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이제 먼동이 텄을 뿐
  • 한종호 기자 ()
  • 승인 1992.03.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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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핵문제 등 ‘공식노선’ 불변…빠른 관계개선 가능성 적어

 제6차 총리회담에 대해 정부 대표단은 ‘작은 진전’이라는 ‘겸손한’평가를 내렸다. 합의서와 비핵공동선언, 그리고 3개 분과위 구성에 관한 합의문 발효라는 다소 명목적인 성과를 제외하면 특별히 남북관계의 실질적 진전을 시사하는 대목이 없기 때문이다.

 盧泰愚 대통령이나 朴東源 통일원 차관이 ‘작은 진전’으로 꼽은 것도 북한이 2월19일자 <로동신문>을 통해 “최고인민회의 제9기 3차회의에서 국제원자력기구와의 핵안전협정체결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다”고 발표한 것과 그 시기는 예산 심의를 위해 3월 말이나 4월 초로 잡힐 것이라는 정도의 내용 때문이다.

 남측이 특히 신경을 많이 쓴 핵통제공동위 구성 문제는 사찰방법을 놓고 남측이 ‘△2곳씩의 시범사찰 △전면적 상호사찰’이라는 2단계 사찰을 제안한 반면 북측은 ‘북한의 영변·남한의 모든 군사기지 사찰’을 들고 나와 접점을 찾지 못하고 2월27일의 판문점 접촉으로 넘겨졌다. 한동안 각광을 받은 남북정상회담 문제는 아예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오히려 金日成 주석은 지난 20일 오찬에서 “이제 민족대단결의 시대가 도래했다”면서 △과거 불문 △외세 간섭 배제 △통일대세론을 펴 남측 대표단을 당혹스럽게 했다.

 김주석의 이같은 발언의 배후에는 ‘제도통일’, 즉 자본주의로의 흡수통일에 대한 북한측의 경계심이 짙게 깔려 있다. 합의서 채택의 의미를 남측이 주로 이산가족 합작투자 등 ‘인적·물적 교류와 협력’에서 찾는 데 반해 북측은 외국군 철수·연방제 통일 등 ‘불가침’쪽에서 찾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북한은 이번 회담에서 어느때보다 △문익환·임수경 석방 △국가보안법 폐지 등 기존의 원칙적 입장을 계속 강조했다. 대규모 취재진으로 남측 언론을 압도한 일본의 한 신문은 “북한이 교류협력 시대를 환영하는 이유는 한국 내 통일지향 세력과의 연대강화를 추진하려는 독자적 판단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글자 그대로 ‘사상과 체제, 종교를 초월한 민족대단결’을 주장함으로써 통일문제에서 명분의 우위를 점하겠다는 것이다.

 남과 북의 협상형태의 차이를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5차 총리 회담 당시 남북을 오가며 비핵공동선언안 작성에 참여한 미국의 한 학자는 “북한은 공동선언만 발표하면 모든 게 끝나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구체적인 실천이나 검증을 중시하는 서방측과 사고방식이 다르다는 것이다. 정총리와의 비공식면담에서 김주석이 “이제 다 됐으니 통일합시다”라고 서두르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해석이다.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 △정신대문제 및 일본의 핵위협에 대한 남북 공동대응을 들고 나온 것은 남측을 들러리로 세워 미국·일본과의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려는 의도라는 분석도 있다. 그렇다면 남북대화 자체는 주변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한 소모품으로 전략할지도 모른다.

 김주석의 발언에서 분명히 드러나듯이 남한에 대한 북한의 ‘공식노선’이 여전히 불변임을 고려하면 남북관계의 조기 개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 공통된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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