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묵’충청권에 JP바람 또 불까
  • 김재일 정치부 차장 ()
  • 승인 1992.03.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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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 무소속 후보 ‘아성함락’에 총력

 김종필 민자당 최고위원이 충청권에 ‘김종필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는 지난 2일 자신의 선거구인 충남 부여 지구당 당원 단합대회에서 “국운을 다시 일으키는 데는 내일을 지향하는 영도력이 있어야 하며 나는 이런 일의 선두에서 봉사하겠다”고 말해 선거 후 대통령후보 경쟁에 나설 수 있음을 비쳤다. 중부권 역할론을 주장하며 충청권을 단결시켜려 했으나 별 효과가 없자 자신을 대통령후보와 연관시킴으로써 바람을 일으키려고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민자당 대전시지부 김지우 사무차장은 “이곳 유권자들은 쉽게 가열되지 않는다. 중순경 합동 연설회가 시작돼야 반응을 보일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일할 수 있는 사람을 뽑자는 여론이 보이지 않게 형성되고 있다”고 주장해 대전 유권자의 보수성향과 안정희구 심리에 기대를 거는 것 같다.

 반면 야당측은 “대전은 근본적으로 야당 도시”라고 주장하며 과거의 야성을 되살리기에 총력을 쏟고 있다. 야당측은 여당에 대한 공격의 초점을 ‘3당 야합’의 부도덕성에 맞추고 있다. 민주당 대전시지부 안상철씨는 “대전시민이 국민의 뜻을 배신한 민자당 후보를 준엄하게 심판할 것"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민주당은 민자당이 통합 야당인 민주당을 ‘김대중당’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대전 · 충남지역은 국민당이 5석 이상을 얻을 수 있다고 장담하는 전략지구이자 다른 지역에 비해 무소속 후보의 강세가 두드러지는 지역이기도 하다.

 13대 국회의원선거에서 당시 김종필 총재가 이끄는 신민주공화당은 대전의 4개 의석전부(지금은 5개 선거구)와 충남의 14개 의석 중 9석을 차지해 녹색바람을 일으켰다. 그러나 현지인들은 이번 선거에서는 13대 선거 때와 같은 바람이 일지 않을 것으로 본다. 대전 · 충남지역의 여당 후보들도 “그런 바람은 불지 않을 것 같다”고 입을 모은다.

 정치 관측통들은 13대 선거 때의 녹색바람도 자체적으로 일어난 바람이 아니라 호남의 황색바람과 부산 · 경남의 ‘김영삼 바람’에 맞서 반사적으로 일어난 것이었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한다. 한 야당 인사는 “김종필 바람은 지하에 암장됐다. 총선 후에는 그의 허리가 무너질 것이다”라고까지 극언한다. 김최고위원의 영향력 약화는 지난 광역선거에서 나타났다. 민자당은 선거에서 이기기는 했으나 대전 23개 의석 중 14개, 충남 55개 의석 중 37개만을 건졌을 뿐이다. 이는 수도권에서 압승한 여당의 실적과 비교해볼 때 상대적으로 초라한 성적이다.

‘녹색바람’ 진원지 대전도 잠잠
 13대 총선 때 녹색바람은 충남권의 중심인 대전에서 일어 도 전체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지금은 대전에서 바람이 불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대전시에서 출마한 5명의 민자당 후보는 힘겨운 싸움에서 승기를 잡기 위해 최근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20개에 달하는 합동 공약사업을 발표했으나 반응이 시원치않다. ‘김종필 바람’이 불지 않으면 여당 후보는 그만큼 어려운 싸움을 벌여야 한다. 실제로 대전 대다수의 선거구와 충남의 4~5개 선거구에서 여당 후보가 밀리는 형편이다. 야당과 무소속 후보들은 때를 놓칠세라 ’김종필 아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전 중구에서는 전 · 현직 의원인 김홍만 후보(민자당) 류인범 후보(민주당) 강창회 후보(무소속)가 각축을 벌이고 있다. 김후보는 “지역발전을 위해 재목으로 키워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11대 민한당 의원이었던 민주당의 류인범 후보는 “당선권인 5만표 이상의 득표를 자신한다”며 기세를 올리고 있다. 류후보측은 강후보와 국민당의 송두영 후보가 여권 성향의 표를 잠식할 것으로 내다봤다. 무소속의 강후보는 장애자 재활지원 활동과 환경보호 활동의 내세워 선거전에 임하고 있다. 대전 서 · 유성구는 국민당의 전력지구이자 민자당이 위험지역으로 꼽는 곳. 박충순 의원(민자당) 김태룡 후보(국민당) 그리고 이재환 후보(무소속) 가 팽팽한 3파전을 벌이고 있다. 민자당을 탈당해 국민당 간판으로 나온 김태룡 후보와 무소속의 이재환 후보의 협공을 받고 있는 박충순 후보는 당선권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김후보는 “이 지역은 전통적으로 야성이 강한 곳이다. 30년 동안 정치하면서 이렇게 호응도가 높은 것은 처음 느낀다”고 주장한다. 무소속의 이후보측은 지난 3년 동안 도자기 꽃꽂이 서예 지점토 등공예 등을 무료로 가르치는 여성 교양대학을 운영해 1천7백명의 수료생을 배출한 것이 큰 힘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김최고위원의 막판 버티기에 힘입어 공천 경쟁에서 막차를 탄 박후보는 이 지역의 보수 성향에 기대를 걸고 있다.

