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판 휘말린 牧者와 스님
  • 정희상 기자 ()
  • 승인 2006.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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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성직자, 특정 후보 지지로 물의…정당 ‘표몰이’가 원인

 

 

 종교계가 심상치 않다.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일부 종교 사이에 ‘종교입국론’을 방불케 하는 물밑 움직임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예배당과 사찰에서 일부 성직자들에 의해 울려퍼지는 기도문 (축원문)은 이번 선거가 국가지도자를 뽑는 행사인지 종교지도자를 뽑는 행사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대목도 많다. 

 특히 기독교와 불교계 일각에서 벌어지는 노골적인 특정 후보 지지운동은 '종교 전쟁' 으로 비화할 조짐마저 보인다. 장로가 대통령이 되어야 기독교가 발전할 수 있다든가, 1천 6백년 역사와 가장 많은 신도를 가진 불교를 중흥시키기 위해서는 ‘불자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는 식의 보이지 않는 대결의식마저 바닥에 깔려 있다. 이런 현상은 일부 대통령후보가 종교적 연고를 내세워 표몰이를 하려는 선거전략 때문에 빚어진다고 볼 수 있다. 

 대통령선거에 대한 기독교계의 움직임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뉘어져 있다. 기독교 신자인 김영삼 후보 지지 그룹과 공명선거 실천운동추친 세력이 그것이다. 그러나 선거전 중반에 접어들면서 '기독교인 대통령 추대'를 명분으로 한 김영삼 후보 지지운동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는 것이 기독교계 내부의 설명이다. 

 현재 교회 내부에서 김영삼 후보 지지운동을 펼치는 중심축은 김후보 사조직인 나라사랑협의회(이하 나사협 ·본부장 김차생 충현 교회 장로)이다. 87년 대선 직전 결성된 나사 협은 김후보가 다니는 서울 역삼동 충현교회 장로들이 중심이 돼 결성한 범교파 평신도단체로 전국에 1백70여개 지역본부를 두고 있다. 

목사 “청와대에 찬송가 울리게 해달라”

요즘 나사협은 전국 각지에서 김후보 지지를 유도하는 대규모 기도회를 열고 있다. 지난 11월30일 오후 6시 나사협 노원지역본부 (본부장 김영구 상계제일교회 장로)가 개최한 '나라와 민족을 위한 특별기도회'에서는 제일감리교회 심원보 목사 등 9개 교회 목사가 나와 하나같이 "청와대에서 찬송가가 울려퍼지게 해달라" "교회 앞에 선서하는 대통령이 뽑히게 해달라"는 둥 개신교 장로인 김 후보의 당선 기원문을 낭독했다. 나사협은 지난달 중순 부산지역 기도회를 시작으로 투표 직전까지 이러한 김후보 지지 기도회를 전국적으로 개최할 예정이다. 

 개신교 내부의 이같은 정치바람은 대다수 목회자들이 비판적 견해를 보이는데도 신도에 크게 영향을 끼치는 추세다. 한국 기독교 교회협의회 소속 김모 목사는 “목사 자신이 지닌 정치성향을 표현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부 교회에서는 교인들 정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김후보 지지발언을 하는 예도 많다”고 말했다. 

 장로교 최대 교파인 예장통합 기장 감리 성공회 구세군 복음교회 등 6개 교단으로 이뤄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KNCC)는 최근 신앙에 기초한 8개 항의 정책을 기초로 대통령선거에 임하자고 결의했다. 이들은 민주사회구현을 위한 기독교대책위원회(이하 대책 위)를 구성하고 '대통령선거와 그리스도인의 자세'라는 성명을 내 교회가 특정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지 말라고 호소했다. 개신교 1백20개 교단 중 6개 교단(3백만 신도)만 엮일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도 대책위는 교회가 정치바람에 예속되어서는 안된다는 목소리로 신선한 맞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대책위 실무위원인 김경남 목사는 “지금까지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주장하며 성서 속의 정의를 구현하고자 현실에 참여한 목회자 들을 비판하는 입장에 섰던 분들이 ‘장로 대통령’ 추대 운동에 적극 앞장서는 것은 이해가 안된다”면서 “문제는 특정 후보 지지운동 을 교계에서 집단화하고 폐쇄적인 종교 전쟁처럼 몰아가는 분위기”라고 지적했다. 

 기독교 일각의 특정 후보 지지운동이 노골적이라면 불교 쪽은 물밑에서 은밀히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불교 관계자들의 말이다. 

스님 “불자 70~80% 정후보 지지”

 그러나 일선 사찰에서 진행되는 각종 법회를 들여다보면 불교계 역시 특정 후보 지지 분위기가 널리 확산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조계사에 있는 한 스님은 "전국의 불자 70~80%가 정주영 후보 지지 쪽으로 쏠려 있다" 고 말했다. 불교 중흥을 겨냥한 정후보의 각종 불교 관련 공약과 특별시주 등의 선거운동이 불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당측은 “2천만 신도에 1천6백년 역사를 가진 불교가 1백년도 채 안된 개신교에 비해 상대적 정책 빈곤 현상을 겪고 있다”고 주장하며, 불교 신자들의 염원인 불교 중흥에 앞장설 적임자는 정후보라는 주장 아래 전국 사찰을 파고들고 있다. 지역별 불교회관 건립 · 불교 텔레비전 방송 및 지방방송 설치 허가 · 승가대 4년제 승격 · 불교재산관리법 폐지 등 불교계의 숙원사업을 공약으로 내건 것도 한 특징이다. 

