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짙은 ‘공포의 城 ’ 화성
  • 정기수 기자 ()
  • 승인 1990.1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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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된 지문?체모 이용 ‘살인 용의자’ 압축 … 발크기 260㎜ 20대 후반 독신자 추정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흔히 얘기되지만 수사 전문가나 법의학자는 ‘死體는 웅변한다’고 말한다. 죽어 있는 몸과 그 주변은, 그를 누가 혹은 누구들이 언제 어디서 무엇으로 어떻게 왜 죽였는지, 이른바 살인범죄의 8何원칙 거의 모두를 과학적으로 밝혀주게 된다는 것이다. 사체를 조기에 발견하고 현장을 완벽하게 보존하는 것이 범인검거에 가장 중요한 까닭은 이 때문이다.

2년 2개월만에 華城을 또다시 연쇄살인의 악몽 속으로 빠뜨리고 있는 중학1년생 金美淨(14)양의 죽음은 무엇을 ‘웅변’하고 있을까. 살해된 지 약 14시간만에 지금까지의 사건들 가운데 가장 빨리 발견된 김양의 사체는 그만큼 상대적으로 많은 것을 남기고 있다. 김양의 도시락에서 김양과 그의 어머니, 또 사고 당일 점심시간에 이 도시락을 만진 김양의 반친구 가운데 누구의 것도 아닌 지문의 융선(몇줄의 가는 선)이 나왔다. 뿐만 아니라 남자의 체모 3개도 발견돼 사상최대의 미스터리사건이라고 하는 화성연쇄살인이 드디어 김양의 희생을 마지막으로 영원히 자취를 감출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게 하고 있다.

 

‘많은 것’ 남긴 중학1년생의 죽음

그자리에서 지문의 주인이 확인될 수 있는 완전한 지문은 아니지만, 극히 일부라 하더라도 만인부동 종신불변이란 지문의 고유한 특성 때문에 용의자의 것과 대조하면 그 지문의 임자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체모도 마찬가지. 혈액형 식별과 연령 추정이 가능할뿐더러 사람마다 제각기 다른 특징을 갖고 있어 용의자 대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더구나 요즘은 첨단과학 수사 방법인 동위원소분석법에 따라 오차를 1백만분의 1로 줄이고 있다.

그러므로 이 지문이나 체모의 주인공이 용의자 선상에 언제 올라가느냐에 따라 범인 검거시기가 결정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시기를 앞당기는 관건은 용의자를 여하히 압축하느냐 하는 것이다. 측 출신?거주지역, 정신?신체적 특성, 성장과정, 결혼관계, 학력, 전과 등에 대한 범죄심리학적 판단이 중요한 열쇠가 된다. 김양의 사체는 그전의 연쇄살인과 많은 공통점을 보여주면서 범인주변의 여러 가지 특성을 역시 ‘웅변’으로 말하고 있다.

김양은 11월15일 저녁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실종된 뒤 귀가시간이 돼도 돌아오지 않자 그날 밤에 이어 다음날 아침 집앞 야산을 수색하던 삼촌 등 동네사람들에 의해 소나무밑에서 참혹하게 죽어 있는 모습으로 발견됐다. 짧은 속옷과 긴 속옷만 입은 채, 입은 가슴띠로 재갈이 물리고, 목은 긴 양말 한짝과 블라우스를 찢은 천으로 묶여 있었다. 두손과 두발이 또 한짝 긴 양말로 함께 뒤로 묶여 몸이 휘어진 채로 교복 치마에 덮여 있었다.

목앞부분의 결박을 풀자 손톱자국 등 손으로 목을 조른 흔적이 보였다. 긴 속옷 겉으로 선혈이 낭자했고 다리 사이 속살에는 볼펜과 포크형 스푼이 박혀 있어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다. 김양의 머리 위 1m쯤에는 접는 연필깎이 칼이 펴진 채 밤새 이슬을 맞은 상태로 놓여 있었다. 그 칼로 그어댄 듯 가슴에는 오른쪽에 3개, 왼쪽에 15개의 가는 칼자국이 3~15㎝ 길이로 나있었다.

그날 김양은 청소당번이었던 탓에 평소보다 늦은 오후 5시가 조금 넘어 학교를 나섰다. 송산리에 있는 학교에서 능4리의 집으로 오는 길은 태안읍내를 지나 야산 숲속길을 넘어야 하는 약 4㎞의 거리. 숲속길로 오르기 전 병점리 원바리고개에서 김양은 동네의 한 아주머니에 의해 마지막으로 목격됐다. 그때가 6시5분경. 그날 저녁 전국에는 안개가 짙게 끼었으며 수원지역의 기온은 10℃ 안팎. 인적이 드문 데다 해질 무렵 안개까지 끼어 앞이 안보이는 솔밭 사이길을 혼자 걸어가던 키 1백60㎝의 여학생은 이내 숲속으로 1백50m가량 끌려가 야수의 먹이가 되고 말았다.

