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正日“한반도에 유익”
  • 하와이 · 하창섭 기자 ()
  • 승인 1990.1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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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교차승인은 통일 가로막는 ‘악수’

북한문제 전문가인 재미학자 徐大肅 박사 (59 · 하와이대학 한국학연구소장)를 만나 남북정상회담 가능성, 김정일 후계체제등을 비롯 남북관계에 대한 견해를 들어보았다.

 

●남북총리회담의 의미와 성과에 대해 말해달라.

 적어도 평양과 서울에 연락사무소나 무역사무소를 설치하는 것과 같은 실무적 합의를 위한 만남이라면 몰라도 얼굴이나 보고 악수나 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본다. 작금의 총리회담은 남북한이 어떤 실질적 성과보다는 다소 국제적 여론을 의식해 대화를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기본적으로 북한은 한국에서 원하는 대화의 장만 벌여놓고 자기들이 하고 싶은 것, 자기들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주로 이야기하려고 한다. 한국측은 그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가.

 나는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본다. 가장 큰 이유는 양측 정상이 만나 합의할 사항이 없다는 점이다. 그냥 만나 얘기나 하고 악수나 하려고 金日成이 나서겠는가. 한국측에서 왜 자꾸 정상회담 얘기를 꺼내는지 모르겠다. 盧泰愚 대통령이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에게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도록 협조해줄 것을 부탁한 것은 한마디로 한국측의 자신감 결여를 드러낸 것이다.

●김일성 주석은 10월18일 姜英? 총리 등 남한측 대표단을 면담한 자리에서 ‘총리회담에서 가시적 결과가 이루어지면’ 남북정상회담에 응할 의사를 비췄는데.

 생각해보라. 先정치 · 군사적 대결상태 해소를 주장하는 북한의 입장과 先교류를 주장하는 남한측 입장이 너무도 현격하기 때문에 총리회담에서는 합의할 사항이 별로 없다. 앞서 얘기했지만 정상회담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상호 합의할 수 있는 사항이 있어야 한다. 김주석이 한 얘기는 의례적인 것으로 봐야지 남한측에서 너무 들떠 이를 자기식으로 해석해서는 안된다.

●북한이 金正日을 내세워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할 가능성은 없는가.

 김일성이 살아 있는 동안에 김정일을 내세울 가능성도 있다. 그런 제안이 있을 때 한국은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 경우 툴론 한국으로서는 득실이 있을 것이다. 김정일을 만나줄 경우 한국으로선 북한의 세습체제를 인정하는 것이 된다는 점에서 손해다. 그러나 한편으로 김정일이 서울에 와 직접 자기 눈으로 한국의 이모저모를 보고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이 점치 한국에 득이 된다.

●김정일의 후계체제는 확고하다고 생각하는가.

 김정일의 후계체제는 확고하다. 18년 전 처음으로 당 중앙위원에 임명된 이래 그의 후계체제 구축작업은 지금까지 확고하게 진행돼왔다. 이 과정에서 반대자가 숙청되었음은 물론이다. 현재 그를 반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으며 또 있을 수도 없다. 북한의 지도부가 젊은 세대로 교체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제9기 최고인민회의 제1차회의에 참석한 대의원 중 55세 이하가 전체의 약 59%에 이르렀음을 주목해야 한다. 혈연관계의 중요성도 무시할 수 없다. 현재 북한사회의 조직은 김정일과의 혈연 · 지연 · 학연으로 얽혀 있어 그의 조직망이 사회 전역에 뻗쳐 있다. 그들은 김정일에게 절대적 충성을 보내고 있다. 군부의 경우도 대부분이 만경대혁명학원 출신이 근간을 이룬다는 사실을 유의해야 한다.

●김정일체제가 완성될 경우 지도체제에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인가.

 다음의 세 가지 경우를 상정해볼 수 있다. 첫째 김정일이 아버지처럼 절대권력을 장악하는 경우, 둘째 김정일이 당을 장악하고 朴成哲 같은 인물을 명목상 주석으로 앉히는 경우, 셋째 주석직과 당의 고위직을 김정일 자신이 맡지 않고 중국의 鄧小平처럼 등 뒤의 실력자로 남아 있는 방법 등을 고려해볼 수 있다. 나는 김일성사후 김정일이 수령으로 등장, 절대권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김정일이 머리가 있다면 두번째 경우를 택할 것이다.

●북한의 전격적 대일본 수교제의를 어떻게 보는가.

