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 시비 ‘끝없는 신음“
  • 부산.소성민 기자 ()
  • 승인 1995.0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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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변협 인권위, 강주영양 사건 관련 경찰관 14명 고발



 지난해 10월 발생한 부산 만덕국민학교 4학년 강주영양(당시 10세) 유괴살인 사건은 검찰이 구속기소한 피고인 4명에 대한 1심 재판이 진행중인 상황에서 부산변호사협회 인권위원회가 지난 12월27일 피고인 및 참고인 들을 수사한 부산북부경찰서 강력2반 주임 김종두 경위 등 경찰관 14명을 독직폭행 및 강금죄로 대검찰청에 고발해 파장이 확대되고 있다.

 부산변협 인권위원회(위원장 조성래)가 제출한 고발장에 따르면 ‘피고인들 및 참고인들에 대한 폭행 및 가혹 행위는 손버릇이 나쁜 특정 경찰관에 의하여 개인적이고 우발적으로 행해진 것이 아니라 수사에 참여한 수사팀 거의 전원에 의해 광범위하게 행하여진 것’이다. 따라서 ‘이는 폭행 및 가혹 행위가 고질적이고 관행적이며 구조적으로 자행되었음을 뜻한다’라고 이 고발장은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인권위원회는 피고발인인 경찰관 14명 각자에 대해서 구체적 범행 증거를 확보하지는 못하고 있다. 고발장에 따르면 인권위원회가 14명을 선정한 근거는 피고인들의 기억과 수사기록이다. 피고인들은 14~15명에 달하는 경찰관, 즉 강력반에 속한 경찰관 거의 전원이 수시로 돌아가면서 자신들을 구타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피고인들이 그 경찰관들의 얼굴이나 계급·성명 등을 기억하지는 못하므로, 인권위원회측은 부득이 수사 기록상 위 피고인들과 참고인들을 조사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는 경찰관들을 고발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피고발인 가운데 범행과 무관한 경찰관이 있을 수도, 피고발인이 아닌 사람 가운데에 범행과 관련된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니 엄정한 수사를 통해 범행 가담자들의 행위 및 책임 정도를 가려달라는 것이다.

북부경찰서측은 “증언 조작됐다”
 북부경찰서는 구체적 논평을 꺼리면서도 매우 불쾌해하고 있다. 배수신 형사과장은 “아직 1심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이러한 처사가 과연 공정한 것인가”라고 말했다.

 인권위원회는 피고인 원종성씨(24)와 옥영민씨(26)가 경찰 수사 과정에서 고문당하는 장면을 목격하거나 그로 인해 두 사람 몸에 생긴 상처를 본 적이 있다는 조승제(32)·유후근(36)·이상범(25)씨 3명을 증인으로 확보해 그 증언에 대한 공증 절차까지 끝마쳤다.

 이 사건과 관련해 경찰측에 가장 불리한 증언을 한 조승제씨는 폭력 혐의로 지난해 10월16일 북부경찰서에 구속되어 21일 검찰에 송치되었다가 11월23일 보석으로 석방됐다. 공증인 증서에 따르면, 조씨는 10월16일 오전 11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자기가 조사받고 있던 강력반 사무실에 들어온 피고인 4명 중 원종성씨와 옥영민씨가 고문당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가 공증한 바에 따르면, 두 피고인이 들어오자마자 원종성씨에게는 경찰관 4~5명이, 옥영민씨에게는 3~4명이 둘러싼 뒤 ‘이 ××들 너희는 살 필요가 없는 놈들이다. 죽어야 된다’면서 무지막지하게 구타하기 시작했다. 돌아가며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고 쭈그려 앉히고 구둣발로 차는 식으로 5분간 마구 때린 후 질문하기 시작했다. 조씨는 또 피고인들이 들어오기 전 강력반 사무실에 경찰관 20여 명이 모여 있을 때 수사 책임자인 듯한 사람이 ‘애들 진술에 안맞는 부분이 너무 많으니 총 열여섯 항목에 대해 오늘과 내일 사이에 진술을 맞춰야 한다’고 지시하는 것을 들었다고 공증했다.

 이 공증에 따르면, 경찰관들의 첫 심문은 돈을 얼마 요구하였느냐는 것이다. 두 피해자가 자백한 금액이, 최초로 범행을 자백한 피고인 이현숙씨(20)가 자백한 액수와 맞지 않자 마구 때렸고 이후로도 계속 신문과 구타를 반복했다. 구타하던 도중 한번은 원씨의 두 팔을 등 뒤로 돌려서 수갑을 채우고 무릎 뒤에는 경찰봉을 끼워서 엉거주춤 서게 한 뒤 마구 때리고 짓밟았다. 옥씨에게는 구타한 뒤 쪼그려 뛰기를 시키면서 “제가 거짓말을 해서 죽을 죄를 졌습니다. 한번만 용서해 주십시오”라는 말을 반복해 복창하게 했다는 것이다. 조씨는 그 뒤 유치장에 수감돼 있을 때 원종성씨의 상처를 확인한 바 있으며, 원씨가 고문 때문에 결국 범행을 시인할 수밖에 없다며 흐느꼈다고 공증했다.

