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집마련 定石은 저축”
  • 김상익 차장대우 ()
  • 승인 1992.03.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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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在基 주택은행장

 이사철이 시작되고 있다. 셋집을 옮기거나 집을 새로 장만하려는 서민에게 가장 큰 걱정은 돈이다. 융통할 곳이 마땅치 않아 은행을 찾아가보지만 문턱은 여전히 높다. 지난 2월20일 서울 여의도 주택은행 본점 14층 회의실에서 金在基행장을 만나 무주택 서민을 위한 자금지원 활성화 방안에 대해 들어보았다. 주택은행 창립멤버인 그는 밑바닥에서 출발. 25년만인 지난 1월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해병대 사령관’이란 별명을 얻을 만큼 추진력이 강한 그는 자기 생각을 거침없이 털어놓았다. 근엄한 표정을 짓거나 권위적인 말투를 사용하지 않는 등 서민적 체취가 물씬 풍겼다. 그는 자기 자신을 오리에 비유했다. “호수 위에서 한가로이 노니는 오리를 보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그러나 오리는 물 위에 떠 있기 위해 쉴새없이 발을 움직여야 합니다. 보는 사람은 좋을지 모르나 오리는 죽을 지경입니다. 제가 바로 오리입니다. 남들이 보기에 은행장 하면 점잖고 화려한 직업으로 생각되겠지만 제 하루는 눈코뜰새없이 바쁘고 피곤합니다.”

오늘 아침 몇시에 일어나셨습니까?
 새벽 5시에 일어났습니다. 집 근처에 있는 산에 올라가 1시간 가량 산책을 하면서 하루 일과를 계획했습니다. 행원 시절에는 4시에 일어나 남산 케이블카 승강장에서 국립극장까지 3.2㎞ 구간을 뛰고나서 7시 조금 넘어 출근했습니다.

아침시간을 어떻게 활용하십니까?
 사람을 만납니다. 오늘 아침은 6시에 집을 나와 지점장 시절에 예금을 많이 해주신 고객 두분과 간단한 식사를 나눴습니다. 은행에 도착한 것은 8시30분입니다. 밤 11시 집에 돌아갈 때까지 하루 평균 15명 정도 만납니다. 전화는 50통 정도 합니다. 은행업무는 고객관리가 생명입니다.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야 끌어들일 돈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돈을 쌓아놓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갑자기 여유자금이 생겼을 때 ‘누구누구에게 맡겨야지’ 하는 생각이 저절로 떠오르도록 평소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저는 임원들에게도 점심식사를 구내식당에서 하지 말고 밖으로 나가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합니다. 과거처럼 앉아서 고객을 맞이하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다가오는 금융시대에는 고객을 맞이하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다가오는 금융시대에는 고객을 찾아 발로 뛰는 자세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주택은행은 국책은행으로서 정부의 주택정책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집 없는 서민이 내 집을 마련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주택은행은 집 없는 서민, 소외된 계층을 위한 은행입니다. 저는 이익에 집착하지 않겠습니다. 흔히 “이익을 얼마나 냈느냐”를 가지고 은행을 평가하는데 제 생각은 다릅니다. 국책은행으로서 주택은행은 배분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외환 신탁 증권 등 부대 업무를 통해 얻은 이익을 서민의 주택자금 지원에 돌릴 방침입니다. 내부적으로는 경영합리화를 통해 생산성을 높이고 경비를 줄이겠습니다. 자금의 효율적 배분과 관련하여 대출금리 차등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가령 더 넓은 집을 장만하려는 사람에겐 대출금리를 높이고 처음 집을 사려는 서민에겐 낮은 금리로 대출해줄 수 있다고 봅니다.

공익성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자금력이 확보돼야 한다고 봅니다. 수신증대 방안을 갖고 계신지요.
 친절한 은행으로 발돋움하여 고객과 더 가까워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주택자금 대출 수요자가 집중되게 마련인 아파트촌이나 신도시 지역 등에 출장소를 신설하여 고객의 불편을 덜어주는 한편 이들을 고정고객으로 적극 유치, 가계성 예금을 확보하겠습니다. 주택은행에서 대출을 받으신 분이 2백50만명에 이르고 있는데 이분들이 10만원씩이라도 예금을 해주신다면 큰 자금이 확보될 수 있을 것입니다. 각종 저축 신상품을 개발하고 1만2천명의 임직원이 직접 고객을 찾아 나서는 적극적 영업전략을 펴겠습니다. 우리 국민은 미리 준비하는 습관이 배어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금 집값이 싸니 집을 사야겠다. 그러니 돈을 빌려달라.” 이렇게 요구하는 분들도 없지 않습니다만 그런 것은 좀 곤란합니다. 그래서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조금씩이라도 저축해 그 애가 자라 장가갈 나이가 되면 자연스럽게 내 집을 장만할 수 있게 하는 상품을 개발해보라고 일렀습니다.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젊은이들에게 내집마련부금이라든지 무지개통장을 가입하도록 권유할 생각입니다.

