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리한 창 막은 두꺼운 방패’
  • 서명숙 · 조용준 기자 ()
  • 승인 2006.04.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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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후보 초청 관훈토른 / YS 도덕성·정직성, DJ 사상성에 질문 공세


 


중견 언론인들의 연구 친목단체인 관훈클럽이 대통령후보 초청 토론회는 특별한 무게를 갖는다. 87년 관훈토론회는 대통령선거의 변수가 되었을 정도다. 지난 1일과 2일 金泳三 후보와 金大中 후보는 87년에 이어 토론회에 초청돼 질문 공세를 받았다. 과연 두 김씨의 5년 간에 걸친 변모는 언론인들의 창에 어떻게 투영돼 나타났는가. 김영삼 후보는 지도자의 도덕성 및 정직성과 관련된 항목에, 김대중 후보는 사상문제에 질문이 쏟아졌다는 것이 이번 관훈클럽 특별 회견의 특징이다.

 87년 관훈토론회에서 김영삼 후보에 대한 질문 가운데 특기할 것은 △ 어린 시절 하숙방에 ‘미래 대통령 김영삼’이라고 써붙인 것과 관계된 ‘대통령병’ 여부 △ 군 복무의 사실여부 △여배우를 비롯한 여성과의 스캔들 여부 △54년 11월에 있었던 사사오입개헌 때 부결된 개헌안을 가결한 것으로 뒤집는데 김후보도 거기에 서명했는지의 여부 △민추협 시절 金鍾泌씨에게 같이 싸우자는 제의를 했는지의 여부 △86년 全斗煥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내각책임제를 내막적으로 수락했는지의 여부 △75년 박정희 · 김영삼 회담 때 정치자금 수수 여부 등이었다.

 그러나 이번 특별 회견에서는 여성 스캔들 문제를 제외하고는 이들 질문이 다시 나오지 않았다. 대신 3당합당과 내각제 합의 각서, 내각제 개헌 여부, 무소속 의원들의 입당과 관련된 정직성과 도덕성 문제가 집중적으로 거론되었다.

 김후보가 87년에 내세웠던 ‘군정 종식’과 90년 3당합당 당시의 ‘구국의 결단’은 그 두 낱말 사이에 상당한 이질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87년 군정 종식 주장과 관련해 김후보는 “노태우 총재는 전두환 대통령과 함께 군인으로 12 · 12사태를 일으켜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사람이다. 이 사람이 7~8년 동안 우리 국민을 얼마나 괴롭혔는가. 수많은 사람이 죽고 감옥에 가고, 최루탄에 맞아 눈물을 흘리고 지금도 고난 속에 있다. 또 전직 보안사령관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할 때 우리 국민은 ‘그것 참 잘 되었다’, 나는 그것이 절대 국민에게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답했었다. 이번 3당합당에 대해서는 “3당합당이 없었다면 헌정 중단이 왔다고 말할 수 있다. 만일 3당합당을 안했으면 우리나라는 반드시 불행을 겪었으리라고 생각한다. 3당합당이야말로 나라를 안정시킨 중요 결단이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YS “여성과의 스캔들 소문은 공작정치”

 내각제 개헌 검토 여부에 대해서 87년 대답은 "내각제를 저한테 이야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또 그것을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이번 역시 "내각제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일관되게 대답했다.

 정치자금 문제 역시 87년과 중복된 질문이었다. 87년에는 "아마 내가 여러 사람 가운데 친구가 가장 많을 것이다. 진실된 마음으로 나를 돕고 싶어 하는 친구가 많다. 그래 얼마 안되는 돈을 모아 쓰고 있는데 돈이 부족하다"는 답변이었다. 이번 답변 역시 비슷한 내용이나 금권선거를 강력하게 비난한 것이 특징이다 주된 내용은 "내 자신이 중립내각을 구성하라고 제안했다. 스스로 여당 총재로서 기득권을 포기한 것이다 지금 민자당은 자금 사정이 아주 어렵다. 돈을 쓸래야 쓸 수 없는 형편이다. 누가 돈 많이 쓰는지 국민은 다 안다. 돈이 지배하는 그런 시대는 군사 쿠데타 보다 더 나쁘다고 생각한다. 국민이 단호하게 대처하리라 믿는다"는 것이다.

