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박이 땅이름 되찾자’
  • 김현숙 차장대우 ()
  • 승인 2006.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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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마다 잊혀진 기록 찾기 활발 … 일제 때 거의 훼손


 

 제주도에 사는 작가 吳成贊씨(52)는 우연히 대동여지도의 제주도 부분을 들여다보다가 고산자 김정호에게 서운한 감정을 갖게 되었다. 그가 제주도에 온 일이 없다는 것을 금방 알아챘기 때문이다. 1861년 刻版으로 제작된 대동여지도의 濟州圖에는 겨우 50개 남짓한 지명만 수록됐고 그나마 부정확한 것이 태반이다. 

 그때부터 제주도 땅이름 찾기를 시작한 오씨는 4년 만인 지난 11월초 《제주도토속지명 사전》을 펴냈다. 이 사전에는 마을 산 우물 숲 등 4천여 제주도 토속 지명이 복원되었다.

 그는 “되는 대로 갖다붙인 것 같은 밭 이름, 언덕 이름에도 그 마을 역사와 삶의 궤적이 들어 있다. 토박이 땅이름을 무형문화재로 대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제주도가 시가지나 골프장으로 개발되면서 토박이 땅이름은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다. 오씨는 '이러다가 백년도 안돼 제주의 자취가 사라질 것 같은 절박감'으로 마을을 뒤지며 토박이 땅이름을 찾았다. 토속 지명을 채집하고 기록하는 사람이 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절박감이 확산되었기 페문이라고 할 수 있다. 대전의 최문휘 (충남향토문화연구소장) 광주의 김정호(호남3대명촌 연구소장) 이리의 유재영(원광대 국문과 교수) 고흥의 김기빈(건설부 도로국 사무관) 등은 사라져가는 토속 지명을 지켜내는 일로 이미 유명인사가 됐다. 이들은 고향 마을을 중심으로 토박이 땅이름을 기록하고 있다. 돈벌이가 되는 일이 아님은 물론이다. 

 최문휘씨는 지난 88년 《충남토속지명사전》에 1천7백개의 토박이 땅이름을 담았다 김기빈씨는 《고흥의 지명유래》 《한국의 지명 유래》 《한국지명의 신비》 《북녘의 땅이름》 을 이미 냈고 최근 《서울의 토박이지명》을 탈고했다. 유재영 교수도 최근 《전북토속지 명》을 탈고했다. 

“땅이름 역사는 민족 수난사”

 한국땅이름학회의 배우리씨는 “땅이름의 역사는 민족이 겪은 수난사와 같다”라고 단정 한다. 대동여지도와 수선전도 등 옛 지도에는 토박이 땅이름이 모두 한자로 의역 · 음역되었고 일제시대에는 일본이 마을사람의 일체감을 없애기 위해 지명통폐합정책을 쓰는 바람에 현재 토박이 땅이름은 90% 이상 훼손되었다. 우리 토박이 땅이름 중에는 새말 윗말 아랫말 참나무골 등이 가장 많다. 그러나 이 가운데 '법적 지위'를 얻은 것은 하나도 없고 모두 新材 上里 上材 眞木洞 따위로 바뀌었다. 현재 행정지명과 별도로 토박이끼리 쓰는 토속 지명은 1백만개 정도가 된다. 이 지명 가운데 향토사학자가 채록하거나 한글학회의 우리 토박이 땅이름 중에는 새말 윗말 아랫말 참나무골 등이 가장 많다. 그러나 이 가운데 '법적 지위'를 얻은 것은 하나도 없고 모두 新材 上里 上材 眞木洞 따위로 바뀌었다. 현재 행정지명과 별도로 토박이끼리 쓰는 토속 지명은 1백만개 정도가 된다. 이 지명 가운데 향토사학자가 채록하거나 한글학회의 《땅이름 큰사전》등에 수록된 것은 20만~30만개. 그 나마 해방 직후 미군정이 국방용으로 쓰기 위해 조사한 것이 대부분이다. 

 건설부는 지난 83년 여러가지로 불리는 충북 지명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숯풍말을 中峰, 탑들을 塔坪 따위로 한자 지명을 선택하여 향토사학자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윤흥기 교수(서울대 · 지리학과)는 “우리나라만큼 토박이 땅이름을 푸대접하는 나라는 없다” 뉴질랜드와 아프리카 신생 독립국의 지명정책을 예로 들었다. 뉴질랜드는 원주민 인 마오리족의 토박이 땅이름을 1백%쓰고 있고, 아프리카 신생 독립국가들도 식민지 때 지명을 버리고 모국어로 바꿔 쓴다는 것이다

 최근들어 신도시나 새로 생기는 지하철에 토박이 땅이름을 쓰는 일이 늘고 있다. 분당은 볕고개 숲안동 잣고개 밤나무동 등 22개동과 10개의 길, 16개 다리에 토박이 땅이름을 붙였으며 새로 생기는 지하철 5, 6호선에는 애오개역 먹골역 굽은다리역 등 전래 이름을 살렸다. 

 지난 8월28일 제6차 유엔지명표준화회의에서 남북한은 공동으로 “세계지도에 표기된 일본해를 동해로 바꿔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일합방 이후 강압에 의해 바뀌었으니 원상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1594년부터 1850년 까지 유럽에서 제작된 지도 54개 가운데 38 개가 일본해가 아닌 동해로 표기되었다는 증거까지 갖추었으나 지리학자들은 우리의 요구가 받아들여지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본다. 한번 잃어버린 이름은 그만큼 되찾기 어렵다는 얘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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