 이같은 정후보측의 불교 공략은 기독교 일각의 '장로 대통령' 추대 움직임에 불안심리를 가지고 있는 일부 불자들을 부추김으로써 배타적 종교대결 양상으로까지 나타나고 있다. 특히 최근 정후보측이 전국 대부분의 사찰에 당선 후 지원 공약과 함께 축원문을 돌린 사실이 밝혀졌다. 축원문이란 법회 때 주지스님이 뽑아 읽는 기도문으로 부처님 전에서 엄숙하게 낭독하기 때문에 신도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갖는다. 서울 구로구 보현사 ㅂ 스님은 “정후보의 축원문이 왔으나 차마 읽을 수 없어 찢어버렸다”면서 “전국의 모든 사찰에 축원문이 간 것으로 안다”라고 전한다. 

 한때 김영삼 후보 지지발언을 했다가 불교계 안팎의 비판으로 곤욕을 치른 서의현 조계종 총무원장도 최근 '정주영 지지' 쪽으로 돌아섰다는 게 불교계 주변의 설명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일로는 지난 11월24일(음력 11 월 초하루) 서울 조계사에서 열린 법회를 꼽는다. 불교계의 숙원사업인 불교회관 건립 약속에 대한 답례 형식으로 정후보를 초청한 이날 법회에서 조계사 주지스님은 신도 1천여명을 향해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다” “여러분도 이만하면 주지인 내 뜻을 알아차렸을 줄로 믿는다”고 말했다. 서총무원장 비서실장 자리인 조계사 주지의 이같은 발언을 놓고 불교계에서는 서원장의 뜻이 밝혀진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사태가 이렇게 전개되자 김영삼 후보 쪽도 최근 전국 사찰에 시줏돈을 넣은 축원문 보내기 공세를 펴고 있다. 

 그러나 불교계 일각의 이같은 움직임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선거운동이 진행될수록 '종교 전쟁' 식으로 비화하는 불교계의 정치바람을 막아야 한다는 움직임이 본격화돼 12월4일에는 '불교도 주권 바르게 행사하기 운동본부'가 결성됐다. 실천불교전국 승가회 · 불교인권위원회 둥이 주축이 된 운동본부는 전국 사찰에 정치중립을 담은 호소문과 기도문을 배포하고 불교계 내의 부정선거 고발창구를 개설했다. 

성직자 대부분 ‘선거중립 의지’ 확고

 송월주 원로 스님은 금권이 난무하는 불교계 일각의 선거바람을 지켜보며 신도에게 “종교지도자를 뽑는 선거가 아니므로 민족통일과 국리민복을 위해 누가 가장 적합한가를 기준으로 투표에 참여해달라”고 당부한다. 

 87년 대선 때 신부 2백여명이 김대중 후보를 공개 지지했다가 교회 안팔에 큰 파문을 일으킨 천주교측은 당시의 분열 경험을 교훈 삼아 특정 후보 지지 움직임을 삼가고 있다. 김대중 · 박찬종 후보가 천주교 신자이긴 하지만 이들의 천주교 '표 모으기' 전략이 그리 요란하지도 않고, 또 6공 들어 전반적으로 보수화한 천주교 쪽도 정치바람에 쉽게 휩쓸리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 

 천주교는 이번 선거를 앞두고 주교단 담화문 사제단 기도문 등을 통해 전국 성당에서 공정선거운동을 펼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각 후보들도 종교색보다는 학연 · 지연 등 인맥을 통해 신도와 사제에게 접근하는 전략을 쓴다. 

 일부 종교계에 급속히 번지는 정치바람을 보면서 많은 성직자는 이번 선거가 기독교와 불교 간의 종교 전쟁으로 비화하지 않을까 우려한다. 87년 대선의 특징이 지역감정이었다면 이번 선거는 종교감정으로 치달을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지난 12월1일 개신교 불교 원불교 천도교 유교 등 각 종교계 원로 61명이 급히 모여 종교인의 선거중립을 호소한 것도 그같은 위기 의식의 반영이다. 이들은 성명을 통해 “대선 을 앞두고 일부 성직자들이 특정 후보 지지나 반대운동에 앞장서 종교 간의 골이 크게 패고 있다”며 자제를 당부했다. 

 그러나 이미 선거전의 한 양상으로 자리잡은 '중교 대통령' 추대 움직임은 이같은 선언만으로 쉽게 잠들 것 같지는 않다. 종교계의 중립의지가 뒷받침되려면 일선 성직자 및 신도의 실천운동이 절실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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