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 밀사가 남북 교류 흐린다
  • 이교관 기자 ()
  • 승인 1996.09.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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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오가며 이중 발언, 고위층 친분 이용해 사업 도모···상호 신뢰의 통로 확보해야

“프로 선수들이 기량을 겨루는 월드컵 본선에 아마추어 팀이 출전한 꼴이다.”

어느 북한 문제 전문가가 정부의 미숙한 대북 정책을 꼬집은 말이다. 물론 이러한 비판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그러나 집권 후반기를 맞은 김영삼 정부의 대북 정책은 갈수록 난맥상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 사례로 최근 한국 대표단의 나진·선봉 투자 포럼 참가 무산과 재미 교포 대북 비선들이 국내 정치와 남북 관계에 미치는 폐단을 꼽을수 있다.

 
먼저 나진·선봉 투자 포럼 참가문제를 살펴보자. 결론부터 말하면, 한국 대표단의 포럼 참가는 불발로 끝났다. 정부는 북한이 대포단 중에서 정부 관계자와 언론인을 제외하고 기업인들만 초청했기 때문에 참가를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근본적인 책임은 한국 정부에 있다는 것이 한 정부 당국자의 지적이다. 남북 관계에 깊숙이 참여해온 그는, 그 이유로 세 가지를 들었다. 우선 정부가, 북한 당국이 한국 자본이 아니면 나진·선봉 자유무역지대를 개발할 수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는 점이다. 이같은 판단은, 북한이 일본과 수교해 나진·선봉 지대 개발뿐만 아니라 경제난을 다개할 자본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는 측면에서 착각이라는 것이 이 당국자의 지적이다.

 실제로 북한은 약 80억달러에 이를 전후 보상 자금을 일본 정부로부터 받게 된다. 게다가 일본과 수교하게 되면 북한은 친북한 조총련계 재일 동포들이 보유한 약 40조엔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동산 및 부동산 자산을 합법적으로 가져갈 수 있다.

 다음으로 정부가 기업인들보다 정부 관계자와 언론인을 대표단에 더 많이 포함시켰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선수단보다 임원이 더 많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나진·선봉에 투자할 능력이 별로 없는 중소기업인들만 선발한 것도 정부의 실책이라는 것이 위 정부 관계자의 지적이다.

 마지막 오류는 정부가, 북한이 정부 당국 배제 원칙을 이번에는 적용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는 점이다. 그 까닭은 북한이 유엔공업개발기구(unido)와의 비엔나 합의서에서 누구든지 포럼에 초청하겠다고 분명히 밝혔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표단에 정부 관계자를 많이 포함시켜도 무리가 없으리라 판단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그동안 남북 경협에서 한국 정부배제 원칙을 일관되게 고수해 왔다는 점을 상기하면, 정부가 비엔나 합의서의 내용을 액면 그대로 믿은 것은 잘못이라고 앞서의 정부 관계자는 말했다.

“재미 교포비선은 공식 밀사 아니다”

 물론 북한 당국이 한국 대표단 중에서 기업인들만 선별적으로 초청한 배경을 이와 같은 점에서만 볼 수는 없다. 무엇보다 나진·선봉의 숙박 시설이 부족해 한국 정부 당국자와 언론인을 부득이 초청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북한 대외경제협력추진위는 9월2일 유엔공업개발기구 사무국에 보낸 팩스에서 초청장발급이 현재 숙박 시설의 수용 능력을 25%나 초과했기 때문에 중국과 한국 대표단 인원을 줄이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왼쪽사진 참조).