은행대출이 돈 많은 사람에게 편중된다는 지적이 많은데….
 우리나라의 주택문제는 국민복지 측면에서뿐 아니라 사회안정 차원에서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정부는 주택 2백만호 건설에 이어 올해부터 시작되는 제7차 5개년계획 기간중에도 2백50만호의 주택을 공급하고 이중 70%는 18평 이하 소형주택이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주택은행은 소형주택에 대한 지원을 더욱 강화할 것입니다. 주택자금의 공익성을 유지하기 위해 장기간 저축하고 있는 무주택 수요자에게 자금을 집중지원할 예정입니다. 저는 어느날 갑자기 1천만원을 맡기는 분보다 다달이 10만원씩 10년 동안 저축하는 고객을 더 우대하는 분위기를 정착시킬 것입니다. 우리 은행에 장기간 저축을 하면 누구든지 융자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결혼을 앞둔 한 회사원으로부터 “전세자금을 얻기 위해 주택은행을 찾았으나 2천만원이 넘는 전세에 대해서는 융자를 안 해준다고 해 실망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 회사원은 “ 저축해봤자 혜택이 없으니 누가 저축을 하겠느냐”고 언성을 높였습니다.
 저희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주택가격이 높은 서울시에서도 전세가구의 78%가 2천만원 이하에서 살고 있습니다. 3천만~4천만원짜리 독채전세를 얻으려는 분은 그래도 여유가 있는 편입니다. 자금의 효율적 배분 차원에서라도 형편이 더 어려운 분들께 우선순위가 매겨져야 한다고 봅니다. 대신 노부모를 모시는 분들께는 주택자금 대출을 특별히 우대하기로 했습니다. 노부모를 모시자면 방이 1개라도 더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여기에는 퇴색하고 있는 경로효친 사상을 되살려보자는 뜻도 담겨 있습니다. 주택을 구입하거나 신축할 경우에는 종전 2천5백만원에서 3천만원으로 대출금을 인상했습니다. 임차자금의 경우도 전세보증금 3천만원으로 범위를 넓히고, 융자금액은 종전 1천만원에서 1천5백만원으로 올렸습니다.

“은행의 문턱이 높다”는 원성이 높습니다. 은행을 찾아갔으나 여신규제로 발길을 돌리는 사례가 종종 있는데 주택은행의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 아닙니까?
 주택을 구입하거나 전세계약을 위해 주택자금을 신청했으나 대출이 중단된다면 이사할 때 큰 곤란을 겪게됩니다. 날짜는 며칠 늦어졌을지 모르지만 저희는 주택자금을 중단한 일이 없습니다. 정부의 통화정책 때문에 대출이 중단되는 경우는 저도 여러 차례 겪었습니다. 지점장 시절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고객에게 대출을 약속했는데 대출일 바로 전날 전국적으로 대출 중지령이 내렸습니다. 하는 수 없이 친구들한테 돈을 빌려 대출금을 마련해준 경험이 있습니다. 그런 일도 있었기 때문에 제가 은행장으로 있는 동안 고객과의 약속은 철저히 지키겠습니다.

금융시장 개방, 금융자율화 등 금융환경의 변화로 각 은행은 경영합리화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어떤 구상을 갖고 계신지요.
 앞으로 예금고객에게는 되도록 높은 금리를, 대출 고객에게는 낮은 금리를 적용해야 할 것이므로 마진은 오히려 줄어들 것입니다. 따라서 군살을 빼고 생산성을 높여야 합니다. 외환 신탁 등 부대 사업을 활성화하고 불요불급한 조직을  재정비하는 등 경영합리화 방안을 실천할 것입니다. 얼마전 인사이동을 단행했습니다. 제주도를 예로 들자면, 제주지점 사람들은 전원을 현지인으로 했습니다. 토요일이나 일요일 비행기를 타보시면 알겠지만 거의 대부분이 서울 사람입니다. 이른바 ‘주말부부’들이 이동하는 것이지요. 그것은 국가적으로 큰 낭비입니다. 두집 살림을 하자면 그만큼 주택난도 심화됩니다. 주택은행은 지방자치제가 실시되기 전부터 ‘금융 지방자치제’를 했습니다. 지역본부장제를 두어 권한을 이양하고 어지간한 인사권도 지역본부장에게 넘겼습니다. 현지에서 직원을 채용하고 그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부산 광주의 지점들도 절반 이상이 현지 사람입니다. 지방사람들에겐 승진도 3~4년씩 빨리 시킵니다. 고향사람들을 상대로 하다보니 영업실적이 훨씬 좋아졌습니다. 사택이 줄어들어 저절로 경영합리화가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는 인사에서 성공했다고 자부합니다.

