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통신 파고든 ‘선거’ 바이러스
  • 허광준 기자 ()
  • 승인 2006.05.01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PC통신 ‘하이텔’ 실린 민자당 홍보 게시판 논란 빚어


 

 컴퓨터 통신망을 둘러싸고도 정치논쟁이 불붙었다. 민자당이 국내 최대 컴퓨터 정보통신망인 한국PC통신의 하이텔에 민자당 정책과 김영삼 후보 홍보물을 올린 후 가입자들 사이에 이에 대한 비판이 크게 일었다. 민자당이 컴퓨터통신을 선거 홍보 매체로 이용하기로 한 것은 유권자들과 직접 접촉해 설득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이었다. 

민자당의 게시판 개설은 원래 한국PC통신이 구상해 서 나온 것이다. 한국PC통신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컴퓨터통신이 선거 과정에 참여함으로써 직접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아울러 컴퓨터통신을 일반인에게 널리 알리며 수익성 까지 있다는 판단에 따라 올 3월부터 각 정당 을 대상으로 컴퓨터통신을 이용할 것을 권유 했다. 그 중 민자당이 이에 응해 게시판을 개설한 것이다. 민주당의 경우 다른 컴퓨터 통신망인 PC-Serve에 홍보 편지(메일)를 내고 있다. 민주당에서도 하이텔에 게시판 개설을 고려했으나 한국PC통신이 제시한 개설료가 너무 비싸다고 판단해 보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보 게시판 나가자 일부 가입자 항의

 민자당이 '다시 뛰는 한국인, 앞장서는 김영삼'이라는 제목의 홍보 게시판을 연 때는 지난 11월16일이다. 이 게시판에는 김영삼 후보 프로필, 민자당 정책, 만화로 보는 김영삼 등의  홍보물과 민자당 주요행사 및 뉴스 배경자료 등이 선택항목으로 올려졌고 ‘여론의 광장’과  ‘국민의 소리를 듣습니다’가 통신란으로 개설되었다. 게시판이 하이텔 통신망을 타고 나가자마자 곧 반응이 나타났다. 이날 오후 6시16분부터 7시35 분까지 23편의 글이 올라와 민자당 게시판 개설의 선거법 위반 여부를 묻거나 다른 당과의 형평성 문제를 제기 하고 민자당에 대한 반감을 표시했다. 

 이 글들은 곧 모두 삭제되었고 여론의 광장 난 대신 '답변을 드립니다'라는 난이 생겨 '국민의 소리'에 대한 민자당의 답변만 듣는 꼴이 됐다. 이러한 조처에 반대하는 일부 가입자는 민자당 게시판 개설과 여론의 광장 난 삭제를 비난하는 글을 하이텔의 여러 난에 올리기 시작 했다. 하이텔의 대표적 토론 광장인 '큰마을'에는 17일 하루 동안 항의의 글이 1백30여건이나 올라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허위 ID(고유 인식 번호로서 8자 이내의 숫자나 영문으로 표기 하도록 되어 있다) 사건'이 발생했다. 19일 오후 각기 다른 네사람에 의해 ‘수상쩍은’글 네편이 ‘큰마을’에 올라온 것이다. '북한, 겉으로는 대화하며 속으로는 대남적화공작 강화' '남한 조선노동당 사건과 남북 경제협력' '목전 이익에 집착한 추곡수매가 인상 요구 자제해야' 등의 제목을 붙인 글을 본 가입자 들은 글을 올린 주체에 대해 강한 의문을 나타냈다. 이 글을 실은 네명은 이미 10월27일 15분 동안에 '국정 이모저모' 등의 이름으로 정부 홍보물을 올린 적이 있었다. 

비밀번호 추적 허위 ID 밝혀내

 11월20일 오후 한 통신가입자에 의해 이들의 정체가 밝혀졌다. 한양대 이원석군(도시 공학 2)이 우연히 이들의 비밀번호가 모두 1111로 똑같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아울러 이들의 전화번호와 주소까지 드러났다.  주소는 모두 서울 중구 황학동으로 되어 있었으며 네명 다 70년생으로 직업(기타) 결제 수단(지로 납입) 사용컴퓨터(하이텔 단말기) 등도 같았다. 전화번호는 모두 허위였다. 

 이군은 이같은 사실을 글로 담아 하이텔에 올렸으나 10분만에 삭제당했다. 같은날 오후 한국PC통신측은 허위가입자 사건에 대해 사과했다. 컴퓨터통신 자체의 특성 때문아 허위 ID가 가능했다는 내용이었다. 즉 이들 네명은 컴퓨터 통신망을 통해 가입신청을 하고 지로로 이용료를 납부하여 정상적인 이용자로 등록되었다는 것이다. 

