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의 국민당 “5년 뒤 보고 새출발”
  • 서명숙 기자 ()
  • 승인 2006.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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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요 극복?공당 체질 강화?대 YS 관계 정립 등 ‘선거후 과제’ 산적


 

  멀리 청와대가 바라보이는 서울 광화문 한복판의 국민당사는 대통령 선거 이후의 변화를 극명하게 몸으로 드러낸다.  선거운동 기간 내내 건물 외벽을 도배질하다시피 했던, 정부와 민자당을 규탄하는 대형 플래카드들은 조용히 내려졌다.  출입구 창문에 붙었던 각종 ‘격문’도 사라졌다.

  대통령선거에 실패한 모든 정치세력과 정파가 한결같이 그 후유증을 심하게 앓았지만, 신생정당 국민당은 유달리 극심한 공황상태를 겪었다.  국민당은 91년 12월 구체적인 창당 작업이 시작된 이래, 鄭周永 대표 특유의 저돌적인 밀어붙이기식 당 운영 방식 속에서 줄곧 ‘전시태세’로 일관해왔다.  뚜렷한 정치적 이념이나 색깔을 가질 여유도 없이 민자당과의 대치국면을 통해 당의 결속력과 생명력을 이어왔고, 새한국당과의 정치적 통합 혹은 개별 영입으로 朴哲彦 李鍾贊 金復東 李玆憲 金龍煥 의원 등을 끌어들여 당의 몸집을 키워왔다.  이는 물론 정대표가 갖고 있는 카리스마와 막대한 자금력, 그리고 정치세력간의 갈등관계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때 정대표의 지나치게 독선적인 당 운영에 대한 비판과 함께 당 체질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고개를 들기도 했지만, 전투를 목전에 둔 상황에서 위력을 가지지 못했다.  당선권 진입은 불가능하더라도 정후보가 괄목할 만한 득표력을 보인다면, 국민당은 향후 정치전개 과정에서 정치적 발언권과 입지를 보장받을 수 있으리라는 게 국민당의 희망사항이자 정가의 일반적인 관측이기도 했다.

  그러나 대통령선거 결과는 국민당을 지탱해온 ‘왕회장 신화’의 완벽한 파괴로 귀결되고 말았다.  그와 함께 “전투태세로 일관해온” 국민당은 창당 이후 한번도 겪어보지 않은 ‘평시체제’로의 전환을 요구받기에 이르렀다.  정대표 1인의 개인적 체취와 정치적 비전으로 움직이던 정당이 공당으로 살아남을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기로에 놓이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다른 야당과는 달리, 격렬한 전투의 후유증으로 남은 ‘현대 비자금 유출’ ‘부산지역 기관장 대책회의 도청사건’을 방어적으로 수습해야 하는 처지에 몰려 있다.  국민당의 한 당직자는 선거 직후 “정대표는 늘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고 말해왔다.  정당으로서는 정작 지금부터 진짜 시련이 시작되는 것 같다.  국민당은 이번 기회에 새로운 출발을 하지 않으면 그야말로 거품정당이 될 가능성마저 있다”고 심한 위기감을 드러냈다.

“위기국면 돌파 위해 정대표 체제 불가피”

  그러나 공황상태에 있던 국민당은 선거 후부터 서산농장, 경주 현대호텔에 칩거하던 정대표의 활동재개로 서서히 충격의 늪에서 빠져나오고 있다.  정대표는 대선 이후 처음으로 지난 23일 경주 현대호텔에서 열린 국민당 의원총회에 참석한 데 이어, 28일 당사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가짐으로써 “정치인으로서의 새 출발”을 선언했다. 정대표는 이날 국민당의 계속성에 의문을 던지는 세간의 의혹을 불식하려는 듯 “공당화를 위한 기금 2천억원을 약속대로 내놓고, 정치대학 설립과 운영에 쓰겠다”고 밝혔다.

  정대표는 대선 이후 한국 정치무대에서의 국민당 역할과 성격에 대해서도 “경제정책에 관한 한 여당을 지원할 일이 있으면 지원할 것이다.  과거 야당과는 달리 시시비비를 가리는 정당으로 존재할 것이다”라면서 ‘경제대안에 근간을 둔 야당’임을 분명히했다.  그는 또 정당의 가장 큰 목표인 수권과 관련해서는 자신의 재출마 가능성은 일축하면서도 “5년 뒤를 바라보고 뛸 생각이다.  다음에는 반드시 이길 수 있는 체제를 갖추겠다”면서 국민당 집권에 대한 강한 집념을 드러냈다.  23일 의원총회 역시 경주에 있는 정대표를 찾아가는 예우를 갖추면서 “정대표 중심으로 일사불란하게 뭉쳐 백의종군할 것”을 결의함으로써, 당분간 정대표 중심의 당 운영체제로 동요와 충격을 흡수하며 공당 체질 강화에 나서게 되리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대선 이후 당내 일각에서 한때 제기된 ‘정대표 2선 퇴진론’‘당내 민주화’ 등의 목소리가 오히려 ‘정대표 중심의 과두 위기관리체제’ 강화로 귀결된 까닭은 자명하다.  국민당 관계자 대부분이 극도로 위축된 당 분위기를 일신하고 민자당과 金泳三 당선자와의 갈등을 조정하려면 정대표 외에 달리 대안이 없다는 인식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국민당의 한 고위 당직자는 “정대표 개인의 체취를 가능한 한 줄이고 공당으로 체질을 강화해야 한다는 게 장기적인 과제”라면서도 “당장 눈앞에 놓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대표 중심으로 뭉치는 수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말한다.

