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 ‘적’은 민주당 내부에
  • 워싱턴·김승웅 특파원 ()
  • 승인 2006.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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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건파 행정부에 의회는 급진파 주축



‘의회에 발목잡힌’ 카터와의 차별화 숙제


클린터 압승이라는 간판적 요소를 일단 제쳐내고 미국 정치의 본고장이 되는 국회의사당 앞을 찬찬히 들여다 보면 지난 3일의 미국 선거는 간과할 수 없는 몇가지 기록을 남겼다.

우선 투표율에서 전체 유권자 가운데 55%(1억)가 투표에 참가해 지난 20년 이래 최고의 투표율을 보였다(88년 투표율은 50.2%)는 점을 들 수 있다. 또 최초의 흑인 여성 상원의원을 포함한 4명의 여성 상원의원이 새로이 등장해 이제 여성 상원은 6명이 됐다.

콧대 높기로는 영국 상원도 손을 들고, 시시한 정강이나 당령 따위는 헌신짝처럼 버린다 해서 흔히 ‘1백명의 대통령’ 모임이라 불리는 미상원이라는 정치귀족의 활동 무대에 이제 6명의 여성 상원이 활동하게 됐다는 것은 최초의 여성 대통령의 등장도 가능하다는 예고일 수 있다.

흑인과 히스패닉계 및 아시아계 소수민족의 등장도 가히 기록적이다. 미연방 하원의 흑인 의원은 2년전보다 13명이 늘어난 38명, 히스패닉계는 6명이 늘어난 17명, 그리고 아시아계는 이미 한국에도 이름이 널리 알려진 한국계 미국인인 김창준씨(캘리포니아주 다이아몬드바 시장)가 연방하원에 거뜬히 당선됨으로써 4명으로 각각 늘어났다.

일리노이주에 출마한 흑인 여성 캐롤 모슬리 브라운 후보(민주)가 당선해 미의회 사상 첫 흑인 여성 상원의원이 된 것도 그렇다. 유일한 미국계 인디언인 벤 나이트 호스 캠벨도 상원의원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를 눌러 29년 이후 처음으로 인디언 원주민 출신이 의회에 진출하게 됐다. 이밖에 아시아계 미국인 가운데 일본계인 이노우에 의원이 상원에서, 역시 일본계 미국인 패시 밍크 의원이 하와이주 하원선거에서 7선으로 당선했다. 그러나 중국계 미국인 S.B 우 후보는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첫 흑인 여성 상원의원 탄생

그리고 지난 10여년간 미 50개주마다 정치쟁점이 되어온 국회의원 임기제하 문제와 관련해 새로이 등장한 하원의원이 1백5명으로 늘어나 전체 하원의원 4백35명의 4부느이 1(상원은 10분의 1)을 상회하게 됐다는 점을 빠트릴 수 없다.

가장 괄목할 기록은 이러한 수치상의 변화보다는 지난 20년 남짓 상 · 하 양원을 지배한 민주당이 이제 행정부쪽에도 클린턴 행저부를 탄생새켜 의회와 행정부를 장악하는 ‘실명제의 집권 민주당’이 됐다는 사실이다. 민주당은 그동안 의회를 줄곧 장악해 왔으나 행정부쪽에는 공화당 정부만이 들어서는 이율배반적인 정치구도였다.

의회는 민주당 장악, 백악관은 공화당 장악이라는 파행 구조 속에서 지난 20여년간 비정상적 운신만을 되풀이해온 민주당으로서는 정작 ‘실명제’의 집권 민주당이 됨으로써 또 다른 호된 시련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백악관을 20여년동안 지배해온 경험의 부재가 바로 그것이다. 한때 카터 집권의 4년 경험을 가지고 있으나, 그 4년이야말로 민주당 최고의 진통기였다고 보아 무방할만큼 카터와 의화 간의 관계가 최악의 경지에 처했던 기간이었다. 카터는 의회에 발목을 잡혀 사과하기에 바빴고, 이같은 민주당 대통령의 저자세는 민주당내 지도자들의 반발을 불러 결국은 12년동안 공화당이 장기집권을 하는데 일조했을 뿐이다.

의회와 갈등 심했던 카터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상원(1백석)에서는 1석이 늘어난 58석을 차지했다(실제로는 90년 선거 때와 마찬가지로 578석이나, 오는 24일 조지아주 재선거에서 민주당의 파울러 현직 의원의 당선이 확실하다). 대신 하원 의석은 지난 90년 선거 때보다 11석이 줄어든 2백55석에 그쳤고 공화당은 1백66명에서 1백75명으로 9석이 늘었다.

따라서 민주당의 의회 장악이라는 20여년 전통이 깨진 것은 아니나 상원에서 60석 이상의 필리버스터 저지선을 구축하는 데는 실패했다.

