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논의 서두르면 동티난다
  • 베를린 ● 김호균 통신원 (sisa@sisapress.com)
  • 승인 1990.1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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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한국의 날’ 참석자들 입모아 지적… “북한 생활수준 후퇴” 평가도

“평양축전에 학생들이 참가하는 것을 한국 정부가 왜 막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수백, 수천명을 보냈더라도 한국사회에는 조금의 동요도 없었을 것이다.” 북한 주재 동독대사관의 마지막 대변인을 지낸 운터벡씨는 林秀卿씨 이야기가 나오자 이렇게 말했다. 지난 11월24일 베를린에서는 ‘코리아의 날’ 행사가 한국인, 독일인들이 참ㅁ가한 가운데 ‘방주’라고 이름붙여진 조촐한 2층집에서 밤 늦게까지 열렸다. 한반도 통일문제와 북한의 실정에 관한 발표와 열띤 토론에 덧붙여 한국음식을 시식할 기회가 주어진 행사였다. 60여명의 참석자를 수용할 만한 강당도 없이 작은 사무실 6개를 갖춘 이 집이 구 동독 출신의 ‘조선학자’들이 세운 ‘코리아 연구소’이다.

이날 첫번째 발표자로 나선 ‘조선학’ 석사 잉그릿 헨첼씨는 “북한에는 중국과 베트남에 비해 대기업이 많지만 시설들이 낡은 것이 큰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낮은 노동생산성이 북한경제의 가장 큰 애로”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기초산업은 육성되어 있지만 산업간의 불균형이 심각하다”하고 주장했다.

이에 벌어진 토의에서는 범민족대회 참가를 위해 3주간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한 한국여성이 “북한에는 올바른 사회주의가 건설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도시와 농촌 아이들의 옷차림이 똑같더라”는 예를 들었다. 이에 대해 헤르만 박사는 “옷차림이 똑같다는 것이 오히려 물자 부족을 반증해주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조심스레 반론을 폈다. 운터벡씨도 “상황이 매우 복잡하므로 겉모습만 가지고 판단하는 것은 무리”라고 거들었다. 서독출신으로 남북한을 모두 방문했고 김일성 주석과도 면담한 적이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 프로이덴베르크 교수는 “주체사상이 사회 전체에 관철되고 있는지는 회의적”이라고 말하면서 “북한이 전후복구에서 올린 업적은 인정돼야 하지만 지금은 이데올로기와 물적 욕구 사이의 모순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토론은 이어 남북한 비교로 넘어갔으며 사회를 맡은 헬가 피히트 교수는 “남한에서는 문화적 · 과학적 풍요를 누리고 있는 데 비해 북한에서는 그렇지 못하다”는 의견을 말했다. 그러자 한 독일인이 “양쪽에서 온 영화를 미학적으로 비교할 때 그러했다”고 받았다.

오후에는 남북한 기행보고가 있었다. 11월초에 한국을 다녀온 베커 박사는 이번 여행이 88년 올림픽 때 받은 인상을 교정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서두를 꺼낸 뒤 서울시장 면담, 현대와 삼성그룹의 노조 방문, 중소 인쇄소 방문, 대학생과의 대화 등에 관해 자세히 발표했다. 그녀가 서울에서 바가지 택시운전수와 가진 입씨름은 한 토막의 코미디였다. “5천원입니다.” “영수증 써주십시오.” “종이가 없습니다.” “종이는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못써드립니다.” “나를 초청한 ‘현대’에서 택시비를 지불해준다고 했으니 영수증을 가져다주어야 합니다.” “5천원은 안되고 3천원밖에 써드릴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나도 3천원밖에 드릴 수 없습니다.”

행사 3일 전 북한에서 돌아온 헤르만 박사가 보고한 북한의 초근 실정은 대단히 심각한 것이었다. “신의주 근교에서 최근 큰 홍수가 있었다. 원산 개성 근교의 작황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금년 수확량은 평년에 비해 30~50% 적을 것이다. 금년 겨울은 유난히 추울 것 같다.” ‘조 · 독사전’ 편찬을 위해 북한을 이미 여러차례 방문한 바 있는 그는 “북한의 생활수준이 80년대에 정체되었고 부분적으로는 70년대보다 후퇴했다”고 평가했다. 북한에 머무르면서 주민들과의 접촉이란 상상할 수도 없었다고 말한 그는 80년부터 87년까지 교환교수로 동베를린에 와 있던 북한교수를 만나고자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밝혔다.

 

“북한은 조속한 통일 바라지 않고 있다”

“외국인과 접촉하는 북한인은 엄선되는데 실례로 나와 ‘우연한’ 기회에 말을 나누게 된 두 소녀가 2주일 후 다른 외국기자들과 대화하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헤르만 박사는 설명했다. 그는 평양에 살면서 20년동안 친척을 한번도 방문하지 못한 북한인을 만난 적이 있다고 말하면서 북한에서는 여행허가를 받으면 “마치 큰 잔치라도 벌일듯한 분위기가 된다”고 덧붙였다. 체제변화 가능성에 관해서 그는 “인민의 대대적인 저항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김정일체제하에서 지도층이 개혁의 불가피성을 인식, 개혁을 추진할 것이다. 머지 않아 북한도 현체제로부터 벗어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그러자 남편과 함께 6년 동안 북한생활을 한 운터벡 여사가 “북한사회는 아래서 끓고 있다”고 동조했다.

이날 행사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문제는 한반도 통일문제였다. 행사에 참석한 독일인들은 발표자와 청중을 가리지 않고 한결같이 조급한 통일논의에 대해 경고했다. “한반도에서는 독일에서와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경제적으로는 순조롭게 결합될 가능성이 독일에서보다 높다. 문제는 사회심리적 · 문화적 측면에서의 차이이다. 독일식의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남북한 모두 붕괴할 것이다”하고 피히트 교수는 전망했다. 그의 전망은 가장 신중한 축에 들었다. 다른 독일인들은 “지금으로서는 남북한이 통일되지 않는 것이 낫다. 통일이 된다면 재난이 닥칠 것이다”라거나 “통일을 위해 국경이 개방되어 남쪽 자본이 북쪽으로 들어간다면 북한은 대응수단이 없을 것이다”라는 의견이 나왔다.

헤르만 박사가 통일에 관해 북한의 독문학자들과 나눈 대화에서 받은 인상은 “북한인들도 공식적으로는 통일을 옹호하는 입장이지만 가까운 시일 안에 통일이 이루어지기를 희망하지는 않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한 북한 학자는 “전체 민족이 자본주의를 원한다면 자본주의 하는 것 아니냐”는 놀라운 의견도 내세웠다고 한다. 이날 행사에서 한 한국여성이 주최측과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과의 연대를 호소했을 때 아무런 반응이 없었던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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