 북한의 대일수교제의는 한 · 소수교를 염두에 둔 경쟁적 움직임이다. 앞으로 북한이 일본과 정식으로 수교할 가능성도 있으나 국가와 국가간의 관계는 맺되 대사급은 교환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소 · 중 · 일 · 미에 의한 남북한 교차승인 이후의 한반도 상황에 대한 견해는….

 중국이 한국을 인정하고 미국이 북한을 인정하면 당사국간 수교는 당연한 귀결이다. 그렇게 되면 통일은 멀어지게 될 것이다. 교차승인이 이루어지면 북한이 가장 득을 보게 된다. 미 · 북한간 수교가 된다면 미국은 주한미군을 철수할 것이고 북한을 이에 상응해 군비감축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또 북한은 일본의 협조로 경제개발에 박차를 가하게 될 것이고, 단시일내에 한국처럼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북한사회가 개방기면 곧 무너지지 않겠느냐 하는 견해가 있으나, 설령 개방한다 해도 충격을 최소한도로 줄이는 범위내에서 점차적으로 할 것이다.

●한국이 북한을 상대로 교섭하는 데 있어 특히 유의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

 지금 한국은 북한이란 처녀를 어떻게든 유혹하려고 안달나 있는 눈먼 청년과 같다. 그럴수록 신중해야 한다. 첫째 한국이 소련과 국교를 맺는 것을 한국외교의 승리, 북한의 패배로 보는 것이야말로 냉전논리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태도이다. 북한이 정말 일본과 수교한다면 남북관계가 좋아지겠는가. 둘째 노대통령이 자꾸 김일성을 만나겠다고 하는데 이것이 정치적 목적에 기인한 것이어서는 안된다. 셋째 한국측에서는 북한이 개방되면 인민봉기라도 일어나 곧 망하리라고 얘기하는데 그런 발상의 저의가 무엇인가. 결국 북한을 독일식으로 흡수통합하자는 것인데 그래서는 안된다. 한국은 서독이 아니다. 끝으로 한국은 북한에 비해 국력이 앞서 있는 만큼 북한을 도와주되 비공개적인 방법을 이용해야 한다.

●남북관계 개선과 관련하여 한국은 교류를 통해 먼저 신뢰를 구측하자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북한은 한반도에서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핵무기를 철거해야 한다는 선결요건을 들고 있는데….

 나는 한국의 제의가 북한에게는 불리하지만 양측안을 비교해볼 때 한국측 제안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거론되고 있는 한반도에서의 군축은 상호 신뢰기반이 없는 상황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남북관계의 앞날을 전망해달라.

 머잖아 북한에도 큰 변화가 있을 것이다. 물론 이는 김일성이 죽고 김정일이 그 뒤를 이었을 때의 얘기다. 김정일이 정권을 장악하면 4 · 19, 5 · 16, 5 · 17, 6 · 29 등 한국이 겪은 변화의 물결이 북한에도 한꺼번에 밀려들 것이지만 나는 김정일이 이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김정일체제가 성공하면 이는 한국 정부에도 좋은 일이다. 만약 누군가 다른 인물이 김정일을 거세하고 등장한다면 그는 김일성보다 휠씬 더 강한 독재 억압정치를 펼 가능성이 있다.

●김정일체제가 한국에 좋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김정일은 아버지 밑에서 지난 18년간 후계자로서 많은 것을 보아왔다. 따라서 김정일은 아버지가 추구해온 민족해방전략과 같은 무리한 정책의 과오를 시인하고 이를 포기할 것이다. 한편 김정일은 북한 인민이 못산다는 점을 잘 인식하고 있으며 따라서 경제발전을 위한 외국자본의 유치를 위해 국제무대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이는 한국을 위 해서도 좋은 일이다.

●한국 정부의 북방정책에 대해 평가한다면….

 쥐도 도망갈 구멍이 없으면 상대를 무는 법이다. 6공화국 정부가 북방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나 결과적으로 북한은 고립되고 있다. 북한이 일본과 수교하고 한국이 소련과 수교하면 이는 각기 독립국으로 가자는 것이다. 그것은 나라를 갈라놓는 일이 아닌가. 북방정책의 목적이 ‘한국전쟁이 재발해도 소련이 절대 개입하지 않으며 중국도 압록강을 넘어서지 않는다’는 보장을 얻어내기 위한 것이라면 이해가 간다. 그러나 실은 그게 아니지 않는가. 한국의 통일정책 입안자들은 첫걸음을 내딛을 때 다음 걸음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을 못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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