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중국이냐, 두개의 중국이냐
  • 변창섭 기자 ()
  • 승인 2006.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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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입법원 선거 ‘중국과의 관계’ 최대 쟁점…유권자, 여당의 ‘1국2체제’ 동조


 

 우리나라 대통령선거가 실시되는 12 월18일 다음날, 우리 못지않게 민주화에 대한 기대를 안고 투표장으로 향할 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국교를 단절한 대만 사람들이다. 우리의 국회에 해당하는 입법원 의원선거를 앞두고 대만 유권자들 가슴이 설레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번 선거는 올해 초 의원정수를 종전의 2백 82석에서 1백61석으로 줄이는 내용의 헌법개정이 있은 후 처음 열리는 정치행사이기 때문이다. 과거 어느 때보다 입후보자가 늘었고 대만독립과 중국과의 관계 재조정 문제가 선거 쟁점이 된 것도 지나칠 수 없는 점이다. 

 이번 선거가 비상한 관심을 끄는 까닭은 여러가지다. 이번 선거는 지난 87년 계엄령 해제에 이어 88년 1월 이등휘 총통 시대가 열리면서 민주화의 숨통이 트이기 시작한 후, 역대 어느 선거 때보다 자유롭고 민주적인 분위기 속에서 선거가 실시된다. 게다가 대만 정부가 지금까지 불법으로 간주한 야당 후보의 '대만 독립' 주장을 허용하겠다고 밝힘에 따라 '하나의 중국' 정책을 놓고 현상유지를 택할 것이냐, 아니면 변화를 택할 것이냐를 가름하게 된다. 

 대만의 민의 대변기관으로는 입법원 외에 총통을 선출하는 기능과 개헌권을 가진 국민대회가 있다. 국민대회 정수는 3백26명. 이 중 1백명은 중국 본토로부터 건너온 '원로'와 해외 화교 대표이다. 입법원은 정부의 살림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예산권과 일반 입법권을 쥐고 있어 실제 대만 정치에 끼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다. 

후보자 대부분 대만 출신 2세대 정치인

 야당 인사들은 “이번 입법원 선거는 진정 한 의미에서 두번째에 불과하다”라고 비아냥거린다. 지난 47년 중국 본토에서 실시한 입법원 선거가 첫번째고, 이번이 두번째라는 것이다. 야당측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공식기록을 보면 입법원은 47년 대만정권 수립 이후 최근까지 89차례 개원했다. 그러나 과거 선거는 국민당 일당 독재시대에 치러졌다는 점에서 민주선거로 보기 어렵다. 

 이번 선거의 큰 특색 중 하나는 새로 선출될 의원 1백25명 대부분이 순수 대만 사람이 라는 점이다. 47년의 입법원 의원이 선거 1세 대라면 이들은 2세대다. 2세대 정치인은 1세 대에 비해 중국과의 관계에 대해 개방적이다.  또 이들 중 일부는 독자적인 정부수립을 주장해 선거 결과에 따라 대만 중국 관계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번 선거의 최대 쟁점은 앞으로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조정하느냐 하는 데 있다. 집 권 국민당은 '하나의 중국, 두개의 정치체제' 를 택해 현상유지를 원하는 반면, 제1 야당인 민진당은 '하나의 중국, 하나의 대만' 정책을 당의 정강으로 정하고 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인구 2천만명 중 대다수가 아직은 현상유지를 원한다. 이 때문에 중국으로부터 분리독립을 당 강령으로 채택한 민진 당 후보들은 선거유세에서 드러내놓고 당의 강령을 강조하지 않는다. 

통일을 염두에 둔 국민당의 '하나의 중국안'이나 민진당의 '하나의 중국 하나의 대만안'을 절충한 제3의 대안이 요즘 화제를 모으는 '두개의 중국안'이다. 국민당 내부에서 조심스럽게 논의되는 이 안은, 중국 정부도 인정하고 대만 정부도 인정하자는 것이다. 얼핏 보면 민진당이 내세운 '하나의 중국, 하나의 대만안'과 비슷한 것 같지만 실은 훨씬 과격하다. 민진당안은 우선 중국으로부터 분리해 궁극적으로 독립하자는 점진적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두개의 중국안'은 전제부터가 대만을 하나의 국가로 인정받자는 것이다. 중국측에서 보면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내용이다.  지난 10월29일 중국 고위관리가 북경을 방문한 대만 언론대표단 에게 “중국은 피를 흘리는 한이 있어도 대만의 독립을 저지할 것”이라고 경고한 것도 이런 안에 대한 거부감을 나타낸 것이다. 

 대만 선거법은 각 후보가 당으로부터 공천을 받지 못해도 독자적으로 당의 이름을 내걸고 입후보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국민당은 본토인 20명을 공천했는데, 이 중 11명이 수도인 대북(유권자 2백만명)에서 '두개의 중국안'을 지지하는 자당 독자출마 후보와 맞서 게 돼 흥미롭다. 9석이 걸려 있는 대북 남부 지역에서도 '하나의 중국안'을 지지하는 골수파 국민당 후보 5명과 '두개의 중국안'을 지지하는 야당 후보가 맞선다. 국민당내 '두개의 중국안'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대만 출신자로 이뤄진 '현인클럽'에 속해 있다. 이 계파는 대만을 국가로 인정받고, 빠른 시일 안에 유엔에 가입하며, 오는 96년부터는 총통을 국민이 직접 뽑자고 주장한다. 아직은 미미한 세력이지만 이번 선거 결과에 따라 현인클럽은 당내 최대 계파로 성장할 가능성도 있다. 

 선거를 앞두고 국민당은 주식 시장 침체와 건설공사 수주를 둘러싼 정부관리의 개입사건 등 악재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전통적으로 보수성향이 강한 유권자들이 현상유지를 위해 국민당 후보를 지지하리라고 예상한다. 국민당은 이번에 모두 98명을 공천했다. 정원인 1백25 명을 모두 공천하지 않고 확실하게 야당 후보를 누를 수 있는 98명만 공천한 것이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이번 선거결과는 총통과 행정원(내각에 해당) 사이의 세력균형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현행 헌법에 따르면 장관은 의원직을 겸할 수 없다. 대만에서 출생한 정치인들은 현재 본토 출신 정치인이 너무 많은 각료직을 차지했다고 불평해왔다. 따라서 순수한 대만 출신 정치인이 의회에서 절대다수를 차지하면 본토 출신 정 치인은 예전처럼 많은 수의 각료직을 차지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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