집 없는 서민이 내 집을 마련하는 지름길은 어떤 것일까요?
 직장 초년생들과 만날 기회가 자주 있는데 그들도 그런 질문을 합니다. 그러면 저는 어떤 통장을 갖고 있느냐고 되묻습니다. “신용카드는 있지만 통장은 없다”는 대답이 의외로 많습니다. 저는 지금이라도 당장 청약예금 같은 것을 들라고 권합니다. 1순위자들이 많이 몰려 있다지만 주택공급도 계속 늘어 시간이 지나면서 기회가 확대될 것입니다. 청약저축 가입자들이 시위도 하고 있습니다만, 앞으로 18평 이하 주택이 대량공급될 것이므로 작은 평수에서 차근차근 시작한다는 생각을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결혼초기에는 저도 주택자금을 70만원 융자받아 15평짜리 집에서 10년간 살았습니다. 그러면서 차츰차츰 집을 늘렸습니다. 앞으로 2~3년이 내집 마련의 호기입니다. 저축이야말로 집 장만의 지름길입니다.

주택복권이 처음 나왔을 때 국민의 사행심을 조장한다는 비판이 있었습니다. 주택복권으로 조성된 기금의 규모와 쓰임새에 대해 밝힐 수 있겠습니까?
 69년 주택복권을 발매할 당시, 제가 대리로 있을 땐데 각 언론에서 사행심을 조장한다고 비난하자 복권이 한장도 안팔렸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은행원이 엿모판을 하나씩 메고 손에는 꽹과리를 들고 서울역·경마장·교차로 등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에서 직접 홍보 판매를 했습니다. 그런 이후 주택복권이 정착됐습니다. 지난 23년간 주택복권 판매로 총 2천3백50억원의 자금을 조성, 연리3%의 저금리로 장기임대주택 등 서민주택 건설에 전액 지원하였습니다. 90년 하반기부터 즉석복권이 나오자 여론의 비판이 드높았습니다. 과다한 경쟁을 지양하기 위해서는 복권업무를 일원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청주고등학교 동창들 중에 은행장이 여럿이지요?
 그렇습니다. 외환은행장과 국민은행장이 동창입니다. 그분들은 매우 유능합니다. 항상 수석을 다퉜습니다. 전 중간밖에 못했습니다.

책 읽을 시간이 있습니까?
 흔히들 “공부하는 행장이 되라”는 말을 합니다만 현실적으로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과거의 경험과 학식을 가지고 판단해야지 새롭게 공부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기 위해 시사주간지나 월간지 등 잡지는 1백 가지 이상 봅니다. 책상 위에 잡지를 10여종 쌓아두고 있으며 차에 전기불을 4개 장치해놓고 차 안에서 책을 읽습니다. 교통체증이 심한 덕분에 책 읽을 시간은 충분합니다.

지난 25년간 주택은행이 걸어온 길을 자평하신다면?
 창립 초기에는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시중은행은 기업체 같은 큰 고객을 주로 상대했지만 당시 저희에겐 5천원, 1만원을 예금하는 서민이 주요 고객이었습니다. 주택금융을 받으려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저소득층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분들의 집을 일일이 방문하며 문전걸식하듯 예금을 유치했습니다. 그런 반면 재무구조는 탄탄합니다. 한국의 주택은 모두 7백40만호 가량 되는데 그중 2백50만호가 주택은행의 고객으로서 자금지원을 받았습니다. 소액 고객이긴 하지만 이분들은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 고객입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주택은행은 불친절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시중은행에선 돈을 맡기고 찾아가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저희 은행은 국민주택채권을 매입해야 하고, 주택부금도 받아야 하고, 주택상담도 해야 하는 등 업무가 복잡합니다. 아파트촌에 가서 보시면 알겠지만 줄을 서야 할 정도로 고객이 많습니다. 은행원은 친절해야 하지만 사람인 이상 한계가 있습니다. 한 예로 “주택자금을 융자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하는 질문에 대해 하루 수십번씩 같은 대답을 하다 보면 짜증이 날 수 있습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제가 은행장으로 취임하는 그날로 직원 40명을 일본에 보내 친절교육을 연수하도록 했습니다. 40명의 연수단은 전국의 행원을 대상으로 친절교육을 하게 될 것입니다.

끝으로 평소 생화신조를 말씀해주십시오.
 “아무리 작은 약속이라도 약속은 철저히 지켜야 한다”는 것이 제 생활신조입니다. 지금까지 저는 우리집 아이들과의 저녁식사 약속을 빼놓고는 다른 사람과의 약속을 단 한번도 어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신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이처럼 약속을 소중히 여기게 된 데는 성장하는 과정에서 제 친형님인 金在光 국회부의장으로부터 받은 영향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올해부터는 토요일만이라도 집에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했는데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을는지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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