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에 찌든 사회 철부지도 “살기 싫다”
  • 김종환 · 김 당 기자 ()
  • 승인 1990.12.06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민학교 어린이 이틀 간격으로 잇따라 자살

죽은 신군 아버지 “언론보도 좀 신중했으면”

11월 26일 12시 30분께 남서울병원(서울 송파구 석촌동) 영안실 앞에서 운구차 1대가 막 떠나려 하고 있었다. 불량배에 시달려 자살한 신영철군(11·서울 송파국교 6년)의 주검을 싣고 벽제화장터로 떠나는 장의차였다. 운구차에는 아버지와 누이들 그리고 담임선생 등 친지 몇사람만 타고 있었다. 바로 며칠 전 큰 충격을 주었던 죽음치고는 너무 ‘초라하고 때늦은’ 장례식이었다.

신군이 자신의 12층 아파트 방에서 몸을 던진 것은 11월 23일 밤 9시께, 동네 근처에서 한 불량배에게 돈 2천원을 빼앗기고나서였다. 평소 내성적인 신군은 어머니 방극재(51)씨에게 “칼을 옆구리에 들이대며 윽박지르는 통에 소리를 칠 수가 없었다. 내일 다시 돈을 더 가지고 오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했다”면서 “그러나 아파트 동호수는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울먹이며 말하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방으로 들어간 신군은 “마지막 소원. 이 사회의 범죄를 없애주세요. 마지막 소원입니다. 부탁입니다” 라는 유서를 남기고 뛰어내렸다. 그리고 그날밤 경찰이 달려왔다. 어머니는 경황중 책상 위에 놓인 유서를 보지 못했으나 형사가 이를 발견해 가져갔다. 가족끼리 조용하게 장례를 치르고 싶었지만 경찰과 언론이 이를 가만두지 않았다. 11월 24일 밤 한 조간신문 기자가 가족도 못 본 유서 사본까지 들고서 찾아와 확인을 요청해왔다. 한 텔레비전 방송은 신군이 끝내 가르쳐주지 않았다던 아파트 동호수까지 찍어가 공개했다. 한 기자는 경찰서에서 유서가 진짜인지 의문을 제기했다(신군은 왼손잡이였다). 검찰은 신군의 필적감정을 의뢰했고 24일 이미 관에 수습한 주검을 풀어헤쳐 부검했다. 그러느라 장례식도 나흘만에 치렀다. 아버지 신남호씨(52·건설부 사무관)의 말대로 “결국 이 사회는 영철이를 두 번 죽인 셈”이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11월25일 오후 12시30분께 교회에 다녀온 강지현양(11·부천 부안국교 5년)은 신영철군의 자살내용이 실린 신문기사를 보고 아버지 강성복씨(39·회사원)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느냐”고 묻고 나서 1시간쯤 뒤에 스스로 집 목욕탕에서 수건으로 목을 맸다. 강지현양은 자신의 컴퓨터에 “어제 텔레비전을 통해 어린이가 자살한 사실을 알고 놀랐다. 같은 국민학교 학생으로 안타까웠다”는 말을 남겼다.

두건의 자살 아닌 ‘연쇄살인’ 사건에 대해 신군의 아버지는 메스컴이 터뜨려 다른 아이까지 죽게 했다“면서 다시는 상업적으로 아이들의 죽음을 다루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