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학은 21세기적 변혁이론
  • 조혜정 (객원편집위원ㆍ연세대ㆍ인류학) ()
  • 승인 1990.1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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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사회 모순 극복의 대안 … 가부장제 등 장애물 수두룩

  여성학은 긴 인류사를 통해 간과돼온 현상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려는 의도에서 생겨난 것으로 사회변혁운동의 와중에서 생겨난 것으로 사회변혁운동의 와중에서 태동하였다는 점에서 그 특성을 갖는다. 마르크시즘은 서구에서 18, 19세기에 걸쳐 광범위하게 일어난 노동자의 변혁운동을 토대로 체계화된 사회변혁이론이다. 반면 여성학은 20세기 후반부터 일기 시작한 대중적 여성해방운동을 토대로 인간의 내적 체험까지도 엄격히 통제되는 관리사회의 모순을 극복할 21세기적 변혁이론을 제시하리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우리사회의 경우 여성학은 엄밀한 의미에서 수입된 것이다. 일제 때 민족해방운동이나 노동운동에 여성들이 참여해왔고 해방 후에도 근대국가건설이나 노동자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운동에서 여성들이 활약해왔다. 그러나 그런 움직임을 ‘여성존재에 대한 총체적 재규정’을 내걸고 가부장제에 대한 전면전을 선포한 여성주체회복 내지 여성해방운동과 직접 연결시키기에는 무리함이 따른다. 여성해방운동은 여성의 사회ㆍ경제적 자립을 가능케 하는 어느 정도의 생활력 수준을 필요조건으로 하므로 더욱 그렇다. 여성학이 최근 대학 안팎에서 큰 호응을 얻어낸 것도 이러한 사회ㆍ경제적 변화와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이제 10여년의 역사를 가진 여성학은 본격적으로 토착화시기에 들어섰으나 장애세력도 만만치 않다. 바깥으로는 사회전반에 걸친 보수적 가부장 세력이 강하게 버티고 있고 안으로는 현재 사회과학자들이 ‘신봉’하는 모든 사회이론이 실은 ‘수입’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유독 여성학에 대해서만은 ‘수입’이라는 딱지를 잊지 않고 붙인다. 변혁운동권내에서조차도 여성해방운동의 독자성을 인정하기에 무척 인색한 것으로 보아 가부장적 세력의 견고함을 엿보게 된다.

  여성해방의 열기가 없는 가운데 제도적으로 독립한 여성학과가 겪는 자체내 어려움도 없지 않다. 대다수의 학생들이 여성으로서 억압을 피부로 느껴 여성학을 전공하게 되는 서구사회의 경우와는 달리 대학을 갓 졸업한, 그것도 입시 위주의 사회에서 체험의 기회를 체계적으로 빼앗겨온 학생들이 여성학을 전공하게 되어 억압적 체험을 운동으로 연결해내기에 한계를 안고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그 한계는 자신의 체험에 대한 성찰에 앞서 남의 체험을 규정하려드는 ‘엘리트주의적’ 경향이나 이론논쟁에 치중하는 경향에서 나타난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성학은 조만간 여성해방운동 현장의 성장과 함께 탄탄히 우리사회에 뿌리를 내릴 것이다. 여성학이 현실에서 멀어진 학문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고 이론과 실천이 함께 가는 사회운동의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할 날도 멀지 않다. 그때 우리는 오랫동안 주체의 상실을 경험해온 여성들이 바로 서가는 과정이 곧 자아분열적 현대문명을 치유하는 과정이었음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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