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황제 <슈피겔>50년 왕국 ‘흔들’
  • 베를린· 김진웅 통신원 ()
  • 승인 1995.0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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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지 맹추격· 편집진 갈등 ‘내우외환’

지난해 12월은 언론인들이 뜨겁게 달아오른 한달이었다. 시사 주간지 <슈피겔>의 수석 편집인 교체를 둘러싼 발행인과 편집진 간의 내부 분쟁이 화제의 초점이었다. 결국 발행인 아우그슈타인(72)이 의도한 대로 수석 편집인 한스베르너 킬츠(52)는 해임되고 후임에 스테판 아우스트(48)가 임명됨으로써 사태는 일단락했다. 그러나 <슈피겔>호가 순항의 길로 접어든 것은 아니다.

우선 <슈피겔>은 집안 갈등의 원인이 된 경쟁지 <포쿠스(Focus)>의 강력한 추적을 따돌려야 한다. 93년 초 <포쿠스>가 <슈피겔>에 도전장을 던지며 창간됐을 때, 50년 가까이 독일 여론을 이끌어온 <슈피겔>의 성역을 <포쿠스>가 넘볼 것이라고는 아무도 상상치 못했다. 그러나 겨우 1년 만에 광고주의 절반을 <포쿠스>에 빼앗긴 <슈피겔>은 지난해 12월 광고 시장의 선두 자리를 경쟁지에 내주고 말았다.

 

<포쿠스> 창간 2년 만에 70만 부 발행

또한 약 1백20만부 선을 유지하던 <슈피겔>의 발행 부수도 점점 덜어져 최근에는 백만부 선을 유지하는 데 머물고 있다. 반면 <포쿠스>는 창간 2년 만에 발행 부수 70만에 육박하고 있다. <슈피겔>은 더 이상 <포쿠스>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는 실정이다. <포쿠스>의 편집인 헬무트 마르크보르트는 “<슈피겔>은 그동안 경재 없이 시사 주간지 시장을 독점해 왔다. 이제 그 판도가 바귈 것이다”라고 자신에 찬 모습을 보였다.

아우그슈타인은 항상 2인 공동 편집인제를 고수해 오다 <포쿠스>의 도전으로 위기를 맞자 작년 8월 수석 편집인 중 볼프강 카멘을 해임하고 넉달 뒤인 12월에는 킬츠마저 내쫓았다. <슈피겔> 편집위원 카라젝의 말대로, 그동안 아우그슈타인은 킬츠를 내쫓을 기회를 찾았고, 결국 자신의 양아들이라 불리는 아우스트에게 <슈피겔> 사령탑을 맡겼다.

<슈피겔>의 새 편집인 아우스트는 <슈피겔>의 명성을 등에 업고 만든 텔레비젼 프로그램 <TV 슈피겔>의 책임자로 명성을 얻었다. 그는 88년 이 프로그램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몇십만명에 불과하던 시청자를 6년 사이에 4백50만명으로 끌어올렸다. 아우그슈타인이 ‘읽는 <슈피겔> 신화’를 낳았다면, 아우스트는 전파 시대에 맞게 ‘보는 <슈피겔> 신화’를 만들었다. 따라서 아우그슈타인은 총명했던 젊은 시절의 자기 모습을 아우스트에게서 발견하고 오래 전에 그를 점찍어 놓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내가 살아 있는 한 <슈피겔>의 권위가 실추하는 것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겠다”는 발행인의 기대에 아우스트가 얼마나 부응할지는 의문이다. 그가 ‘TV 언론인’으로 명성을 얻게 된 <TV 슈피겔>은 시청자의 인기에 영합하는 프로이다. <포쿠스>측은 “피· 섹스 · 눈물에 차분한 목소리와 냉소적인 코멘트를 곁들여 오로지 시청자만 의식하는 시청률 만능주의자”라고 아우스트를 깎아내리면서 “이제 그는 ‘인쇄 TV'를 만들려 한다”고 비아냥거렸다.

아우스트에 대한 <슈피겔> 중진들의 반발은 거세다. 그런데도 아우그슈타인이 아우슈트에게 <슈피겔>을 맡긴 까닭은 <포쿠스>에 빼앗긴 독자와 광고 시장을 회복하기 위해서이다. 아우스트는 독자를 늘리는 것과 동시에 종전처럼 일정한 수준 이상의 내용으로 <슈피겔> 독자를 만족시키는 두 가지 과업을 수행해야 한다.

현재 <슈피겔>이 맞고 있는 위기는 상업 방송 등장에 따른 공영 방송의 위기와 일맥 상통한다. 인쇄· 전파 매체는 시장 경제 논리에 맞추어 시장에 뛰어든 경쟁자 때문에 큰 타격을 입고 있다. 경쟁지들은 소비자에게 값싸고 달콤한 상품을 무자비하게 퍼붓는다. 사실 <슈피겔>의 경쟁지 <소쿠스>의 내용은 ‘인쇄된 상업방송’과 다름 없다. 광고 게재율이 60%가 넘고, 지면당 기사의 양은 3분의 1도 안된다. 3분의 2는 대형 사진 등으로 채워 시각 효과를 높이는 컬러화 전략을 지향하고 있다. 독자들이 광고와 기사를 잘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이처럼 ‘보는 신문’을 추구하는 외에 광고비· 구독료 덤핑 등을 통한 적극 판매 전략이 <포쿠스>의 성공 비결이다.

이와 같이 염가 공세로 파고드는 <포쿠스>와 맞서 경쟁해야 하는 <슈피겔>은 앞으로 적응과 개선, 선회와 비약 사이에서 심한 갈등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 베를린· 金鎭雄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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