  이렇게 ‘정대표 중심의 위기관리체제’로 만장일치의 결론이 내려지기까지 기존 당직자보다 박철언 이자헌 김용환 의원 등 ‘입당파’가 더 적극적인 입장을 취했다.  김영삼 당선자에게 반기를 들고 뛰쳐나온 이들로서는 정치적 피난처인 국민당이 흔들린다면, 그야말로 위기에 봉착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들은 당 위기 수습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박의원은 칩거중이던 정대표를 찾아가 나름대로의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박의원은 23일 의원총회에서도 ‘3월까지 당체제 정비, 제도?기구에 의한 공당화, 야권 대통합을 감안한 야권공조와 정책연합’ 등 나름대로의 구상과 복안을 개진했다.  박의원은 자신의 개인적 행보와 관련해서는 “당선자와 새 정부가 약속대로 개혁과 변화를 추진해주길 바랄 뿐이며 앞으로 5년 동안 조용히 지내겠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정치권의 지략가로 통하는 박의원이, 민주당 내에서 지역별?계파별 내분이 격화될 가능성을 내다보고 내각제와 야권통합의 명분을 걸고 민주당 일부와 대화를 할 것이라는 관측이 있다.

이종찬 의원 위상 문제 불씨로 남아

  국민당의 충격과 방황은, 이번 선거를 “실패가 아닌 시련으로 받아들인” 정대표의 당무 일선 복귀로 일단 수습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앞으로 풀어야 할 안팎의 숙제는 많다.

  우선 국민당-새한국당의 정치적 통합으로 선거 1주일 전에 후보를 사퇴하고 합류한 이종찬 의원이 위상 문제는 아직도 해결 안된 과제이다.  23일 정대표와 단독으로 밀담한 후에 의원총회에 참석한 이의원은 “정치적으로 우리는 이미 통합했다.  다만 법률적 절차를 거치지 않았을 뿐이다”라면서도 “양당의 통합정신을 수용해준다면 국민당의 발전을 위해 분골쇄신 하겠다”고 고리를 걸었다.  양당의 통합정신에는 공당화를 위한 2천억원 기금 출연뿐만 아니라 ‘공동대표’ 보장을 통한 당의 민주적 운영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정대표는 의원총회를 끝낸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 당 모두가 백의종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의원의 새한국당 진영 지구당위원장들이 통합에 큰 불만감을 드러내며 기존 위원장들과 불협화음을 빚고 있는 반면 국민당 일각에서는 “이의원의 합류가 선거에 전혀 보탬이 되지 않았다”는 비판론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만큼 ‘통합정신 수용 뒤 분골쇄신’과 ‘백의종군’의 인식 차이가 드러날 경우, 두 진영 간의 갈등이 표면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 대선 패배에도 불구하고 정대표 중심 체제가 당내에서 만장일치로 의결되긴 했지만, 이것이 대선 이전과 같은 정대표 단독질주 체제로 지속된다면 향후 당내 불만과 갈등 요인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따라서 정대표는 내년 초 당 수뇌부 개편을 통해 실질적인 집단지도체제를 채택할 가능성도 높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새한국당의 이종찬 의원과, 이자헌 의원 등 사전 입당파, 그리고 김복동 의원, 기존 당직자 등의 입장이 각기 달라 얼마간의 진통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정대표는 선거 직후 야당 후보 중 가장 먼저 대선 결과에 승복한다는 기자회견을 가졌고, ‘부산 기관장 대책회의’를 비롯해 민자당에 대한 고소?고발 건을 전면 취하함으로써 유화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서울지검이 지난 23일 ‘국민당의 현대 비자금 유입’ 수사를 공안부에서 특수부로 이첩하고 관련자들에 대한 전국 수배령을 내리는 등 종래보다 더 강경한 방침으로 선회하고, ‘부산 대책회의’ 도청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서는 정몽준 의원의 강제구인도 불사한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정대표가 24일 동교동 金大中 전 민주당 대표의 자택을 전격 방문해 민자당의 선거부정을 전면적으로 문제삼자고 제의한 데 이어, 민주당과의 공조 아래 대선의 문제점에 공동 대응하겠다는 ‘대항자세’로 선회한 것도 정부의 강경방침에 맞대응하기 위해서다.  이런 와중에 당내에서는 중부권 출신 일부 의원들의 ‘국민 탈당 민자 입당설’이 이름까지 구체적으로 오르내리면서 나돌고 있다.

  내우외환의 도전 속에서 정대표와 국민당은 프로 정치인으로서, 자생력 있는 공당으로서의 역량을 보일 것인가.  정치인으로서의 정대표의 시련과 도전은 정작 지금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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