 통일정책은 87년과 차이가 나는 부분이다. 당시에는 소위 5단계 통일론으로 "민주정부의 구성, 북한 민주개혁 촉구 등 여러가지 비정치적인 교류를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이것은 서로 실상을 공개한다는 의미다"라고 간단하게 말했다. 이번은 예전의 민정당 통일정책이었던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 따라 “이는 연합을 말하는 것이다. 단계적으로 연합한 후에 선거를 치루자는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이번 회견에서 김후보가 특히 강조한 것은 자질론과 대비되는 지도자 결단론이었다. 그는 “지도자 한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 그 지도자의 결단에 따라 나라를 강하게도 약하게도, 망하게도 살리게도 할 수 있다”고 자신이 결단의 지도자임을 강조했다. 또 경제 대통령과 관련해서는 “대통령은 결단을 내려 끌고 가야지 미주알 고주알 알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흥미로웠던 점은 여성 스캔들을 묻는 질문에서 “불행한 일이지만 우리나라에는 공작정치 전문가가 있다. 누가 한지도 알고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심지어 세대교체를 주장하는데 이런 못된 짓 하는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한다. 세대교체를 말하는 사람이야말로 청산되어야 할 사람이다. 감히 양김 물러나라고 어떻게 그러느냐. 그들은 우리가 민주화 투쟁할때 공작정치하고 정경유착한 사람들이다”라고 세대교체론자들을 매우 비난한 사실이다.

 한편 87년 당시 창당 일정에 바쁜 평민당 창당준비위원장으로 토론회에 참석했던 김대중 후보는 이번에는 통합야당 민주당의 대통령후보로 초대됐다. 87년 관훈토론에서 김후보는 김영삼 후보와 마찬가지로 △불출마 선언과 단일화 실패 △대미 관계와 관련된 발언을 둘러싼 일관성 문제 △노선 · 사상 문제 등에 관해 집중적인 질문 세례를 받았다. 다섯번의 질문과 한차례의 보충 질문이 모두 ‘김후보의 이미지에 가장 큰 장애 요인이 되고 있는’ 정치적 일관성과 관련된 것이었다.

DJ, 정치노선 일관성 문제에 ‘곤혹’

 이번에도 김후보 정치 노선의 일관성 문제는 여전히 패널리스트의 주된 관심사로 등장 했다. 정치 노선의 일관성에 회의를 가지는 근거로 87년에 거론됐던 불출마 선언과 단일화 실패 대신에 최근 전국연합과의 정책 연합, 5공청산 문제, 중간평가 유보 등이 등장했다는 점이 달랐다. 김후보는 자신이 주장하는 중도우파 노선과 재야 단체인 전국연합과의 정책연합과 관련해 사상성에 의문을 제기한 네차례의 질문에 "전국연합과 연립내각을 구성하지 않으며 그럴 계획도 없다. 다만 민주당이 내건 정책을 그 쪽이 동의한 것뿐이고 받아들일 수 없는 5~6가지는 합의하지 않았다"면서 "중도우파의 입장은 변함 없다"고 정치노선을 확실히 표명했다.

 군과의 관계 · 통일관도 87년에 이어 여전히 관심거리였고, 여기에 이른바 ‘간첩단 사건’과 ‘북한 김일성의 민주당 지지 대북방송’이 추가되었다. 87년에 패널리스트들은 김후보와 군과의 불편한 관계를 지적했는데 이번에도 “당시 정승화 계엄사령관이 언급했듯이 군부와의 거부감이 아직도 남아 있다고 보는가. 또 군을 효율적으로 통계할 수 있는가”를 물었다. 김후보와 민주당의 끈질긴 노력에도 과거의 관심사가 여전히 거론된 것은 ‘李根熙 비서사건’과 ‘민주당 의원 간첩단 사건 연루설’ 때문인 듯했다.

 그러나 김후보의 5년 간의 제도권 경험이 가져온 변화도 엿보였다. 우선 “광주사태와 관련해 정치 보복의 가능성은 없는가” “집권하면 소외 계층을 우대하는 둥 한풀이 경계 운용을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 (87년 질문 요지)는 등 정치적 경제적 보복의 가능성과 지역감정에 관한 질문은 전혀 제기되지 않았다. 이는 일관되게 ‘정치적 대화해 · 국민적 대화합’을 주장하며 최근에는 호남지역 유세까지 포기한 채 지역감정 유발을 극력 자제한 김후보의 노력이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가지게 된 징표이기도 하다.

 87년에 집중적으로 제기됐던 김후보의 학력과 출생 연도, 참모들이 등 돌린 이유, 《동교동 24시》의 사실 여부 등 김후보 개인의 도덕성이나 진실성을 둘러싼 질문도 이번에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7년 간의 공백기 끝에 다시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냈던 87년과는 달리 지난 5년 간은 제도권 제1야당의 총재로서 정보가 알려질 만큼 알려진 때문이다. 대신 “5년 안에 세계 8강으로 경제를 도약시킨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5년 동안에 아파트 3백만호를 건설하겠다고 공약했는데 다른 경제 부문에 충격을 주지 않으면서 가능한가”하는 보다 실물적인 질문이 던져졌다.

 한 정치학 교수는 토론회장을 빠져나가면서 “전설과 설화, 흑색선전으로 가려졌던 김대중 후보가 많은 것을 털어놓은 87년에 비해 이번에는 새로운 것이 덜한 느낌이다. 그만큼 김후보에 관해 많은 것이 알러졌다는 이야기다”라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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