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공유물로 전락한 ‘성금’
  • 정기수 기자 ()
  • 승인 1990.11.01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평화의 댐’ 1단계로 ‘낭비공사’끝…수자원공사 현장 완전 철수

 마지막 이삿짐을 실은 버스가 떠나자 소장과 직원 2명만이 마당에 남았다. 이들은 현관에 붙어 있던 ‘한국수자원공사 평화의 댐 건설사무소’란 간판도 마저 떼었다. 사무소를 인계받은 인근부대에서 경비병이 도착하는 대로 이들은 춘천으로 옮겨가게 돼 있었다. 4년간에 걸친 오지 근무를 마치게 되는 데 대해 한가닥의 아쉬움도 남지 않은 듯이들의 표정에는 병사들이 빨리오지 않는 데 대한 짜증으로 가득차있었다.

 ‘감회’를 묻자 한 직원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건설초기에는 어디서 일하느냐고 누가 물으면 자랑스럽게 얘기했는데… 정권이 바뀌고 ‘희대의 사기극’이란 비판이 일고 보니 괜히 얼굴을 들고 다닐 수도 없었지요.” 옆에 있던 다른 직원은 “산세 험한 혹한지대에서 고생만 죽도록 하다가 간다”며 “이 공사는 꼭 정치인들이 했어야 했다”고 원망섞인 심정을 털어놓았다.

 지난 10월17일 오후, 그동안 댐건설과 관리를 맡아온 수자원공사의 현장직원들은 이 렇게 “아무런 보람도 없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갔다.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水攻’‘水葬’등의 공포로 전국이 흔들렸던 86년 10원말 이후 꼭 4년만에 평화의 댐 관계사업이 철저한 보안 속에 슬그머니 마무리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국민들의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채 그대로 있다. ‘그돈’이 다 어디로 갔느냐 하는 것, 즉 성금의 행방과 관련하여 품게 되는 의심이 그중 첫째이다. 국민들은 또 그토록 난리법석을 떨게한 북한의 금강산댐의 규모나 공사진척도도 이제는 정확히 밝혀져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터지면 서울 63빌딩 무릎까지 찰랑찰랑 물이 넘실거리게 될 만큼 위협적이라고 한 이 댐이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 알고 싶다는 얘기이다.

 국민들이 수상쩍게 생각하고 있는 성금의 행방은 사실은 지난 88년 5월27일 1단계공사

준공 때 이미 알려졌다. 그러나 준공사실은 당시 5공비리 · 광주문제 등의 처리에 국민의 관심이 집중돼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다지 크게 홍보도 되지 않아 거의가 모른 채 지나갔다. 공사를 시작도 안했거나 도중에 그만둬 현장이 방치상태에 있는 것으로 믿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평화의 댐을 건설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모은 돈은 모두 7백33억원. 이 돈은 지금 평화의 댐 콘크리트와 이 댐에 연결되는 도로의 아스팔트로 변해 있다. 다시 말해 성금은 공사비용으로 이미 다 써버렸으며 오히려 총공사비는 국방부예산까지 더해 1천5백9억원에 이른 것으로 발표됐다. 86년말의 ‘광기’와도 같은 성금열기를 몰아 정부는 이듬해 2월28일 강원도 화천군 북한강 상류 휴전선 인접지역의 이른바 ‘대응댐 적지’에 댐건설 공사를 시작했다. 북한으로부터는 금강산댐이 발전소용이라는 ‘백서’ 발표 이후 공사진행상황 등에 관한 아무런 얘기가 없고, 정부도 관련 정보를 일체 밝히지 않는 가운데 무조건 착공에 들어간 것이다.

 

무인지경 도로에 6백8억원 쏟아부어

 우리의 토목기술을 자랑하기라도 하듯 밤낮으로 중장비가 동원되고 수많은 인력을 동원한 끝에 15개월만인 지난 88넌 5월28일 배수로와 본댐공사가 완료됐다. 댐의 규모는 길이 4백10m, 높이 80m. 배수로에 3백51억원. 본댐에 2백66억원이 들어갔다. 배수로는 이지역의 특성상 산속에 4개의 터널을 뚫어야했기 때문에 공사비용이 많이 먹혔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어렵고 돈이 많이 들어간 공사는 따로 있었는데 그것은 댐까지 닿는 도로를 닦는 것이었다.

 강원도 양구와 화천 양쪽에서 댐까지 모두 69km를 일부 확장 또는 신설하여 공사비가 본댐의 3배 가까운 6백8억원이 들었다. 특히 화천읍 풍산리 평화의 댐 입구에서 댐까지의 22km는 8백m고지의 험준하기 짝이 없는 재안산(백암산 남쪽) 허리를 나선형으로 깎아지르면서 정상부근에서는 1천9백86m에 이르는 터널을 뚫는 난공사 중의 난공사를 거듭 올 6월 간신히 공사를 마쳤다. 그러나 이렇게 힘들고 많은 돈을 들여 만든 도로가 과연 얼마나 효용가치가 있는 것인지를 생각해보면 성금을 낸 많은 국민들이 분개해 마지 않을 것이다.

 평화의 댐이 축조된 곳 일대는 전부터 사람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민통선 안 지역으로 댐 공사가 없었다면 길이 필요없는 곳이었다. 또한 화천에서 양구로 통하는 우회도로가 비포장이나마 없던 것도 아니었다. 결국 무인지경 속에 댐의 제방 위를 가로지르는 양쪽 길을 단장하기 위해 무려 6백억원 이상을 쏟아부은 셈이다.

 이 길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평화의 댐 관광객’들이 그들이다. 평화의 댐은 요즘 주로 주부 ·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안보교육’ 코스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댐 안쪽에 마련된 ‘통일전망대’에는 예비군교육장 등 군시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계단식 좌석과 모형도 등이 설치돼 있다. 관광객들은 여기에서 ‘북의 계략’을 교육받고 다시금 안보의식을 다지는 것이다.

 토목학회 교수들에 따르면 북한은 금강산댐 공사를 지난 88년 중단한 이래 아직까지 재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관계당국은 이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지만 지난 17일의 수자원공사 현장철수는 그같은 사실을 간접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정부는 당초 북한이 댐을 쌓는 정도에 맞춰 88년 10월경부터 2단계 대응댐을 축조해나가겠다고 밝혔었다.

 학자들의 연구결과로는 북한의 기술수준과 자금능력을 고려할 때 서울을 일시에 쓸어버릴 수 있다는 2백억톤의 물을 담을 댐이 완공되기까지는 최소한 27년이 걸리고, 또 금강산댐 현장주변에 대한 위성분석 결과 이 지역에는 아무리 커도 32억톤 규모 이상은 들어설수 없다는 결론이 나있다.

 그나마 저쪽에서는 공사진척도가 미미한 가운데 우리는 밤을 새우며 영하 25도 이하의 겨울철에도 공사를 강행, 1단계 공사를 성급히 끝마친 것이다. 따라서 당시 개헌정국 등 정치적 위기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5공정부가 금강산댐의 위험을 필요 이상으로 강조, 전국민을 동원하여 일시에 엄청난 규모의 낭비공사를 벌이고 말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1시간에 관광버스 1대가 지나다닐 정도로만 이용되고 있는 댐 진입도로, 그리고 올 여름 대흥수 때 한강인도교 수위를 5cm 낮춘 것 빼고는 하는 일이 전혀 없는 1단계 댐은 이제 ‘5공유물’로서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관광객들은 아마도 7천5백억원 가까이 든다는 2단계 공사가 추진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스러워해야 할지 모른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