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 정보 관리 ‘중구난방’
  • 박재권 기자 ()
  • 승인 1995.0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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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시스템 개발 지지부진…지하 시설물 등 땅밑 살림살이도 컴퓨터로 챙겨야



 ‘하늘이 무너지면 어쩌나. 땅이 꺼지면 어쩌나.’ 옛날 중국 기(杞)나라의 한 사람은 부질없이 이런 걱정을 했다가 역사의 놀림감이 되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지금 기우(杞憂)라는 말을 만들어낸 그의 걱정은 현실이 되었다. 멀쩡하던 다리가 무너지고 땅속에서 각종 폭발 사고가 잇따랏다. 지하 통신구에서 화재가 발생해 통신이 마비되는가 하면, 도시 가스가 폭발해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도대체 땅속의 현실이 어떻길래 이 모양인가. 시민들의 관심이 지하로 쏠린 것은 당연했다.

 지금 도시의 지하에는 갖가지 시설물이 혈관처럼 복잡하게 뻗어 있는데 이를 관리하는 기관은 제각기 다르다. 상·하수도는 지방자치단체가 맡고 있고, 전기는 한국전력공사, 통신은 한국통신공사, 도시가스는 한국가스공사, 지하철은 각 시의 지하철공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 기관 간에는 정보 교류가 거의 없고, 지하 매설물에 대한 종합적인 도면 하나 없는 상태다. 따라서 땅속의 현실에 대해 총체적으로 알 수 있는 기관은 사실상 없는 셈이다.

 관계 부서 간에 업무 협조가 안된다는 사실은 끊임없이 벌어지는 도로 굴착 공사를 보면 뚜렷하게 드러난다. 서울시와 인천시는 93년 한 해에 도로 굴착을 신청한 기관들에게 동시 작업을 하도록 1천9백18건이나 조정했다. 그러나 감사원이 이 중 1백50건을 표본 조사한 결과, 관계 기관들이 공동 작업을 벌인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그만큼 예산은 낭비되었고, 시민은 불편을 겪어야 했다.

97년 말에야 국가 기본도 작성될 듯
 정부가 추진하고 잇는 지리정보시스템(GIS)이 기대를 모으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80년대 후반부터 구축되기 시작한 이 시스템은 컴퓨터를 이용해 도면 정보와 속성(屬性) 정보를 결합하는 종합 정보 시스템이다. 이것은 전산 처리가 가능하도록 지도를 작성해 컴퓨터에 입력한 다음, 토지·건물·식생·도로·철도·상하수도·통신·가스시설· 등 토지와 관련된 각종 정보를 결합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시스템이 구축되면 컴퓨터 화면을 통해 원하는 정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장점은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틀린 정보를 입력하면 틀린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현재 행정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각종 자료의 부정확성이 문제가 된다. 빠진 자료가 많을 뿐 아니라. 있다고 해도 현실과 다른 자료가 너무나 많다. 예컨대 도시에 가스관과 수도관이 몇m 깊이로 묻혔는지 정확한 기록이 없다. 이 때문에 도로 굴착 공사를 하다가 상수도관이나 전선·통신선이 파손되어 물과 전기가 끊기고 통화가 두절되는 사태가 흔하다. 93년에만 해도 이런 일이 7백61건이나 된다. 한국전선원 徐三英 본부장은 “살아 있는 정보망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수치 지도와 자료, 적정한 소프트웨어 그리고 끊임없이 자료를 확인하여 고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관계 기관 간에 정보를 교류해야 하는 것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94년 4월 정부는 국가지리정보시스템을 구축하기로 결정하고, 경제기획원 차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국가 GIS구축위원회’를 발족하였다. 이 위원회는 총괄분과(경제기획원)와 토지정보분과(내무부), 기본도 전산화분과(국립지리원), 기술개발분과(과기처), 표준화분과(한국전산원) 등 다섯 분과로 나누어서 관련 기관을 망라하도록 되어있다. 이 위원회는 원래 94년 말까지 존속하도록 한시적인 기구로 출범했으나, GIS 구축 사업이 다소 지연되면서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다. 이밖에 민간 전문가들의 의견을 청취하기 위해 학계·국책연구소·업계 대표로 구성된 민간 자문위원회가 설치되었다.