또 하원에서 9석을 늘린 공화당의 체온은 상원쪽에도 그대로 전달되어 선거 다음날 공화당 상원 지도자 로버트 돌(캔사스주) 의원의 입에서 “클린턴 정부의 앞날에 반드시 장미정원만이 널려 있다고 믿는 것은 커다란 오산”이라는 경고성 발언이 나왔다.

역설적인 것은 클린턴 정부가 정작 두려워할 사항은 공화당쪽에 있다기 보다는, 이미 카터 집권 때 첨예하게 드러났듯이, 의회내 민주당과의 사이에 예상되는 알력과 갈등에 있다는 점이다.

의회내 민주당과 클린턴 행정부가 표방하는 민주당은 서로 그 뿌리나 궤를 달리 한다고 볼 수 있다. 정치색깔로 구분하자면 의회내 민주당은 전통적인 민주당 색깔인 급진 · 진보 노선인데 비해 클린턴 행정부의 민주당 노선은 온건 · 중도 노선이다. 의회내 전통적인 민주계 인사들에게 클린턴이라는 인물은 한갖 대통령이 되기 위해 민주당이라는 외투를 빌려 입은 남부 출신의 한 차용인에 불과하다. 카터가 등장할 시절 민주당 내부에 팽배하다 급기야 ‘지미, 그는 누구인가’(Jimmy, Who?)로 표현됐던 과거 당 내의 적대감 내지 반발의식이 이번 클린턴의 경우에도 완전히 불식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른 사람이 아닌 클린턴 스스로 이 사실을 체감해왔다.

클린턴이 민주당 인사를 찾아 국회의사당에 모습을 처음 나타낸 것은 그가 대통령 후보로 등장하고 10개월이 지난 7월의 전당대회 때였다. 민주당 역시 골수 민주당원이 아닌 클린턴에 대해 당차원의 지지나 홍보를 가급적 자제하고 그의 당선 여부만을 지켜보는 방관적인 태도로 일관해 왔다. 따라서 대통령에 당선된 클린턴이 안고 있는 일차적인 과제는 이처럼 연결 고리를 갖지 않은 자신과 당과의 관계를 어떻게 하면 발리 보완관계로 격상시키냐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그가 선거공약 가운데 경제불황의 타개를 위한 핵심 문제로 강조한 고용 창출과 중산층 증세, 그리고 직업교육 확대는 무엇보다도 먼저 입법화가 선결 문제이고, 입법화를 위해서는 의회내 자당 지도급 인사의 적극적인 지지와 성원이 필요하다.

클린턴에게 다행한 일은 자신이 대외적으로 온건 · 중도 노선을 표명하면서도 민주당내 핵심 단체인 민주당지도자위원회의 맴버로 활약했고, 최근 2년 동안 그 위원장을 역임한 사실이다. 클린턴은 당분간 이 단체에 소속된 민주당 인사 가운데 가장 강자로 불리는 샘 넌 미상원군사위원장이나, 이번에 하원의원에 재선된 아스핀 군사위원장 등을 중심으로 의회 내 교두보를 확보해 상 · 하 양원과 가급적 발리 친화력을 갖는 데 전력해야 강력한 정부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클린턴은 의회 길들이기 명수

그가 지나나 12년간 아칸소 주지사로 재임하면서 주의회를 상대로 성공적이고 익숙하게 펼쳐온 의회 길들이기 경험(설령 연방의회와 주의화라는 차이는 있다 치더라도)은 상당히 효력을 발휘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파행을 거듭했던 카터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도 클린턴은 의회와의  긴말한 관계가 필요하며, 대의회 공략은 그가 내년 1월20일 취임 직후 선보일 ‘1백일 작전’의 골간이 될 것으로 보인다.

클린턴 행정부의 등장에 관해 상원내 민주당 지도자인 조지 미첼(메인주) 의원은 “의회를 다루는 그의 뛰어난 솜씨를 알고 있다. 그와 좋은 관계를 갖기를 기대한다”고 일단은 환영의 뜻을 표하고 있다. 하원의 토머스 폴리 의장(민주 · 워싱턴주)도 “새정부와 의화와의 적극적인 협조를 기대한다”고 축하의 뜻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깊숙한 뜻은 클린턴 행정부의 동태를 지켜본 후 평가하겠다는 유보적인 것이다. 그가 카터와 같은지 다른지 지켜보겠다는 태도이다.

이에 대해 아칸소주 출신 상원의원으로 현재 클린턴의 유일한 대의회 창구 역할을 맡고 있는 데이비드 프라이어는 “클린턴은 결코 카터 형의 인물이 아니다”하고 못박는다. 프라이어는 요즘 동료 의원을 설득하기에 바쁘다. “그는 부시나 카터처럼 의회를 무시하지 않는다. 보라구, 그는 귀에다 전화기를 달고 다니는 대통령이 될테니까!”

클린턴은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서야 강적다운 강적을 만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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