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 “우리의 소원은 통합”
  • 장영희 기자 ()
  • 승인 1992.03.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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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변화 내세우 9개 통계 흡수 추진 … 韓銀 등 “전문성 결여” 반대

 2월27일 통계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제72차 통계위원회의 분위기는 평소와 사뭇 달랐다. 통계청이 올해 업무추진 계획을 설명하면서 “국가정책 수행상 긴요한 일부 통계의 흡수통합을 추진하겠다”고 밝히자 심의위원들 사이에 갑론을박이 벌어진 것이다.

 한국은행측 위원은 “국가정책의 주요 통계를 국가기관에서 모두 작성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 같은데 더 많은 검토가 필요하다”고 전제한 뒤 “특히 기초통계가 아닌 가공통계의 경우 어느 기관에서 작성하는 것이 논리적이고 합리적인가를 따져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농림수산부의 소속 위원도 “무리하게 통합하면 해당기관은 행정필요에 따라 또 다른 통계를 만들려 할 것이며 이는 중복을 초래한다”고 반박했다.

 통계청은 지난달 17일 청와대에 올해 업무 추진계획을 보고하면서 슬그머니 통합계획안을 내놓았다. 통계청이 밝힌 검토추진 이유 중 으뜸은 통계환경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중앙통계기구의 조직과 기능이 미흡할 때는 국가기능 통계의 분산작성이 불가피했으나 이제는 독립중앙기구로서 통계청이 발족됐고 통계기술도 크게 발전됐다는 것이다. 또 비슷한 통계의 중복 조사 작성에서 오는 부처간의 불편과 자료이용상의 혼란을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밝히고 있다.

농림수산부 · 한은 반박논리 준비
 검토대상에 오른 것은 한국은행의 국민총생산(GNP)통계 및 도매물가지수, 농림수산부의 농 · 어업 총조사와 농 · 어가 경제조사등 4개, 노동부의 매월 노동통계 및 직종별 임금실태조사, 과학기술처의 과학기술연구활동조사 등 모두 9개이다. 조사범위가 전국적인 ‘총조사’ 성격을 지니거나 국가정책에 직접적으로 활용되는 주요 통계, 통계청이 작성한 자료와 상호 비교성이 높고 공통적으로 활용하는 통계 등을 골랐다고 통계청은 설명한다.

 통합에 대한 한국은행 등 4개 기관의 반응은 “절대불가”이다. 이들이 반발하는 기본논리는 “통계는 나침반과 같은데 통계업무를 내줄 경우 어떤 근거로 정책판단을 내리느냐”는 것이다. 특히 문제는 9개 통계는 정책을 수행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기본통계라는 지적이다. 또 통계를 만드는 과정에서 얻는 많은 정보는 그때그때 빠른 정책판단을 가능케해 ‘뒷북정책’을 막아준다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통계조직이 큰 농림수산부와 한국은행은 반박논리를 준비해 통계청을 공격하고 있다. 통계청이 농수산 관련 4개 통계를 인구주택총조사 및 도시가계조사와 연결시키면 조사대상의 부담과 예산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 데 대해 농림수산부는 “조사항목과 목적이 달라 같이할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조사주기가 10년이어서 급변하는 농어촌 실태파악이 어렵고 표본의 노후화로 인해 통계의 정밀도가 떨어진다는 주장에도 “개선할 사유는 되지만 뺏아갈 이유는 안된다”고 반대한다. 徐漢革 농수산통계관은 “가장 기본이 되는 4개 통계가 이관되면 생산비조사 등 나머지 30여개 조사도 말라죽이게 될 것”이라며 전문성이 강한 농 · 어업 통계를 통계기술만으로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고 말한다.

 한국은행은 보다 전문적인 논리를 끌어내 답한다. <국민소득 및 물가통계의 통계청 이관 논의에 대한 견해>란 문건을 작성해 이관이 곤란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국민소득통계는 자금순환 국제수지 산업연관표 등 5대 국민계정의 하나로 이들은 별개가 아닌 하나의 통일된 고리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나눠 생각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국민계정실 姜亨文 실장은 “산업생산 등 몇가지 기초통계를 두들겨 맞추면 국민소득 통계를 만들 수 있다고 여기고있으나 실물과 금융 등 방대한 자료를 토대로 전문가의 분석능력과 경험이 없으면 추계가 불가능한 작업”이라고 설명한다. 지역소득(GRP)통계를 만드는 수준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동부와 과학기술처도 난색을 표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노동부 오성 기획관리실장은 통합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미루면서도 “이관보다는 통계청이 이들 통계의 신뢰도를 높이는 등 개선과 조정업무를 강화하려는 의도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과기처 통계관계자도 과학기술연구 활동조사는 과기처의 고유업무로 일반화할 수 없는 통계라는 이유로 통합이 어렵다고 밝혔다.

美 · 日은 분산형, 加 · 佛은 집중형
 통합을 둘러싼 양측의 마찰은 궁극적으로 국가 통계조직 형태가 집중형을 취할 것이냐, 아니면 분산형을 취할 것이냐의 문제로 귀착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분산형을, 캐나다 프랑스 대만 등은 집중형을 취하고 있는데 학문적으로 어떤 형태가 바람직하다는 정설은 없다. 국내 학계에도 “정책수립 및 집행기관의 성격에 맞는 필요통계는 가급적 해당기관에서 맡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분산형지지 의견과 “중앙통계기구가 대부분의 통계를 작성하는 것이 통계의 정밀도 및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서울대 김정근 교수)도 집중형 선호 의견이 섞여 있는 상태이다. 이번 통계청의 통합검토안은 집중형으로 가기 위한 사전포석으로 볼 수 있다.

 통합추진안은 각계의 의견을 묻는 등 좀더 검토가 필요할 터이지만 연세대 尹起重 교수(통계학)의 지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중앙통계기구인 통계청이 있는 이상 이 기관을 발전시킬 수 있는 정책적 배려를 하는 일이 중요하다.”

 통계청은 91년 1월 경제기획원 조사통계국에서 청으로 독립했다. 예산과 인원이 조금 늘었을 뿐 청이 되었어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평가이다. 이번 통합계획에 대해 “통계청이 위상을 높여보려는 서툰 몸짓”이라는 비아냥이 없지 않지만 독립 2년째를 맞아 중앙통계기구로서 제 몫을 다하려는 시도라는 동정론도 나오고 있다.

 閔泰亨 청장은 “팔리는 통계 만들기, 서비스 높이기, 심층 가공통계 발굴하기 등을 올해 정책목표로 삼고 있다”고 말한다. 통계 통합을 추진하겠다는 계획도 이런 목표와 연결되어있다는 주장이지만, 한국은행 文學模 조사2부장의 지적은 곱씹어봐야 할 듯하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기초통계 개발에 좀더 정열을 쏟아야 한다. 행정력을 동원해야 하는 이 작업을 민간기관은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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