 이처럼 GIS구축위원회가 여러 부처 합동으로 조직된 것은 지리정보시스템을 활용할 분야가 방대하기 때문이다. 지도와 연계될 수 있는 정보는 현재 2백 가지 정도로 추산된다. 이것은 전체 행정 업무의 80%나 된다. 정부는 95~97년 3백2억원을 투입해 국가 기본도를 작성하는 1단계 사업을 본격 추진할 계획이다. 그리고 이 작업을 이끌어 나갈 조직은 나중에 결정하기로 했다.

 국가지리정보시스템이 여러 기관의 협력과 조정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미국이나 일본처럼 GIS 센터를 설립해야 한다는 주장도 학자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다.

 현재 시작 단계에 있는 이 사업에는 몇 가지 풀어야 할 쟁점이 있다. 우선 이 기술을 자체 개발할 것인지 외국에서 도입할 것인지 하는 문제가 논란거리이다. 기술 개발 업무를 맡고 있는 과학기술처는 국산 시스템 개발을 목표로 삼고 있다. 국내의 시장 규모는 3천억원 정도이고, 앞으로 그 규모는 더 커질 것이 분명하다. 대문에 외국 기술에 의존하는 것은 앞으로 엄청난 외화 부담을 초래하리라는 것이 과기처의 입장이다.

 이에 대해 학계와 업계는 회의적인 반응을 나타낸다. 지리정보시스템을 겨우 시작하는 현 단계에서 순수한 국산 기술을 개발하는 데는 최소한 5~7년이 걸린다. 또 개발한다고 하더라도 외제보다 우수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따라서 이들은 외국의 선진 기술을 도입하여 국산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제시한다. 이렇게 할 경우 응용 기술을 개발하는 데는 2년 정도면 충분하다. 과기처도 지금은 외국 기술 도입과 국산 소프트웨어 개발을 병행하는 것으로 한 발짝 물러섰다고 알려졌다. ‘GIS 민간 자문위원회’ 위원장 金昌浩 교수(한양대·도시공학과)는 “애국심 때문에 일을 그르쳐서는 안된다. GIS 기술 개발은 민간기업이 중심이 되고 정부가 지원하는 형태가 바람직하다”라고 말했다.

 한편 국가 기본도 작성 문제는 부처 간의 이해가 맞물려 있어서 훨씬 더 복잡하다. 94년 5월12일 내무부 등 17개 관련 기관은 국가지리정보시스템의 기본도를 5천만분의 1 축척 지형도로 결정한 바 있다. 그런데도 내무부는 ‘종합 토지정보 전산화 계획(LIS)'을 독자적으로 추진했다. 감사원은 내무부의 이같은 구축에 혼선을 가져올 우려가 있다고 보고 국가지리정보시스템 범위 안에서 토지정보 전산화 계획을 추진하라고 통보했다.

기존 시스템들, 기술 부족 등으로 문제점 많아
 내무부가 기존의 지적도를 다시 작성하는 일에 집착을 보이는 까닭은, 지금 사용되고 있는 지적도의 문제와 직접 관련되어 있다. 현행 지적도는 1910년대에 일제가 토지 조사 사업을 하면서 작성한 일제 시대의 유물이다. 일본 대마도에 있는 1등 삼각점이 기준이기 때문에 남에서 북으로 올라갈수록 오차가 크게 마련이다. 더구나 한국 전쟁 때는 삼각점의 79%가 망실되었다. 그 후에 응급 복구는 되었지만, 기초점이 흔들려 지적도와 실제가 일치하지 않는 근본적인 결함을 안게 되었다. 게다가 최근에는 땅값이 비싸지면서 국가가 토지 분쟁에 휘말리는 횟수도 늘어났다.

 결국 기본도의 종류는 지도 제작기관인 국립지리원(지형도)과 내무부(지적도), 국방부(군사지도), 건설교통부(해도)가 지리정보시스템의 이용 목적을 고려해 결정할 것이다. 현재로서는 지형도를 기본도로 하면서 지적도를 혼용할 가능성이 높다.

 기본도를 작성하는 데 반드시 지켜야 할 것으로는 수치 지도의 정확성, 데이터와 소프트웨어의 표준화, 그리고 관계 기관 간의 정보 교류이다. 이들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지리정보시스템은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고 정보 교환이 불가능해져서 쓸모없는 정보망이 되고 만다. 대전과 인천의 지리정보시스템이 이런 문제점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지적받는다. 국립지리원 한상득 계장은 “대전과 인천이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국립지리원과 협의하지 않고 지도를 제작했던 것이 문제이다”라고 말했다.

