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개방 4년만 유보하라”
  • 송준 기자 ()
  • 승인 1992.03.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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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계 “UR 시기상조 … 96년이면 유통체계 갖춘다”

 출판계가 ‘UR태풍’ 앞에서 몹시 흔들리고 있다. 지난 2월 재무부가 외국인 투자 금지업종인 출판업을 자유업종으로 전환하는 안을 마련, 문화부에 검토를 의뢰하자 대한출판문화협회(회장 金洛駿)측은 즉각 이를 반대하고 나왔다. 또 일산출판문화산업단지 사업협동조합(이사장 李起雄 · 이하 출판단지)에서는 2월26일 열린 2차 정기총회에서 개방반대 성명서를 채택했으며, 곧이어 3월5일 출판 · 인쇄 · 제본 · 서적업계 사장단은 ‘출판관련산업발전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출판계가 이렇게 완강하게 출판시장 개방을 반대하는 까닭은 한마디로 국내 업계가 ‘저항력’이 없기 때문이다. 책의 제작에서 유통에 이르는 각 부문이 허약한 것이다.

 총 6천2백96개 출판사(91.10월 현재) 중 60% 정도가 한해 동안 단 한권도 내지 않은 무실적 출판사인 데다 95% 이상이 영세한 개인기업 규모를 못 벗어나고 있다. 이들은 소수 인원이 출판 영업 발송 배달 재료작성 등 업무를 도맡아 해내는 실정이다.

 영세 중소서적상이 주류를 이루는 서점계도 마찬가지이다. 전국 서점 4천7백여곳의 평균 매장면적은 약 10편 정도로서 대형서점 한두곳을 뺀 나머지 서점이 소화할 수 있는 물량은 많아야 6천여권(1평당 4백~6백권)에 불과하다. 반면 국내 출판물량은 약 2만5천종에 달한다. 80% 가까운 책을 독자들은 보지 못하는 셈이다.

 책은 제대로 접할 수 없는 환경에서 독자가 늘어날 리 만무하다. 또한 사회전반에 독서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경향마저 깔려있다. 일반교양도서를 탐도하다간 경쟁에서 뒤지기 십상이라는 인식이 학생과 학부모에게 깊이 박혀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 척박한 출판계에 첨단과학으로 무장한 대형 외국출판사가 밀려들면 국내 출판계가 ‘침수’하리라는 것은 예상 가능한 일이다. 외국출판사들은 서점 및 유통회사와 컴퓨터통신망으로 연결돼 있다. 예컨대 우리는 아직도 지게로 책을 나르고 있는데, 이들은 키보드 조작 하나로 서고의 책을 꺼내 포장하고 차에 실어 주문한 독자의 손에 배달하는 無人 시스템으로 작업을 마친다.

 국내 출판업자들은 한결같이 “출판시장 개방은 곧 한국 출판산업의 몰락”을 부를 것이고 마침내는 외국에 문화적으로 종속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출판계 일각에서는 출판시장을 개방함으로써 왜곡된 유통구조를 개선한다든가, 보다 빠르게 해외정보를 입수하는 등의 긍정적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견해도 피력한다. 우리 경제가 무역에 의존하는 이상 개방은 필연적이나 출판산업이 경쟁력을 갖출때까지는 보호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출판단지 李이사장은 “96년이면 우리 단지의 일부 업무가 시작돼 국내 출판유통의 80%정도를 소화해낼 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출판사는 책을 만드는 데만 전념하고 서점은 크기와 상관없이 전체 도서목록을 가지고 있다가 주문을 받으면 하루 이내에 배달하는 ‘꿈의 유통체계’를 갖출 수 있다. 그밖에 국제표준도서번호제도(ISBN), 판매시점관리제도(POS)와 함께 출판유통 부가가치통신망(VAN)이 갖춰지면 시장개방에 대한 최소한의 준비는 갖추게 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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