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실시 욕구의 대구 작년 열풍 지금은 ‘잠잠’
  • 대구 ● 이흥환 기자 ()
  • 승인 1990.1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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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결정하면 내일 투표 가능”… 의외 인물 출마 예상

“동구에서 방귀 뀌면 서구에서 들릴 정도로 좁은 바닥이 대구다. 어디 사는 누가 후보로 나올지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뻔하다. 오늘 선거가 결정나면 내일 투표해도 된다.”민자당 대구 서갑구의 원창준 조직부장의 얘기다.

그러나 대구는 잠잠하다. 지난해 대구를 휩쓸었던 지자제 열풍은 어디로 스며들었는지 자취가 없다. 내년 상반기에 광역과 기초의회의원 선거를 치른다고 여야간에 합의가 되었는데도 어쩌면 이토록 조용할 수 있을까. 원부장의 말대로 준비는 다 되어 있는데 나서지 않고 있을 뿐인가. 그런 것 같지도 않다. 굳이 원인을 찾는다면 대구지역 언론인 ㄱ씨의 말대로 “이제는 하도 속아서 지자제 얘기만 나오면 코방귀를 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정치적 합의의 파기는 물론 지자제 실시를 명문화해놓은 헌법 위반도 손바닥 뒤집듯이 하는 중앙 정치인들 때문에 ‘골탕’을 먹은 것은 비단 출마를 원하는 예비후보들만이 아니다.

진작부터 관청건물 한켠에 의회 사무실을 준비해놓는 등 지자제를 준비했던 시청이나 구청에서도 씁쓸해 하기는 매한가지다. 대구시의 경우 시청건물 3층에 시의회 집무실을 마련해놓았으나 지자제가 연기되고 감감 무소식이자 시의회 공간을 다시 사무실로 쓰고 있다.

지자제의 열기는 없되 지자제 실시에 대한 욕구는 그 어느 지방보다도 강한 곳이 대구다. 대구 남구에서 자천반 타천반으로 후보 물망에 올라 있는 李 檀씨(민자당중앙위원 · 대지석재대표)는 지자제의 전면적인 조기실시를 주장하는 편에 속한다. 이씨는 “콜라 한병 라면 하나를 사먹어도 그 돈은 대구에 남아 있지 않고 사는 순간 모두 서울로 올라간다”면서 “대구시의 예산 전액을 대구시장 혼자 주무르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동구 봉무동에 사는 주민 최영주씨도 “국회의원들이 국정감사하러 오는 것인지 수금하러 오는 것인지 모르겠다. 과연 국회의원들이 행정부 견제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라고 하면서 지자제는 하루빨리 실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최씨는 지자제에 정당공천제를 도입하는 것은 “절대 반대”하는 입장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정치인들 하는 것 보면 하나부터 열까지 잘되는 구석이 없는데, 지역주민의 생활에 직결되는 지방 고유의 일을 또 정치인에게 맡길 수는 없다”는 것이다.

민중당의 서 갑 · 을구와 동 갑구지구당의 徐元浩 사무처장도 지자제 실시에 대해 매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인다. “돈 가진 사람들이 권력에 진출하기 위한 합법적인 수단으로 지자제가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서씨의 지적이다.

대구시는 현재 관내에 5개 공단을 가지고 있는 탓에 87.4%라는 비교적 높은 재정자립도를 유지하고 있다. 대구 남구의 이 단씨는 재정자립도 문제가 지자제의 성패를 가름하는 열쇠라는 시각에 전적으로 반대한다. 그는 “재정자립도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아예 민주주의를 부정하겠다는 발상이다. 민주주의는 부자나라만 하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이씨 역시 정당공천제에 의해 지자제 선거가 실시되는 것에 반대한다. 지역주민들의 신망을 받는 인물이 의회로 진출해야 하는데 타의(중앙당)에 의해 추천된 인물이 나오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그는 “정당공천제를 도입하면 치열한 당파싸움의 각축장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고 꼬집는다.

그러나 지자제 선거는 어차피 정당공천제와 다름없는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민자당 서갑구의 원창준 조직부장은 “선거는 조직이다. 그리고 조직은 말이 없다. 각 지구당마다 동 단위로 협의회장(동장격)과 그밑에 지역장-관리장(통장격)-반책을 가동시키고 있고, 예비후보들이 어떤 형태로건 지구당 지원을 전제로 해서 평소 조직관리를 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은 지구당 차원에서 선거운동이 이뤄질 것이다”라고 분석한다. 현재 예비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협의회장이고 지구당 부위원장 등 당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차피 의회의원 선거는 정당 중심으로 치러진다는 말이다. 원씨는 또 “후원회의 단체장들이 가장 큰 변수”라고 지적하면서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의외의 인물이 많이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

8개 구인 대구시 시의회의 경우 1개구에서 3~4명의 의원을 뽑아 모두 25~30명 정도의 시의원이 탄생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집권여당의 아성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그 어느 지역보다도 지자제 열풍이 강하게 불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대구에서조차도 아직 그 열풍이 일어날 기미조차 보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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