 이날 합 이군은 삭제되었던 자신의 글을 다시 올렸고 이것을 본 다른 가입자들이 글의 내용을 하이델 여기저기에 옮겨실었다. 게다가 민자당의 비밀번호도 1111이라는 사실 이 밝혀지면서 파장이 커졌다. 가입자들은 비밀번호가 같다는 점을 들어 허위가입자들과 민자당의 관련성을 강하게 제기했다. 민자당 의 '주민등록번호'는 921113-3000001로 되어 있었고 주소와 전화번호는 한국PC통신의 것이었다. 

 이후 하이텔의 주제토론장인 의견란에는 '민자당 게시판 개설 항의 서명운동'과 '하이텔에서의 민자당 선거운동 문제' 등 두 안건 이 제기되어 활발한 토론이 벌어겼다. 가입자 들은 컴퓨터통신에 정치가 끼어들게 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민자당 게시판을 즉각 폐쇄 할 것을 요구했다. 민자당과 하이텔의 '전횡' 에 대응하기 위해 컴퓨터통신 사용자 운동을 전개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선관위, 위법 여부 유권해석 유보

 26일 민자당은 허위 ID와 민자당은 전혀 관련이 없으며, 하이텔에 게시판을 개설한 데는 어떠한 특권이나 배려도 작용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이 사건은 30일 허위 ID를 밝혀 내 문제를 제기한 이원석군과 민자당 권기균 판단부장이 직접 채팅(컴퓨터통신을 이용한 대화)으로 연결되어 민자당이 입장을 설명함으로써 일단락되었으나 많은 가입자는 아직도 의혹을 버리지 못한 채 계속 토론을 벌이고 있다. 

 컴퓨터통신을 이용한 선거 홍보에 대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아직 명확한 유권해석을 내리지 않고 있다. 워낙 이 분야가 첨단부분 이어서 선거범 위반 여부를 가려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통신인들은 법적으로 선거 운동이 허용된 20일 이전인 17일에 민자당이 게시판을 개설한 것은 명백한 선거법 위반이 라고 주장한다. 

 민자당 권기균 판단부장은 “우리가 컴퓨터 통신을 활용하기로 한 것은 우리 사회가 지구당 중심의 지역성을 벗어나 개별적 접촉이 중요한 구조로 나아가고 있고, 이에 따라 첨단 매체인 컴퓨터통신의 중요성을 인식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권부장은 게시판 중 '여론의 광장'이 문제된 것은 한국PC통신의 실수였으며 민자당의 주소나 전화번호가 한국PC통신의 것으로 되어 있는 까닭은 가입 절차 자체를 회사에 일임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국PC통신은 민자당 게시판과 관련하여 실수가 있었음을 시인했다. 허위가입자가 발생한 것이나 이들의 글을 삭제하는 과정에서 아예 이들 네명을 기록에서 지워버린 것 등은 모두 실수로 및어진 일일 뿐 의혹이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한국PC통신 강창훈 영업부장은 “아직 컴퓨터통신의 회원 관리가 완벽하지 못해서 착오가 날 소지가 있다”라고 말했다. 

 허위 ID로 글을 올린 이들의 정확한 신원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한 컴퓨터통신 전문가는 “이러한 '조작'을 한 사람이 누군지는 몰라도 컴퓨터통신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다만 그들이 의도한 방법은 너무 유치한 것이었다”라고 말했다. 

 민자당 게시판 문제가 확대된 데에는 가입자들이 그동안 하이텔 통신망에 대해 불만과 불안을 느껴왔던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불만은 가입자들이 올린 글을 한국PC통신에서 자의적으로 삭제한다는 것이고, 불안은 정치적 내용의 글이 감시당하고 있을지도 모른 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효율적인 정보통신 매체로서 컴퓨터통신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현재 전국에 보급된 개인용 컴퓨터는 2백20만대, 컴퓨터 통신을 활용하는 사람은 30만명 정도로 추산 된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정보화는 아직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고 이에 따라 정보 통신망에 정치 · 상업적 이해관계가 분별없이 개입될 여지도 크다. 

 어쨌든 이번에 물의를 빚은 선거홍보 게시판 사건으로 민자당은 벌집을 건드린 셈이 되었고 하이텔은 ‘민자텔’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하나 얻게 됐다. ■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