 점, 여기에 93년으로 예정된 대전엑스포 박람회에서 ‘일거리’가 많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심리탓에 이벤트대행회사들은 한달에 7~8개가 마치 대학에 ‘서클’생기듯 문을 열고 있는 것이다.

공모전에서 아이디어 도용당하기도
현재 이벤트사업을 펼치는 곳은 크게 나누어 광고대행사 연예프로덕션 페션에이전시, 그리고 기획 및 용역을 대행하는 이벤트대행회사 등이다. 광고대행사가 기업홍보와 판촉전략차원에서, 연예프로덕션과 패션에이전시는 각 단체에 소속된 가수나 모델을 내세워 어느 정도 자기기반을 가지고 이벤트를 진행해온데 비해 신생 이벤트대행회사들의 자기기반은 ‘아이디어’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이벤트를 깊이있는 전문분야로 인식하기보다는 단순한 행사의 개념으로 파악하고 수주만 할 수 있으면 나도 할 수 있다는 ‘착각’ 속에서 뛰어들어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지난 90년 서울연극제는 한 이벤트회사의 현실성없는 기획으로 인해 준비과정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한국연극협회 유용환 사무국장은 “연극단체끼리 부랴부랴 수습하느라 애를 먹었다”면서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아찔하다고 한다. 내용인 즉 이렇다.

ㅋ이벤트회사는 연극협회측에 연극단체들의 연극제참여비 명목으로 1억5천만원을 내놓는 대신, 그동안 연극단체들이 관리해온 광고권과 연극표 판매권을 요구했다. 스폰서를 구해 참여비를 해결하고, 자신은 연극표의 판매수익을 챙기겠다는 계산이었다. ㅋ회사는 서울연극제를 알리는 포스터까지 제작했지만, 계획과는 달리 스폰서는 나서지 않았고 엎친데 덮친 걱으로 표판매마저 여의치 않았다. 급기야 ㅋ회사는 개박 10일 전에 두손을 들고 말았다.

지난해 ㅊ이벤트회사에서 기획한 ‘부산바다축제’도 개막 며칠을 앞두고 돌연 취소되었다. 참가를 위해 부산으로 모여든 문화계 인사들의 분노를 산 이 사건 역시 이벤트회사측이 스폰서를 구하지 못해서 빚어진 일로 알려졌다.

신생 이벤트대행회사들은 대부분 서너평 되는 사무실을 근거지로 전화 한두대, 그리고 몇달 버틸 정도의 자금만으로 문을 연다. 인적구성으로는 주로 ‘쇼’와 끄나풀로 엮어질만한 응원단원 방송관계자, 또는 공연기획분야에서 일해본 사람들이 배부분이다. 이벤트라는 관점에서 업무를 관장해 본 것이 아니고, 자기 일을 하다보니 음으로 양으로 이벤트와 관계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벤트 각 분야에서는 나름대로 전문성을 갖고 있지만, 이벤트전문인으로서의 종합능력에서는 문제점이 노출된다. 아이디어는 반짝이나, 이를 추진하기에는 자금 · 운영 · 인력면에서 영세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이벤트의 ‘노하우’도 전무한 것이다.

게다가 이벤트에 대한 수요가 아직은 한정적이어서 많은 업체들은 살아남기 위하여 전문화보다는 ‘무엇이든 합니다’라는 비전문성을 노출시키고 잇다. 그뿐만 아니라 원가에 지나지 않는 출혈수주를 하고 있으며, 그러다보니 제작의 질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벤트 내용의 질이 떨어지는 요인 중에는 하부구조가 약하다는 점도 지적되고 잇다. 이벤트는 그 속성상 인간의 마음에 호소한다는 점에서 축제분위기 속에서 재미있게 진행되어야 한다. 따라서 효과적인 메시지 전달을 위해 연극 무용 판토마임 등을 보조수단으로 동원하여 문화적 향기로 포장된 ‘쇼’형식으로 구며지며 음향 · 조명 · 특수효과 등 하부고조의 절대적인 협조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하부구조를 담당하는 업체들은 대부분 ‘녹화’를 주로 하는 방송국 시스템 외주업체들이어서 ‘현장’을 중시하는 이벤트의 속성에는 적합하지 않은데다가 그나마 그 수도 한정되어 창의적인 이벤트를 기대하기가 어렵다.

‘이벤트’인가 ‘해프닝’인가
게다가 열악한 이벤트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것은 기업이 아직까지 이벤트의 효과에 대해 회의적인 점이다. 광고대행사 중에서 최초로 86년 이벤트팀을 만들었던 제일기획 崔起相씨(SP 2팀장)는 “기업에서는 이벤트가 가지는 화제성이나 파급효과에 대한 인식은 가지고 있으나, 투자되는 비용에 비해 되돌아오는 실익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다”고 전한다. 따라서 창조적인 아이디어로 꾸며낸 기획서에 대한 대가 마저 제대로 지불하려 들지 않아 이벤트업계에서는 행사의 기획료는 ‘능력껏’ 받아가는 것이 통설도 되어 있을 정도라는 것이다. 그래서 심한 경우 악성기업에서는 이벤트회사들의 영세성을 이용하여 대여섯회사의 기획서를 가져오게 한 뒤 아이디어를 훔쳐내는 일까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이벤트사업을 시작한 도지철씨(ㅅ이벤트 대표)는 그런 피해자 중의 한 사람이다. 도씨는 ㅂ백화점이 개점행사를 공모한다는 소식을 듣고 근 한달을 걸려 기획서를 만들었다. 하지만 기획서는 채택되지 않았다. 아이디어가 참신하지 않았나보다고 체념한 도씨는 그러나 막상 ㅂ백화점 개점행사장에 가보고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도용당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관객참여를 위해서 저는 일종의 게임을 기획했었거든요. 음향계측기를 사용하여 누가 가장 소리를 크게 내지르는가 시합을 벌이거나, 누가 외발자전거를 오래 타는가 하는 것 등이었지요.” 자신의 아이디어가 다른 기획에 짜깁기되어 있었지만, 이를 보호받을 만한 제도적인 장치가 없어 하소연할 수도 없었다고 도씨는 덧붙인다.

‘이벤트왕국’으로 불려지는 일본은 동경 올림픽과 오사카 만국박람회 등을 치르면서 80년대 후반 일본에 불어닥친 ‘이벤트열품’을 경제성장의 발판으로 삼았다. 현재 일본의 이벤트산업은 연 10%의 성장률을 보이면서 3조엔에 달하는 광고시장에 거의 육박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불기 시작한 이벤트열품은 현재 양적으로는 엄청난 팽창을 가져왔다. 하지만 여러 가지 상황으로 비추어볼 때 국내는 아직 이벤트산업이 발달할 여건은 성숙되지 않은 듯 보여진다.

한국이벤트개발원 趙達鎬 원장은 “정부관계자 · 기업 · 광고대행사 · 이벤트대형회사들이 모여 앞으로 맞이할 이벤트시대를 대비하기 위한 준비를 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현재 이벤트산업의 과도기적 상황에 비추어 이벤트사업에 뛰어드는 사람은 보다 신중해야 된다고 충고한다. 자신의 가능성에 도전하는 치기만으로는 십중팔구 ‘참신한 이벤트’가 아니라 우울한 ‘해프닝’으로 끝나고 마는 사례를 숱하게 보아왔기 때문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