 현재 지리정보시스템은 다양한 분야에서 이용을 모색하고 있는 단계이다. 정부 기관·지방자치단체·정부투자기관이 시설물 관리를 위해 주로 이것을 이용한다. 정부 기관으로서는 건설부가 90년에 ‘종합 도로관리 정보 시스템’을 개발하여 운영하고 있고, 철도청 역시 ‘철도시설물 관리 정보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이밖에 내무부·환경부·산림청·통계청이 업무와 관련된 지리정보시스템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로는 대구·인천·광주·대전·성남 시가 이미 이 시스템을 구축했고, 서울시는 93~94년에 시정개발연구원이 면밀히 검토한 자료를 바탕으로 삼아 시행 계획을 만들 방침이다. 서울시의 연구 결과가 눈길을 끄는 것은, 대부분의 기관들이 단편적인 하나의 시설물을 관리하기 위해서 도입한 반면, 서울시는 모든 부서를 망라하는 종합적인 정보망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투자기관들 역시 지리정보시스템 구축에 적극적이다. 한국전력공사는 배선 설비 및 관리 시스템, 한국통신공사는 통신 설비 및 설비관리 시스템, 한국도로공사는 도로망과 고속도로 시설 관리 시스템, 한국수자원공사는 수자원과 수문관리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거나 추진중이다.

 하지만 이미 구축된 지리정보시스템은 기술과 경험이 취약하기 때문에 적지 않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이 94년 5월19일~7월20일 11개 기관을 대상으로 감사한 결과를 보면 다음과 같다.

 대구시는 도로과와 하수과에서 하수대장을 각자 전산화하고 관리함으로써 중복 투자하였고, 두 부서의 자료도 서로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 대전시 역시 도로 관리 부서와 상하수도 관리 부서가 상·하수도관망의 현황을 제각기 조사하여 예산을 중복 집행함으로써 20여억원을 낭비하였다. 인천시는 지리정보시스템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놓고도 전산 장비와 운영 요원을 확보하지 않아 예산만 낭비하였고, 광주시는 시스템 개발 장비와 운용 장비의 형식이 달라 용역 결과를 바로 활용할 수 없었다.

“기본도 작성과 정보 전산화 병행해야”
 감사원이 지적한 이같은 문제점은 정부투자기관 역시 마찬가지이다. 한국전력공사와 농어촌진흥공사는 부서 간에도 자료 호환이 안되고, 기관 간의 협조 없이 사업을 추진함으로써 중복 투자로 인한 국가 예산 낭비를 초래하였다.

 국립지리원과 협조하지 않고 지도를 사용함으로써 지도 자체의 정확성에 문제를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 한국전력공사는 전산 자료의 오류가 많아서 이미 구축해 놓은 지리정보시스템을 활용할 수 없는 상황이고, 한국통신공사는 전산 장비 구성을 잘못해 장비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국가적인 기본도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여러 기관이 제각기 구축한 각종 시설물 관리 시스템은 대부분 중복 투자와 자료의 부정확, 호환불능이라는 문제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지리정보시스템 사업을 국가 기간 전산망 사업에 포함시켜 국가 기본도를 작성하도록 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기본도는 전부가 제작·공급하고, 지방자치단체와 정부투자기관 등은 자체 목적에 따라 필요한 정보를 입력하여 활용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 지리정보시스템 기본도가 완성되는 것은 97년 말이나 돼야 가능하다. 다라서 각종 속성 정보를 전산화하는 작업과 기본도를 작성하는 일은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모든 도시는 각종 시설물이 늘어나고 시민들의 요구가 다양해지면서 업무량도 그만큼 늘었다. 따라서 과거 방식으로는 이같은 변화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없게 되었다. 최근 지리정보시스템이 모든 행정 기관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현재 대부분의 지리 정보는 2차원 영상으로 작성되고 있다. 그러나 멀지 않아 3차원 입체 영상이 보편화할 것이다. 徐三英 본부장은 “여기에 시간을 추가한 4차원 지도를 작성하는 것이 목표이다”라고 말한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투자 대책과 그 예상 효과를 뽑아내는 것은 물론, 장래에는 컴퓨터 화면 앞에서 원하는 각종 정보를 받아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를 통해 닥쳐올 미래와 이에 대한 대처가 합리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일련의 작업은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 사업과 맞물려 진행되고 있다.
 朴在權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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