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ㆍ23 개각은 종합선물세트
  • 서명숙 차장대우 ()
  • 승인 1995.0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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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ㆍ전문화 ‘명분’ 요란…지방자치 대비ㆍ정권 연장 등 ‘배경’은 따로



 김대통령의 인사 행태가 크게 달라졌다. 전면 개각이 있기 전부터 언론계 주변에서는 이번 인사가 상식의 범주안에서 검증된 인물들로 채워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돌았다.

 개각 과정도 과거와는 달랐다. 과거 김대통령은 안기부 기밀 인사 자료와 청와대 인사 자료 외에도 상도동을 떠날 때 가지고 들어간 개인 수첩을 활용했으며, 평소 교분이 두터운 외곽 인사들에게 ‘쓸만한 사람을 천거해 달라’고 주문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진다. 물론 그 과정은 철저히 보안에 붙여졌다. 자연히 김대통령의 인사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김대통령이 이번 개각에 앞서서는 “과거는 불문에 부치되 능력ㆍ애국심ㆍ청렴성 세계화 감각을 중시하겠다”면서 인사의 4대원칙을 미리 밝혔다. 인물을 물색하는 작업도 철저하게 ‘청와대 인사 자료’의 범주 안에서 3배수로 명단을 작성하고 각 부처의 내부평가 등 여러 요인을 종합한 뒤 좁혀가는, 전형적인 인사 방식을 택한 것으로 알려진다. 언론의 사전보도가 상당 부분 들어맞은 것도 이런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청와대 상식이냐, 국민 상식이냐
 그러나 이번 인사에서 가장 강조된 '상식'은 청와대와 언론의 상식일 뿐, 일반 국민들의 상식과는 거리가 멀다는 비판이 일부 사회 단체를 중심으로 강하게 일고 있다.

 우선 權寧海 안기부장과 安又萬 법무부장관이 상식 범주에서 ‘검증된 인물 인가’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권영해 안기부장은 문민 정부의 첫 국방부장관을 지내면서 하나회 인맥을 과감히 정리하고 군 개혁을 주도하는 업적을 남겼지만, 재임 내내 율곡사업 비리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90년 12월~ 93년 2월 군 전력 증강사업(율곡사업)의 최종 심의 기구인 전력증강위원회위원장을 지냈기 때문이다.

 당시 국방부 차관이던 그는 율곡사업을 심의하는 실무 책임자로서 사실상 일을 도맡아 했기 때문에, 율곡사업에 누구보다도 깊이 관여돼 있었고, 이로 인해 감사원의 율곡감사 때에도 집중적인 조사 대상이 됐었다. 본인의 연루 사실은 구체적으로 밝혀진 것이 없지만, 동생 영호씨가 무기중개상으로부터 5천만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물의를 빚었다. 이 때 권국방이 제출한 사표는 그를 아끼는 김대통령에 의해 반려됐지만, 이후 군내 포탄 수입 사기 사건을 상부에 보고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 결국 자리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권부장을 다시 발탁한 배경에 대해 “김대통령이 하나회를 성공적으로 제거하는 등 군 개혁에 앞장선 그를 워낙 애석해 했고, 그와 관련된 각종 소문이 근거 없는 것으로 이미 검증됐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권부장에 대한 검증이 철저히 공개적으로 이뤄졌으며, 많은 국민이 거기에 공감한다고 수긍하기는 힘들다. 율곡비리와 관련한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가 한 점 의혹도 남기지 않고 철저히 진행됐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문민 정부 아래서 학자 출신인 김 덕부장을 거치면서 문민화 과정을 거친 안기부장 후임으로 군 출신을 앉혔다는 것도 상식을 벗어난 인사로 지적되고 있다.

 안우만 법무부장관은 권부장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상식선의 검증이 의문시되는 경우다. 판사 출신 법무부장관으로는 사상 세번째인 안법무는, 이전에도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 물망에 올랐지만 번번이 청치 판사라는 전력 시비에 휘말려 좌절됐던 경험을 안고 있다.

 지난해 9월 새로운 헌법재판소장에 안우만 전 대법관이 내정됐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에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에서는 강력히 유감을 나타내고 임명 반대 서명 운동을 벌였다. 당시 민변은 ‘새헌법재판소장 임명에 즈음한 우리의 견해’ 라는 성명서에서 ‘그는 이력이 말해 주듯이 과거 유신 및 5, 6공 시절 정치 권력에 영합ㆍ굴복하여 납득할 수 없는 재판을 했거나 시국 사건 재판을 조정ㆍ통제했던 우리 사법사에서 대표적인 정치 판사 중의 한 사람이다. 그의 이름 석자가 헌법재판소와 관련되어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것 자체가 우리국민에게는 심한 모욕이 된다는 점을 정부는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라고 맹렬히 비난했다.