범행수법으로 볼 때 김양을 죽인 범인이 화성연쇄살인의 동일범임을 쉽게 알아챌 수 있다. 피해자의 착용물만을 사용하여, 입에 재갈을 물리고, 목을 졸라감고, 손발을 묶고 있다. 또 성폭행 뒤 옷을 입히고 사체를 주위의 솔가지 볏짚 흙 등으로 덮어 눈에 띄지 않게 하는 방법이 공통적이었다.

<표>에서 보듯이 1차와 2차 사건은 다른 사건들과 차이를 나타내고 있는데, 특히 1차는 모든 점에서 다른 사건과 크게 구별돼 경찰은 연쇄살인을 2차부터 이번 김양의 8차까지 7건에 국한시키고 있다. 충격을 준 86년 9월 발생의 1차 사건은 피해자가 당시 71세의 노인으로 여럿에 의한 난행 흔적이 있고, 상의는 그대로 둔 채 범행한 뒤 목졸라 죽여 시체를 방치한 것으로 보아 인근 불량배들에 의한 우발적 범행으로 추정되고 있다.

 

여자에 대한 뿌리깊은 증오심 보여

86년 10월20일 밤 10시경 태안읍 진안리에서 맞선을 보고 버스를 타기 위해 혼자 들길을 걸어가다 논둑으로 끌려가 성폭행 당한 뒤 살해된 2차 피해자 朴賢淑(25)씨의 경우 과도로 등을 찔린 점이 공통적인 6건의 연쇄살인과 비교된다. 또 옷을 입히지 않고 알몸 그대로, 위장하지 않고 농수로에 그냥 버린 것도 이후의 범행수법하고는 다르다. 그러나 경찰은 이것이 1차 범행이라고 할때 2차부터는 보다 지능적으로 발전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풀이한다.

한편 88년 9월15일 태안읍 진안리 자신의 집 방안에서 잠을 자다 문을 따고 들어온 범인에게 폭행당한 뒤 목졸려 숨진 朴相熙(14)양 사건은 언론에서 ‘8차’로 분류되고 있으나 사건발생 직후 체모감정에 의해 범인이 잡혀 연쇄살인과는 무관한 것으로 밝혀졌다. 범인(22?농기구센터 수리공)은 무기징역 선고를 받아 현재 복역중이다.

그렇다면 동일범으로 추정되는 7건의 연쇄강간살인범은 범죄심리학적으로 어떤 특성을 지니고 있을까. 여자에 대한 뿌리깊은 증오심이 첫째로 꼽힌다. 다리 사이 속살에 뾰족한 물질을 찔러넣는 등 여성의 상징을 잔혹하게 난도질하는 행위가 그것을 말해준다는 것이다. 3차의 경우 사체가 심하게 부패돼 알아볼 수 없었으나 4차는 우산대, 7차는 복숭아씨, 8차는 피해자의 소지품인 볼펜과 도시락의 스푼으로 성을 학대한 사디즘을 보여주고 있다.

범죄심리학자와 수사전문가는 이런 도착행동은 대개 약혼녀나 동거하던 여자, 또는 부인이 자신을 버리고 도망갔을 때 나타나기 쉽다고 말한다. 계모나 부정한 어머니 밑에서 자랄 경우에도 부정의 원인인 여자의 상징에 대한 가학증세가 생기게 되며, 직업여성 등으로부터 행위능력과 관련하여 심한 모욕을 받게 될 때도 여자에 대한 한이 극단적으로 심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범인은 독신자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범인은 또 극도로 잔인하고 대담하며 변태적인 모습을 흔적에 남기고 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야산이나 들판에서 범행을 한뒤 시체를 끌거나 안고 다니면서 주위의 자연물로 정성스럽게 위장, 사람들의 눈에 오랫동안 띄지 않게 했다. 그런가하면 이번 김양의 경우와 같이 책가방에서 면도칼을 꺼내 죽은 몸의 살갗을 가볍게 수차례 긋는등 시체를 앞에 두고 한동안 시간을 보내는 소름끼치는 일면도 보이고 있다. 사후에 칼질을 했다는 사실은 생활반응(생전의 상처때 생기는 핏자국)의 유무에 따라 판단된다.