 그렇다고 북한 당국의 잘못이 없다고 볼 수는 없다. 앞서의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애초부터 한국 대표단을 초청할 의사가 없었던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북한과 유엔공업개발기구 간에 맞은 비엔나 합의서를 근거로 들었다. 즉, 북한이 한국 정부가 이 합의서 내용을 액면 그대로 믿고 당국자를 포함한 대표단을 구성하리라고 예상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포럼 참가 무산 책임은 북한 당국보다 한국정부 쪽에 더 많다는 것이 이 정부 관계자의 지적이다. 만약 정부가 북한 당국의 의도를 면밀하게 분석해 대표단을 구성했다면 사정은 달라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정부의 판단 잘못으로 남북 경협을 통해 점진적인 남ㅈ북 관계 발전을 도모할 기회가 점차 사라져 간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재미 교포 비선 문제를 들 수 있다. 얼마전 시중에 나돌았던 ‘대북 밀사설’의 주인공은 재미 교포인 김 아무개 회장과 김 아무개 교수로 밝혀졌다. 한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이 재미 교포들은 청와대와 국가안전기획부 일부 고위 관계자들과 친분이 있음을 내세워 7월과 8월에 북한을 방문해 비공식적인 대북 밀사 노릇을 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북한 당국이 이 재미 교포들을 공식 대북 밀사인 줄 알고 남북 당국자 회담을 거부하는 등 이들이 남북 관계에 미치는 역기능이 심각하다고 밝혔다.

 특히 재미 사업가인 김 아무개 회장이 청와대 일부 고위 관계자와의 사적인 관계를 이용해 대북 밀사 노릇을 하게 된 배경은 사업 목적 때문이라고 이 정부 소식통은 밝혔다. 이 소식통에 따르면, 그가 대북 비선 노릇을 하게된 시점은 몇 년 전 한국 기업과  미국 기업이 공동으로 벌인 대북 곡물 공급 사업에 깊숙이 개입하면서 부터다. 즉, 당시 북한 당국으로부터 약 7천만 달러에 달하는 곡물 대금 잔금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정부 소식통은, 김회장 등이 북한 당국이 4자 회담을 조기 수용하려고 한다는 왜곡된 정보를 한국 정부에 전하면서 빨리 북한에 쌀을 추가 제공하라고 제안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고 밝혔다. 즉, 북한 당국에 자신들이 한국 정부로 하여금 쌀을 제공하게 만들 테니 밀린곡물 대금을 갚으라고 요구한다는 것이다. 얼마 전 나돈 ‘쌀 백만t 추가 제공설’도 재미 교포 대북 비선들의 제안을 청와대 등이 심각히 고려했기 때문이라고 이 소식통은 지적했다.

부정확한 정보,정책에 혼선불러

 문제는 재미 교포 비선들의 이러한 행각으로 정부가 대북 정책에 혼선을 빚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김영삼 대통형이 밝힌 ‘ 북한 중대 변화설’에서부터 최근 식량난으로 붕괴 위기가 임박했으므로 북한 난민 수용소를 설립해야 한다는 ‘북한 위기설’에 이르기까지 정부의 대북 인식은 혼선을 거듭했다. 앞서의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이와 같은 대북 정책 혼선은 상당 부분 재미교포 비선들의 검증되지 않은 정보에서 말미암는다는 것이다.

 이 재미 교포 비선들은 국내 기업들에게 자신들이 남북한 고위 당국자들과 친분이 두텁다고 과장하면서 대북 사업을 함께 하자고 제안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삼성그룹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김 아무개 회장이 지난 7월게 자기가 북한 김정일 비서와 친분이 있다면서 대북 사업을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 삼성그룹은 그의 제안을 거절했는데, 그 이유는 안기부가 ;그가 이제는 대북 비선으로서 효용 가치가 떨어졌다‘고 알려왔기 때문이었다고 이 관계자는 밝혔다.

 남북 당국자 회담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재미 교포 비선들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이들을 한국 정부의 공식 밀사로 잘못 알고 당국자 회담의 필요성을 느기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정부 소식통의 지적이다. 게다가 이들은 북한의 지도부와 관련된 그릇된 정보를 전하기도 한다. 실제로 김 아무개 회장은 최근 김용순 비서가 북한의 대남 담당 비서 직에서 해임되었다고 전했으나 안기부가 확인한 결과 김용순 비서가 여전히 대남 담당 비서 임이 왔인되었다.

 이같은 사례에서 통일원의 대북 정책이 얼마나 서툰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 북한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대북 정책에서 정부가 보이고 있는 난맥상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사업 목적에 눈이 어두운 일부 재미교포에게 북한 정보를 의존하다 보니 남북 당국자 회담마저 어려워지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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