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 함부로 총쏘면 벌받는다
  • 신기남 (변호사) ()
  • 승인 1990.1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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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민사지법 “꼭 필요한 한도 넘으면 경찰관 잘못” 판결

범죄와의 전쟁 선포 이래 경찰관이 총을 발사하는 일이 부쩍 늘어났다. 날치기 소매치기 폭력배는 물론이고, 검문에 불응하고 도주하는 승용차에까지 총격을 가하고 있다. 유사시에는 적극적으로 사용하라는 지시까지 곁들여지니 총기발사는 갈수록 증가할 것 같다.

시민의 입장에서는 이 모두가 범죄진압을 위한 일이니 마음 든든하다고 해야 할 것인가. 그러나 나 자신이 언제 어디서 총탄을 맞게 될는지 알 수 없으니 불안한 게 솔직한 심정이다. 범인 검거를 위해서라면 무조건 총을 쏘아도 좋다는 풍조는 아무래도 곤란한 것이다. 최근에 법원은 그러한 풍조에 제동을 걸 만한 판결을 내놓았다.

작년 9월 한밤중에 유흥가에서 폭력배끼리 패싸움을 벌이면서 파이프 · 낫 등의 흉기를 휘둘러 업소의 시설과 기물을 마구 부수고 있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인근 파출소의 경찰관(순경)이 범인으로 보이는 한 사람을 검거하려 하였으나 그가 흉기를 휘두르며 항거하므로 경찰관은 공포를 발사하였다. 용의자가 골목길로 도주하자 경찰관은 뒤를 쫓아가며 검거에 응할 것을 명령하였다. 용의자가 끝까지 불응하므로 경찰관은 총탄 3발을 발사하였는데 그 중 1발이 오른쪽 다리에, 1발이 왼쪽 가슴에 맞아 그는 현장에서 즉사하였다. 이 사건을 두고 경찰관이 용의자를 사살한 행위는 도가 지나치지 않았느냐고 하는 것이 중론이었다. 그러나 경찰측은 정당방위라고 주장하였다. 정당방위가 인정되면 경찰관은 형사상 면책이 되어 처벌을 받지 않을 뿐 아니라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도지지 않는다.

이 사건의 수사를 담당한 검사는 정당방위의 한계를 넘어선 과잉방위가 아니냐는 세론에 밀려 1년이 넘도록 경찰관을 법원에 기소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지 못한 채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한 가운데 사망자의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민사상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 검사의 결정에 앞서서 법원이 정당방위 성립 여부를 판정하게 된 것이다.

금년 8월22일 내려진 서울민사지방법원의 판결은 이렇다. 경찰관직무집행법에 따르면 무기의 사용은 다른 수단이 없는 때에 꼭 필요한 한도내에서 허용되는 것인데, 이 사건은 범인의 체포를 위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필요한 한도를 넘어 무기를 사용한 것으로서 정당방위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경찰관의 과실이 있었다고 볼 것이고, 공무원의 직무집행상의 과실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는 그 공무원의 사용자인 국가가 배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사망자도 투항명령에 불응하고 도주함으로써 사고를 자초한 과실이 있다고 하여 그의 과실비율(65%로 판정) 만큼 손해배상금을 감액하였다.

불법행위의 책임을 논함에 있어서 형사책임과 민사책임은 별개이다. 민사책임이 인정된다고 해서 반드시 형사책임이 인정되라는 법은 없다. 대체로 민사책임이 폭넓게 인정되고 있는 데 반해 형사책임의 인정은 엄격한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그렇긴 해도 검사가 기소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참에 법원이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것은 의미가 깊다고 본다. 원고(유족들)가 경찰관까지도 피고로 삼았다면 경찰관도 연대책임을 지라는 판결을 받았을 터인데, 총을 잘못 쏨으로써 거액의 손해배상을 해야할지도 모른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면 경찰관들은 방아쇠를 당김에 있어 신중을 거듭할 것이기 때문이다. 총을 쏘라고 등을 떠밀린 경찰관들은 이 판결에 불만을 가질지 모르나 범죄인에게도 인권이 있다는 법원의 가르침을 그들은 소중히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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