 법조계 일각에서 안법무를 대표적인 정치 판사로 지목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재야 법조인들은 그 대표적인 사례로 83년 서울형사지법 수석부장으로 재직할 때 당시 김영삼 민주당 총재비서실장인 김덕룡씨에게 언론 자유를 봉쇄한 악법중의 하나였던 ‘국가모독죄’를 위반한 혐의로 구속영장을 발부한 사실을 들고 있다.

 지난해 대한변협이 사법부 개편에 대한 결의안을 채택하는 등 재야 법조계가 사법부의 근본적인 개혁을 요구하고 나섰을 때에도 법원행정처장으로 있던 안씨는 “정치판사는 과거에는 물론 현재에도 존재하지 않으며, 미래에도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판사로서는 보기 드물게 조직 장악력이 뛰어난 보스형으로 알려진 안법무는 대인 관계가 폭넓은 편이다. 경남고 출신으로 오래 전부터 김대통령과 두터운 교분을 쌓아온 처지여서, 언론계에서는 김대통령 취임 이후 언젠가는 중용되리라고 내다보았다. 따라서 안법무 발탁은 김대통령과 언론계의 ‘상식’일 뿐, 법조계의 상식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결과라는 것이 법조계 주변의 지적이다.

 상식선 내의 ‘검증된 인사’가 포괄적인 인사 윤곽이었다면, 김대통령이 제시한 4대 인사 원칙은 구체적인 기준이었다. 그러나 김대통령은 자신이 밝힌 4대 기준 가운데 하나인 전문성 측면에서도 크게 설득력을 잃는 인사를 단행했다. 교수 출신들을 정리하고 실무 경험을 가진 인물들로 채워넣은 외교안보팀과, 대부분 유임하거나 자리를 바꾸는 선에서 끝난 경제팀의 경우는 그 보수적인 색채에도 불구하고 일단 세계화와 전문성이라는 기준을 중시한 결과로 평가된다. 그러나 내무부ㆍ노동부ㆍ환경부ㆍ문화체육부ㆍ총무처 등에서는 정치적 의도를 내포한 지역 안배에 치우친 나머지 전문성이 완전히 무시되다시피 했다. 지역 안배조차도 민자당의 세력 기반이 아닌 호남은 사실상 배제하다시피 했다.

본인도 의아하게 여긴 전문성
 李炯九 노동부장관은 경제기획원과 재무부를 두루 거친 정통 경제 관료 출신으로 산업은행 총재로 있다가 느닷없이 노동 행정의 책임자로 부름을 받았다. 장관 하마평이 나도는 시점에서도 이장관은 주변 사람들에게 “글쎄, 노동은 아닐거다. 나는 그쪽과 관련이 없는데”라면서, 그 자신이 노동부장관설을 믿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경제 마인드만으로 노동 정책에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은 기본 상식에 속한다. 따라서 충남 청양 출신인 이장관을 발탁한 것은 여권의 지역 기반인 충남권을 고려한 ‘지자제용 배려’로 풀이되고 있다.

 金重偉 환경부장관(경북 봉화)과 金瑢泰 내무부장관(경북 안동) 역시 ‘TK정서 달래기’ 포석으로 지적된다. 3선인 김중위 장관은 6공의 대표적인 돌격대이자, 국회에서는 예결위 활동이 두드러졌던 인물이다. 그런데도 김대통령은 ‘환경 문제와 전혀 인연이 없는’그를 국민의 관심에 점점 높아지고 있고 그 어떤 분야보다도 전문적인 정책 접근이 필요한 환경부장관으로 앉혔다. 김용태 내무부장관은 김대통령이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는 인물이라는 점과, 민자당 경북도지부위원장인 김윤환 정무장관과 함께 대구ㆍ경북을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점이 발탁 배경으로 지적된다.

 한편 徐錫宰 총무처장관은 동해시 선거 후보 매수 사건이라는 정치적 부담을 안고 있는 측근이지만 그의 오랜 공백에 개인적 부담을 느꼈기 때문에, 朱燉植 문화체육부장관은 통합선거법을 입안하는 등 무리없이 임무를 수행한 청와대 인사의 자리 마련이라는 차원에서, 전문성과 관련해 별 인연이 없는 자리를 내준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번 12ㆍ23 전면 개각은 세계화와 전문화라는 요란한 구호와는 달리 세계화와 지자제 대비, 집권 기반 확장이라는 세 가지 포석이 어우러진 ‘종합선물용 세트’로 끝나고 말았다. 또한 전체 윤곽으로는 보수대연합 구도로 귀결됐다. 내건 명분 따로, 발탁 배경 따로였기 때문이다 ■
徐明淑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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