사체가 옷을 입고 있음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성폭행사건 수사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한결같이 ‘타협폭행’한 뒤 약속을 어기고 죽인 것이라고 풀이한다. 범인의 잔인성이 엿보이는 대목인데, 과거 비슷한 유형의 사례를 통해볼 때 죽인 다음에 옷입히는 일은 거의 없고 폭행이 끝난 직후 여자가 본능적으로 아래 옷을 입으면서 ‘석방’해주길 원할 때 범인의 손은 벌써 여자의 목을 조르고 있다는 것이다.

 

변태성욕자에 치밀한 지능범

범인은 이물질을 삽입하는 난행도 그렇거니와 극심한 변태성욕자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추?동절기에 사건이 유달리 많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6차 朴銀珠씨 경우(5월)를 빼고는 모두 9월(1), 10월(1), 11월(1)의 가을철과 12월(2), 1월(1)과 같은 혹한기에 범의가 발동하고 있다. 폭행중 피해자의 속옷을 피해자의 머리와 얼굴에 뒤집어 씌우는 것도 범인의 공통적인 습관이다. 이번 김양의 입혀진 속옷에서도 김양의 머리카락이 집중적으로 검출돼 역시 머리에 씌워졌음을 말해주고 있다.

범인은 철저히 증거(유류품)를 남기지 않고 있어 사소한 부분까지 세심한 신경을 쓰는 치밀한 지능범으로 파악되고 있다. 2차외에는 피해자가 입고 있는 의류와 액세서리만을 범행도구로 이용할 뿐 칼 등 흉기를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검문을 피하고 현장에 거의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어두운 밤을 위해 비가 오거나 안개가 낀 날, 또는 달이 없는 날만 골라 범행에 나섰다.

수사전문가들은 이로 미루어 범인의 학력이 최소한 고졸 이상이며 전과경력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또 범인이 허술한 흔적을 남길 만한 정신질환자가 아님을 말해준다. 이번 범행이 88년 9월7일 이후 2년 2개월만에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범인은 이 기간에 다른 죄를 짓고 복역하고 나왔을 가능성도 없지 않은 것으로 경찰은 분석하고 있다.

범인의 체격에 대해서는 6차범행시 남겨진 구두족적 2백60㎜가 전부이다. 범인은 피해자가 반항으로 도망간 적이 한번도 없을 만큼 대담하고, 1백60㎝ 전후의 좋은 체격을 가진 10~20대 여자를 30m~4백m까지 끌고갈 수 있었던 점으로 미루어 연령이 10대보다는 20대에 가깝다. 최초범행으로부터 4년이 지났으므로 현재 20대 후반에 들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10대는 자신보다 어린 나이의 범행대상을 선택하기 쉽고, 30대 이후는 범죄통계상으로도 그 연령층에서 저지르는 강력사건은 매우 드물게 나타나고 있다.

범인의 지역적 연고는 7차례의 범행이 모두 태안읍내에서 반경 2㎞이내에서 일어났고, 요소에 미리 잠복하고 있었던 점으로 보아 태안일대에 상당한 지리감이 있는 자임이 확실해보인다. 지금까지의 추리와 분석을 종합하면 범인은 태안읍에 현재 거주하고 있거나 최소한 국민학교를 마치고 다른 곳으로 이사한 사람 가운데, 여성에 대해 극단적인 증오심을 품게 된 성장배경 또는 가정환경을 가진 자로, 고졸학력 이상에 구두크기 2백60㎜의 20대 후반 독신자(전과자)로 압축된다.

이같은 기준 중 몇가지라도 맞는 사람을 모두 불러들여 지문과 체모 대조를 한다면 범인을 금방 검거할 수 있을 것도 같지만 거의 모든 기준이 사행활에 관련된 사항이므로 수사기관의 입력자료에 들어 있지 않다. 태안읍은 일반국민이 알고 있는 것처럼 조그만 농촌소도시가 아니라 상주인구만 3만3천4백여명에다 주변에는 수원과 인접한 1백60여개의 공장이 밀집해 있어 유동인구도 2만여명에 이르고 있다. 이 때문에 용의자를 찾기가 쉽지 않다. 도리어 엉뚱한 주민이 불려가 가운데 체모를 뜯기는 사례가 빈발, 주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는 것이다.

저녁 6시 이후 통행의 자유를 잃고 하루를 반쪽만 살면서 공포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주민들, 이들이 밤을 다시 찾게 될 날은 언제일까. 얼굴없는 범인은 체모와 지문을 피해 벌써 멀리 도망가 경찰력을 비웃고 있는 게 아닌가. 사람들의 기억이 희미해질 즈음, 그가 또다시 어느 안개낀 가을 밤을 골라 태안읍 어딘가에 스며들어 제9차 범행을 저지르지 않을까 하는 악몽에 주민들은 시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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