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살인범이 CCTV 살리나
  • 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6.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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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V 없는 곳에서 범행” 발언으로 관심 끌어…범죄 예방 효과 놓고 ‘논란’

 
연쇄살인범이 CCTV 살리나? 최근 검거된 서울 서남부 연쇄살인 용의자 정남규씨(37)가 폐쇄회로 텔레비전(CCTV)을 두려워했다는 이야기에 CCTV의 범죄 예방 효과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지난 4월22일 검거된 정남규씨는 2004년부터 영등포·관악·동작·구로구 일대에서 강도·살인 등 범행 13건을 저질러 제2의 유영철로 불린다. 4월26일 현재 확인된 피해자만 사망 5명·중경상 8명이다.

정씨는 전형적인 사회 증오형 연쇄살인범이었다. 불우한 가정 환경에서 자란 정씨는 ‘부자가 미워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피해자는 서민들이었다. 정씨는 부자들이 사는 강남구 지역에는 CCTV가 너무 많아 범죄가 쉽지 않을 것 같기에 다른 지역에서 범죄를 저질렀다고 말했다. 만약 정씨 진술이 사실이라면 CCTV가 강남 주민 몇 명의 목숨을 살린 셈이다.

강남경찰서 신재선 생활안전과장은 “CCTV 예방 효과가 입증되고 있다”라며 강남 지역에 CCTV 100대 추가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강남구에 설치된 경찰 방범용 CCTV는 3백72대로 서울의 25개 자치구 가운데 가장 많다. 강남구에 CCTV 관제센터가 들어선 것은 2004년 8월25일부터다. 다른 지역에도 경찰 방범용 CCTV는 많이 있지만 이들을 통합 모니터하는 관제센터가 있는 곳은 강남구가 유일하다. 

강남구, CCTV 설치 후 강도 사건 발생률 증가

연쇄살인범 정씨를 두렵게 만들었다는 서울 서초구 역삼동 강남경찰서 CCTV 관제센터를 방문했다. 관제실 내부는 출입이 통제되고 외부에서 넘겨다볼 수도 없게 되어 있다. 정면 벽에는 마치 미국항공우주국(NASA) 우주센터를 연상시키는 50인치 모니터 20대가 걸려 있었고 각 모니터는 16개씩 쪼개져 동시에 3백20개 화면이 강남구의 골목들을 샅샅이 보여주고 있었다. 중앙 벽면에 걸린 모니터 6개는 강남구 일대 지도와 CCTV 위치를 보여주었다. CCTV 위치와 번호는 비밀사항이다. 대형 벽면 모니터 앞에는 감시 요원들이 책상 컴퓨터 모니터와 벽면을 같이 보며 수상한 움직임이 없는지 관찰하고 있었다.

기자가 관제실 취재를 하던 오후 5시경, 중앙 지도 위 삼성동 지역에서 붉은 동심원이 깜박거렸다. 누군가가 CCTV 아래에 설치된 비상벨을 누른 것이다. 삼성2동 OOO-O호 CCTV였다. 센터를 지휘하는 팀장이 해당 지역 화면을 키워보라고 지시했다. OOO-O호 CCTV가 360도 회전하며 주변을 조망했다.   부근에는 하굣길 남자 중학생들과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코트 입은 여성만이 서 있을 뿐이었다.

팀장은 “일단 저 여성을 잡고 있어”라고 말하고 순찰 중인 경찰에게 비상벨 위치로 출동하라고 지시했다. 그 사이 CCTV는  코트 입은 여성을 확대(zoom-in)해서 따라가고 있었다. 얼굴을 식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여자는 택시를 타고 사라졌다. 아마도 하굣길 학생들이 장난 삼아 비상벨을 눌렀는지도 모른다. 강남경찰서측은 “가끔 장난도 있지만 실제 범인을 검거하게 되는 상황도 많다”라고 말했다. 4월 중순 오토바이 세 대를 훔치려던 남자가 CCTV 모니터 요원에게 적발되어 현장에서 체포되었다고 한다.

관제센터에서 일하는 경찰과 모니터 요원은 경찰과 모니터 요원 25명이며, 2004년 8월부터 2005년 말까지 CCTV를 통해 범인을 검거한 사건은 56건이다. 이것이 CCTV의 효율성을 입증하는 증거인지는 보는 사람마다 견해가 다르다. 
관제센터를 운영한 지 처음 몇 달간은 반응이 성공적이었다. 나흘 만에 대치동에서 가스배관을 타고 창문을 넘던 절도범을 추적 체포하는 데 CCTV가 공을 세웠다. 첫 3개월간은 강남 지역 5대 강력 사건(살인·강간·강도·절도·폭력) 발생 건수가 31.4% 감소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그러나 2005년이 되면서 예방 효과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관제센터 설치 후 6개월 만에 범죄발생률은 원위치로 돌아갔다. 범죄자들이 CCTV 없는 곳만 골라 활동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27일 국회 행정자치위원회 최규식 의원(열린우리당)은 국정감사 자료를 통해 CCTV 설치 효과가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2004년 9월부터 2005년 8월까지 강남 지역 강도사건 발생률을 1년 전 같은 기간과 비교해 보니 오히려 7.4% 늘어났다는 것이다. 같은 방식의 조사에서 서울 전체 강도 사건 발생률은 오히려 14.3%가 줄었다. 이 자료로만 보면 CCTV 설치 효과가 없는 셈이다. 강남구가 2004년 관제센터 건설에 쓴 비용은 60억원이었다.

경찰대 박현호 교수는 “짧은 기간 수집된 자료만 보고 범죄 예방 효과가 있다 없다 단정 짓기는 힘들다. 다만 영국 등 외국에서 학술적으로 연구한 자료를 보면 CCTV의 범죄 예방 효과는 분명 있는 것으로 나온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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