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당’을 움직이는 사람들
  • 조용준 기자 ()
  • 승인 1992.03.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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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당·공천·정책수립 ‘정주영 사람’이 주도…李丙圭 李來炘 李鉉泰 ‘실세’

 국민당에서는 하부조직이 처음부터 문젯거리가 되지 않았다. 현대 계열사에서 오랫동안 실무 경험을 닦은 유능한 사원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2일 개소식을 가진 경남도지부 사무처의 명단을 살펴보면 현대에 대한 국민당의 의존도가 어느 정도인지 금방 드러난다.

 사무처장 都永會(현대자동차 부사장) 조직국장 金玹燦(현대건설 총무이사) 총무국장 申明善(현대중공업 충무부장) 대변인 車大熙(현대중공업 관리이사)씨 등이 도지부를 맡고 있다. 이런 점도 민자·민주 양당으로부터 “국민의 당이 아닌 재벌당”이라는 비난을 받는 이유가 된다. 울산에서 출마하는 한 민자당 의원은 “鄭周永씨 주머니에서 돈이 나가는 게 아니라 각 계열사에서 직접 나가고 있다. 세무사찰을 당해도 마땅하다”라고 비난했다.

 반면 이는 “사회에서 온갖 풍상을 거치며 나름대로 일가견을 가진 엘리트들로 일개 도지부를 구성한 것만 봐도 수권능력을 가진 야당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국민당측의 자부심을 낳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국민당에게서 거칠고 투박한 야당의 냄새보다는 조직적이고 치밀한 여당의 냄새가 더 많이 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중앙당의 인적 구성도 이와 별로 다르지 않다. 대표최고위원 비서실을 보면 李丙圭 비서실장을 비롯해 金仁載 李東浩 두 차장 등 핵심요원들이 모두 현대 명예회장 비서실 출신이다.

하부조직은 탄탄, 상부조직은 허술
 국민당의 하부조직과 보좌진용이 이처럼 탄탄하고 체계적인 데 비해 상부조직은 인적 구성면에서 상당히 허술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현직 의원이 金光一(부산 중) 趙尹衡(전국구 내정) 鄭夢準(울산 동) 朴進球(울산군) 李讚九(성남 을)씨 등 5명에 불과한데서 오는 어쩔수 없는 일로 보인다.

 金東吉 죠윤형 두 최고위원은 지명도에 있어서 부족함이 없고 김광일 의원은 초선이지만 13대 국회에서 보여준 탁월한 의정활동으로 인해 그런대로 자격요건을 갖췄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사무총장인 李龍俊 전 노동부 차관이나 전 외무부 차관이었던 尹河珽 기획위원장, <경향신문> 논설위원 출신의 朴魯敬 선전위원장 등이 정치 초년생이어서 당 지도부가 다소 취약한 느낌을 주고 있다.

 그러나 국민당은 洪性宇 睦堯相 鄭男 廉吉正 金泰龍 尹榮卓 陣治範 金顯秀씨 등 무려 30여명이 넘는 전직 의원과 劉鍾烈 兪煐 尹恒烈 金日柱씨 등 30여명의 전 지구당 위원장을 조직책으로 선정해 공천면에서는 만만치 않은 진용을 과시하고 있다.

 21명의 당무위원은 정대표와 3명의 최고위원, 楊淳稙 朴漢相 상임고문, 奉斗玩 전당대회의장, 정몽준 정책위원장, 李寅源 대변인, 權熙泰 전 경상여고 이사장, 朴東雲 전 <한국일보> 논설위원, 李建榮 전 마사회장, 이용준 이병규 윤하정 박노경씨 등이다.

 상부구조가 취약하다 보니 실질적인 창당작업을 비롯해 정강·정책의 수립, 조직책인선 등의 실무를 거의 현대 문화실(과거 현대 명예회장실 직속기구)과 현대 계열사의 몇몇 핵심부서에서 담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조직책 신청자의 선별은 현대자동차와 현대해상화재보험 등의 임원진이 전국에 걸쳐 있는 조직과 정보망을 이용, 개인 신상과 지역 신망도 등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 것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도 현대자동차 현대증권 등은 조직을 개편해 정보팀을 강화했다는 후문이다.

 이런 정황에 따라 국민당에서는 현대와 관계된 인사들이 자연 ‘실세’로 떠오르고 있다. 과거 현대에서는 ‘李씨 트로이카’ 즉 李明博 전 현대건설 회장, 李鉉泰 종합기획실장, 이병규 명예회장 비서실장 등이 정회장의 측근에서 ‘힘’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이명박씨가 일선에서 물러남에 따라 이현태 이병규를 잇는 ‘이-이 라인’이 급부상하게 됐다. ‘이-이 라인’은 당과 그룹을 연결하는 핵심고리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 화제가 되고 있는 국민당의 정책광고 시리즈(예를 들어 “아파트 값을 반으로 내리겠습니다”라는 광고)는 바로 이 라인에서 입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는 李來炘 전 현대건설 사장(서울 종로)도 깊이 관여했다.

총선 후 대대적인 ‘지도부 수술’ 있을 듯
 이현태씨는 정대표의 두터운 신임 속에 81년부터 기획실장을 맡아 그룹의 신규사업이나 굵직한 대외업무를 요리해오고 있는데, 특히 계수와 금융관계에 밝고 사리판단이 빠르다는 평을 받고 있다. 21년째 현대에 몸담고 있으며 현대석유화학 사장을 겸하고 있다.

 이병규 실장은 지난 77년 이래 16년째 정대표를 모시고 있는 대표적 참모. 정대표의 일거수 일투족에 가장 밝고, 입이 무겁기로 소문나 있다. 이번에 당무위원으로 선임되었지만 본격적으로 정치활동을 할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다.

 김광일 최고위원도 자리에 걸맞게 당내에서 급부상하는 인물 가운데 한명. 특히 그는 지난번 이주일씨 정치탄압 사건과 관련, 정대표가 sbs방송국에서 농성했을 때 1시간이 넘게 연설을 해서 재야 변호사 출신다운 면목을 보였다.

 봉두완 전당대회장의장 겸 서울시지부위원장은 12대에서 전국 최다득표를 얻은 지명도와 MBC 라디오 <전국 패트롤>에서 얻은 인기가 결합된 대중정치인으로 꼽힌다.

 KBS <심야토론>의 사회자였던 李寅源 대변인은 대변인 업무 이외에도 정대표의 지방행사에 참석에 거의 동행, 의전관계 일도 맡아보는 셈이 됐다. KBS 시절의 지명도에 힘입어 지구당 창당대회장에서도 꽤 인기를 얻고 있는데, 각종 행사의 참여 등으로 미처 지역(서울 서초 을)을 일구지 못해 전국구 진출이 유력하다.

 그러나 현재의 지도부는 선거 전까지의 임시본부와 같은 것이어서 총선이 끝나면 대대적인 수술작업이 벌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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