 대전 동구갑과 동구을에서는 민자당 후보와 민주당 후보가 호각의 접전을 벌이고 있다. 동구갑에서 김현 후보(민주당)는 13대 때 2천표 차로 패한 민자당 남재두 후보의 맹렬한 추격을 받고 있다. 김후보는 17년 동안의 효도관광 알선을 바탕으로 바닥표 훑기작전에 나서고 있다. 남후보는 2천7백회에 이르는 주례서기와 남씨 종친회, 라이온스클럽 등 사조직이 무기이다. 특히 남후보측은 김후보의 개운치 않은 전력을 문제삼아 상대적인 도덕성의 우월을 부각시킨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동구을의 윤성한 의원(민자당)은 민주당의 송천영 후보로부터 위협받고 있다. 이곳은 민주당의 전략지역이다. 13대 때 ‘김종필 바람’에 밀려 1만2천표 차로 패한 송후보는 “3당 합당 후 국민의 불만이 높아가고 있다. 승리를 자신한다”며 기염을 토했다.

 대전 대덕구의 경쟁 역시 흥미롭다. 이 지역은 재력가 이인구 의원(민자당)이 버티고 있다. 민주당의 김원웅 후보는 “인물이냐, 돈이냐”라는 구호를 내걸고 한판 승부를 벼르고 있다. 이후보와 김후보는 대전고 선후배 사이. 김후보는 ‘무공해 정치인’임을 내세워 상대후보의 이미지와 대비시키고 있다. 특히 김후보측은 이후보측이 재력을 이용하여 넥타이 스카프 시계 등 엄청난 불법 물량공세를 펴고 있다며 후보 등록이 끝난 후 폭로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에 대해 이후보측은 지난해 당원 단합대회용으로 만든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충남지역에서 팽팽한 접전을 보이는 지역은 천안시(민자당 정일영 · 무소속 성무용 후보) 연기군(민자당 임재길 ·국민당 박희부) 서산 · 태안군(민자당 박태권 · 민주당 한영수) 금산군(민자당 유한열 · 국민당 정태영 후보)등이다. 특히 금산군의 경우 13대 때 1천표의 근소한 차이로 유한열 후보에게 밀린 국민당의 정태용 후보는 “유의원이 4선이지만 실감나는 국회발언 한번 해본 적이 없다”며 설욕을 다짐하고 있다. 유의원측은 처음에는 3당 합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았으나 지금은 “거목 일꾼 만들자”는 바람이 일고 있다고 주장했다.

JP의 여권내 위상, 총선으로 만회되려나
 반면 김종필 최고위원의 지역구인 부여에서 지리적으로 가까운 논산의 김제태, 공주의 윤재기, 청양의 조부영, 대천 · 보령의 김용환 후보는 비교적 여유있는 모습니다.

 김최고위원의 영향력이 부여와 가까운 지역을 벗어나 어디까지 미칠 것인지 투표함을 열기 전에 속단하기는 어렵다. 최고위원 회의도중 문을 박차고 나오는 등 공천과정에서 강한 불만을 표시했던 김최고위원은 전국구공천 결과에 대해 역시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는 중요한 결정 과정에서 제외돼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불만 강도는 여권 내의 위상하락과 비례하는 지 모른다. 대전 · 충남 지역에서의 선거결과는 그의 위상을 다시 자리매김하는 데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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