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 들어오고 ‘돌’ 나갔다지만
  • 김 당 기자 ()
  • 승인 2006.04.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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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동 사건 전말 ... ‘납치-탈당번복-재번복’이 ‘대통령 집안일’인가


 

 영화에서나 일어남직한 사건이 최근 ‘실제상황’으로 벌어졌다.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현역의원이 경찰에 의해 ‘납치’된 사건은 그 정황이 영화처럼 극적이다. 대통령의 ‘집안일’에 개입한 것이 경찰 말고도 ‘초호화 캐스트’로 구성되었다는 점에서 오히려 영화보다 더 극적이다.

 대통령과 정치담당 특별보좌관, 국가안전기획부장, 대통령의 처남인 국립대학 총장과 손아래 동서인 국회의원, 경찰서장 등이 바로 국회의원 납치사건의 등장인물이다. ‘대통령의 집안일’이라는 납치사건의 당시상황을 관련자들의 발언내용과 목격자 증언 등을 토대로 재구성해 보면 이렇다. 대통령의 처남이자 민자당 국회의원인 김복동씨가 민자당을 탈당해 국민당에 입당할 것을 최종결심한 때는 11월17일 아침 8시. 서울 시내 모처에서 국민당 정주영 대표, 김동길 의원과 만난 김의원은 이 자리에서 자신의 최종결정을 밝힌 것으로 나중에 알려졌다. 이후 김의원은 역삼동 자택으로 돌아가 측근에게 “민자당으로는 국가발전과 지역발전을 결코 이룰 수 없다고 판단해 탈당을 결심했다”고 밝힌 뒤 지구당(대구 동갑구)에 기자회견 준비를 지시했다.

 김의원의 탈당 움직임이 언론에 감지된 것은 오후 3시께부터. 김의원은 2시30분께 지구당 조직부장 오진필씨에게 전화로 “탈당할 예정이니 행정절차를 밟도록 하라. 모든 것은 대구에 가 얘기하겠다. 탈당과 관련된 의견을 물을 테니 당직자들을 소집하라”고 지시했다. 이어 김의원 비서 윤홍일씨가 “김의원이 직접 탈당배경을 설명하는 기자회견을 오늘 저녁 7시에 가질 수 있도록 준비하라”는 전갈을 하자 지구당은 4시까지 언론사에 중대발표가 있을 것임을 알려 사태가 긴박하게 돌아갔다.

“김의원 차를 돌렸습니다” 무전 보고

 그러나 지구당 이규락 사무국장은 공항 영접 준비를 하던중 대구공항이 감시받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 “대구공항이 통제감시하에 있으니 차편을 이용하는 것이 좋겠다”고 건의했다. 김의원은 예약해 둔 대한항공 17시 20분발 비행기편을 포기하고 승용차를 이용하기로 했다. 김의원은 수행비서 김진간씨, 운전기사 이상교씨 등 3인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김의원의 승용차(포텐샤) 대신 친척의 소나타 승용차(서울1 느1675)로 바꿔타고 대구로 향했다. 이때가 오후 4시10분께였다.

 한편 노대통령은 이현우 안기부장의 주례보고(매주 화요일 오후 4시께) 석상에서 처남의 탈당 및 입당 계획을 보고받고 크게 당황해 소재 파악을 지시했다. 청와대 비서실에서는 김의원이 5시20분 1l행기를 탄다는 정보를 입수해 서동권 정치특보와 안교덕 수석비서관 등이 공항으로 갔으나 김의원은 나타나지 않고 함께 떠나기로 했던 국민당의 박철언, 유수호, 김해석 의원들만 나타난 것으로 알려졌다(서 특보와 안 수석은 공항에 간 것을 부인했음).

 중부고속도로를 이용하여 대구로 가는 도중 김의원은 추풍령. 칠곡 그리고 동대구 톨게이트 근처에서 자신의 소재를 카폰으로 지구당에 알렸다. 마지막 전화가 걸려온 것은 7시쯤으로 “길이 막혀 30분 정도 늦어지겠다” 는 통보였다. 김의원 일행은 “지구당사에도 사복경찰 30여명이 집결해 있다”는 보고를 받았으나 대구 톨게이트는 검문 때문에 차가 밀려 있는 줄은 몰랐다. 지구당 당직자들도 탈당으로 인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려는 경호경비 병력으로만 짐작했을 뿐 납치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지구당사 경찰력은 톨게이트에서 놓쳤을 경우를 대비한 마지노선이었던 셈이다(이들은 김의원이 납치된 직후인 7시 35분경 모두 철수했다).

 한편 안기부 직원들과 대구 동부서 사복경찰 등 30여명이 동대구 톨게이트에 나타난 때는 6시30분께. 이들은 자기 신원을 구두로 밝힌 뒤 톨게이트에서 시내쪽으로 1백여m떨어진 동대문 톨게이트검문소에서 바리케이드를 치고 차량검문을 시작했다. 현장에는 동부경찰서 정보과장, 안기부 직원 등이 타고온 자가용 승용차 10여대가 길 양편에 배치된 채 사복경찰들이 차량통행을 완전 차단한 상태였고 진입차량 행렬은 수백m에 이르렀다.

