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대신 말로 합시다
  • 김형국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 본지칼럼니스트) ()
  • 승인 1990.1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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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생활시계’란 걸 본 적이 있다. 어느 외국인 교수댁에서 본 것이다. 부부생활시계는 내가 붙여본 이름이고, 그걸 직접 만들어 쓰는 분의 작명은 “여보 · 당신, 오늘 심기는 어때요?”이다. 열두 눈금 대신 여덟 눈금이고, 눈금에 숫자가 아닌 글이 적혀 있는 게 보통 시계와 다르다. 다른 점은 또 있다. 시침에는 ‘남편’, 분침에는 ‘아내’라고 바늘위에 적혀 있다. 눈금에 적힌 말은 내 사랑 여보, 여보, 사랑함, 상냥함, 냉랭함, 심술이 났음, 신경질이 났음, 화가 났음이다.

사용방법은 금방 짐작할 만했다. 내외가 아침에 일어나 거실로 나오면 부엌쪽에 걸린 시계에 그날 아침의 심기를 각자 시침과 분침으로 표시한다. 함께 심기가 불편해 있음을 알면 서로가 자제할 것이고, 한쪽은 사랑의 마음인데 상대방이 그렇지 않을 경우면 상대방을 감싸거나 공연한 언행을 삼갈 것이라는 게 내가 짐작해본 이용법이다.

부부는 피부를 맞대고 살아가는 사이이다. 그만큼 부닥치는 일도 많다. 감정의 고비가 시시각각으로 생겨난다는 말이다. 부부생활의 성공을 위해서는 대화의 문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많이 그렇지 서로가 대화의 짬을 내기도 쉽지 않고, 짬이 있다 해도 복잡미묘한 감정의 갈피를 말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통계지표는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

그런 걸 생각해보니 그 외국교수 부부는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화의 짬을 찾느라고 신경쓰지 않아도 좋고, 천갈래 만갈래 교차하는 미묘한 감정의 갈피를 대충 큰 덩어리 여덟개로 구분함으로써 감정표현의 편의를 얻고 있다는 점에서 그랬다.

부부생활은 물론, 세상살이를 하는 데도 말은 필수도구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는 말할 것도 없고, 정부와 국민 사이에 믿음을 지키는 데도 말이 다리를 놓는다. 그런데 정부가 국민에게 알릴 일을 말보다 통계수치에 의존하는 방식이 보편화된 것은 우리의 현대사가 경제성장에 매달린 다음부터이다. 5천달러의 1인당 국민소득, 한자리 숫자의 물가상승률 같은 통계가 나라살림의 형편을 단순명쾌하게 그리고 극적으로 알릴 수 있는 매체가 되었다.

그러나 국민생활이 절대빈곤을 벗어난 이후 사정은 달라졌다. 전체를 싸잡아 평균으로 말하는 통계가 반드시 실감나는 지표가 아니라고 여기는 사람이 생겨나고 있다. 나라는 국민소득 5천달러를 자랑하지만, 국민의 7할 정도가 그 평균소득에 못미치고 있음을 눈치채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통계수치는 겉가죽일 뿐 현상의 진정한 실체를 드러내는 데 역부족인 경우가 많다. 때문에 통계가 담고 있는 의미를 살펴봐야 할 필요성이 절실하다. 이 시대가 양을 중요하게 따지는 경제시대를 넘어, 삶의 질을 실감하고 싶어하는 복지시대에 진입했기 때문만도 아니다.

 

물가지수도 ‘압박적’ ‘안정적’ 등 쉬운 말로 표현하자

오늘의 삶의 수준을 나타내는 데 빠질 수 없는 중요 통계지표가 너무 전문적이어서, 그게 보통사람의 실제생활에 무슨 의미를 갖는지 알기 어렵다는 사실과도 관련이 있다. 이를테면 요즘 서울 같은 대도시의 대기오염은 시민의 건강을 위협할 정도로 심각하고, 그래서 정부가 경각심을 주자고 서울의 덕수궁 담장같은 데 오늘의 아황산가스가 0.04 피피엠이라고 알리는 전광판을 가동중이지만 과연 그 수치가 지닌 의미를 제대로 알아차리는 시민은 얼마나 될 것인가. 실토하거니와 환경오염 전공교수를 동료로 둔 나 스스로도 심각한 것만 알지, 전광판 오염수치의 등락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모르고 있다.

뒤늦게 미국 같은 데서 시도한 것을 본받아 환경처가 대기오염을 점수화해서 그게 우리 생활에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말로 하겠다’고 작정했다. 점수에 따라 양호, 보통, 유해, 매우 유해, 위험 등의 등급을 나누고, 유해이면 노약자나 폐질환자는 야회활동을 삼갈 것, 위험이면 모든 사람이 실내에 머물 것 등의 주의도 곁들일 것이라 한다.

환경당국이 오염을 말로 하겠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어려운 통계보다 말이 실감나게 환경문제를 환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환경문제만 그럴 게 아니라 이왕이면 경제문제도 그런 식의 접근방법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필품값, 전세값이 폭등한 올해의 물가는 서민생활을 크게 위협했다. 그런 만큼 상투적으로 ‘한자리 수 인상률’이라고 우길게 아니라 물가상승 때면 가장 먼저 고통을 받는 서민생활을 기준으로, 물가지수를 ‘위협적’ ‘압박적’ ‘안정적’ 등의 등급으로 구분해 말하는 것이 실감나는 정책지표가 될 것이다.

한 세기 전 영국수상 디즈렐리처럼 통계를 철저하게 불신한 사람은 많다. 통계처럼 조작이 쉬운 게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제시대를 겪는 동안 우리사회는 통계를 지나치게 믿게 되었다. 이제 세월이 달라졌다. 통계도 중요하지만 이 시대는 믿음의 말을 듣고 싶어한다. 양과 크기를 재던 시대를 넘어, 질과 의미를 말해야 하는 시대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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