 이같은 증언에 대해 북부경찰서 경찰관들은 어이가 없다며 모든 증언이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사건을 맡았던 형사계 강력2반 김종두 주임은, 증인 조씨가 10월16일 11시에 강력반 사무실로 들어왔다가 오후 1시에 다른 사무실에 있는 형사계 유치장으로 돌아간 사실은 인정했다. 그러나 김주임은 “고문을 했다면 기자들을 비롯한 외부인 출입이 끊이지 않는 강력반 사무실에서 왜 드러내놓고 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게다가 16일 오전이면 그 전에 원씨나 옥씨가 모두 자백하고 난 뒤인데 무엇 때문에 그같은 가혹 행위를 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부산변협 인권위원회가 피고측 증거나 참고인 진술에만 너무 집착한다며 억울해 했다.

 김주임이 제시한 수사보고서에 따르면, 현장 검증을 끝낸 뒤인 10월18일 오후 6시20~40분 북부경찰서 형사과장실에서 원씨의 부친 원철희씨(장승포시의회 부의장)와 가족·변호사 등 5명이 원씨와 접견할 때만 해도 원씨의 신체에 아무 이상이 없었다. 당시 원씨를 만난 박근수 변호사는 “형사과장이 원씨의 머리카락을 헤쳐주고 셔츠의 윗 단추를 한두 개 풀어 보라고 한 적은 있지만 수사보고서에 기록되었듯이 원씨의 등이나 팔까지 보여준 것은 아니다. 또 그때는 첫 접견이라 고문 수사에 대한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았다”라고 주장했다.

명백한 결론 내려 ‘악령’ 잠재워야
 부산변협 인권위원회는 피고인들뿐만 아니라 피고인의 알리바이를 주장하던 참고인들 6명에게서도 ‘경찰서에서 수사관의 폭언이나 협박 등 강압적인 조사 분위기 때문에 애초의 진술을 번복했다’는 증언을 받아냈다. 피고인 남해경씨(20)의 친구 이상희씨(20)는 경찰에서 두 번 진술했는데, 남씨의 알리바이를 주장했던 첫 번째 진술을 두 번째 진술 때 번복했다고 검찰과 변호사측에 주장했다. 이씨는 10월15일 자정 무렵에 경찰에 불려가 같은 날 저녁 7시에야 겨우 풀려났다면서, 자기가 남씨의 알리바이를 주장하자 경찰은 계속 ‘나쁜×’ ‘독한×’ 등 욕설과 ‘범행을 몰라서 그렇지 알았으면 가담하고도 남았을 ×년이다’라는 식의 폭언을 했다고 한다. 또 목 주변을 몇 차례 손바닥으로 맞았다고 말했다. 이씨에 따르면, 알리바이 주장을 번복하자 비로소 풀어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담당 수사관들은 이씨에게 강압 수사를 한 일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부산지검 안춘호검사에 따르면, 이씨는 애초에 친구의 알리바이를 제시했으나, 친구가 먼저 알리바이 주장을 포기했기 때문에 더 우길 수가 없어서 진술을 번복했다는 것이다.

 이 재판을 담당하고 있는 부산지법 제3형사부(재판장 박태범 부장판사)는 고문 시비가 벌어지자 지난해 11월23일 원씨와 옥씨의 신체를 검증했다. 이 날 검증에서 원씨의 경우 양쪽 손목에 수갑으로 죈 흔적이라고 밝힌 폭 0.5㎝ 길이 4㎝ 가량의 상처가 아문 상태와 왼쪽 무릎 밑 흉터, 왼쪽 둘째 발가락 밑의 피멍 등이 나타났다 옥씨에게서는 왼쪽 앞 허벅지 부위에 3~4㎝ 크기의 상처 아문 흔적과 귀 뒤쪽의 상처 등이 확인됐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고문에 의한 흔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으나 재판에 참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날 검증은 수사 시점으로부터 한달이 더 지난 후에 시행되었다.

 고문에 대한 수사는 대체로 분명한 결론이 없이 종결되어 왔다. 이 사건이 명백한 결론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고문에 대한 공포와 망령은 부활할 것이 틀림없다.
부산·蘇成玟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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