 김의원 일행이 탄 차가 톨게이트 근처에 도착한 것은 7시30분께. 검문소 옆을 막 지나는 중 “차 막아라” 하는 고함소리와 함께 김의원 차는 머리가 짧고 무전기를 든 30여명의 사복경찰에게 둘러싸였다. 안기부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차문을 열고 “저희가 모시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잠깐 비서진과 경찰이 몸싸움을 하는 사이 검정색 그랜저 승용차 (○○ 3175)가 접근했다. 그러자 사복경찰들이 김의원을 그랜저에 밀어붙였고 김의원이 변장용으로 입은 점퍼를 양복으로 갈아입고 차에 타자 그랜저가 상행선 톨게이트쪽으로 빠져 나감으로써 상황은 끝났다. 김의원을 태운 차가 빠져나가자 사복을 입은 지휘관이 무전으로 “김의원이 차를 돌려 상경했습니다”라고 보고했고 사복경찰들은 ‘대구 폴리스’라는 표지가 붙은 승합차(대구5 라2691)에 타고 철수했다.

 저녁 8시쯤 김의원 납치 소식이 알려지자 기자회견을 준비하던 당직자, 당원 등 1백여명은 경악을 금치 못했고 김비서 등이 메모한 차량번호 등으로 기자들이 차적을 조회해본 결과 동부서 차량으로 밝혀졌다. 지역번호를 확인 못한 납치 차량은 안기부 대구분실의 검정 그랜저와 같은 번호 (3175)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권승흡 동부서장은 “현장에 있던 경찰차량은 통상 그 지역을 순찰하던 차량이었고 납치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발뺌했다. 납치된 김의원한테서 카폰으로 연락이 온 것은 8시30분쯤으로 김의원은 “형님(김익동 경북대 총장)하고 상의중이니 걱정마라”하고 전했다.

검문소 일지엔 “정보과장과 함께 근무”

 김의원 납치 소식이 전해지면서 언론의 진상확인 및 소재파악 문의가 빗발치자 청와대에서도 노대통령의 ‘정치적 중립’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밤 10시쯤 김학준 공보수석이 밝힌 배경설명은 “노대통령이 오후 늦게 라디오뉴스로 김의원의 탈당 예정 보도로 들었다. 인척관계에 있어 집안문제이므로 어떻게 된 일인지 경위를 직접 들어보기 위해 김의원을 찾았으며 김의원은 상경중에 있다”라는 궁색한 내용이었다. 또 다음날 아침 김중권 정무수석은 기자들에게 “노대통령이 처남을 보자고 한 것이 잘못이냐. 대통령께서 김의원을 불러 상의를 해보겠다는 뜻인데 이를 두고 왈가왈부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는 정치적 중립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18일 오전 청와대에서는 김의원과 김익동 총장, 금진호 의원 등이 당적문제를 논의중인 것이 알려졌고 각 언론사에는 ‘김복동의원’ 이름으로 된 탈당 번복 보도자료가 팩시밀리를 통해 전해졌다. “대통령과 가족의 우려에 따라 자발적으로 상경했으며, 이들의 충고를 받아들여 민자당에 남겠다”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 보도자료는 김의원의 매제인 금진호 의원이 작성해 김의원 비서실의 여직원을 시켜 접수케 하고 자신의 개입 사실을 밝히지 말도록 발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납치 현장에 민자당 간부가 있었다는 국민당의 주장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김영삼 총재가 금진호 의원을 통해 노대통령에게 김의원을 잔류시키도록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슷한 시각에 노대통령은 3당 대표와 3부요인을 초청해 정부의 공명선거 실현을 위한 엄격한 법집행과 중립의지를 재천명했다. 현승종 총리는 국회에서 “‘가족회의’에 공무원이 개입 됐는지는 아는 바 없다”고 답변했다. 청와대가 기획하고 국가안전기획부가 연출하고 국립경찰이 우정출연한 <대통령의 패밀리>라는 영화는 이렇게 끝난다.

 그러나 동대구 톨게이트 검문소 11월17일 근무일지에는 근무자 이름(경사 전열하, 상경 권혁진, 상경 전성호 등)과 함께 “18:00~19:0 정보과장님과 함께 소내 근무에 당함”이라고 적혀 있었다. 경찰서 정보과장이 검문소에서 전경들과 함께 근무했을 정도이면 누가 내린 명령이었을까는 쉽게 짐작이 간다. 이럴 경우 대통령 선거법(제147조)은 “누구든지 6년 이하의 징역, 금고 또는 3백만원 이상 6백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한편 김의원이 민자당을 탈당하고 대신 무소속 정호용 의원이 민자당에 입당한 것과 관련해 민자당의 박희태 대변인은 “돌이 나가고 옥이 들어왔다”는 논평을 냈다. 그의 말대로 김의원이 돌이라면 무엇 때문에 친인척과 공권력을 동원해 잔류시키려 했는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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