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 화랑만도 못한 활동이 문제”
  • 최석태(미술 평론가) ()
  • 승인 1996.09.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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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방 국립현대미술관장의 “입장”에 대한 미술 평론가의 공개반혼

 
최근 미술계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 이전 10주년과 “96올해의 작가 <윤정섭>에 관해 많은 논란이 일었다. 다음의 글은 국립 현대미술관 임영방 관장이 밝힌 입장<<시사저널>제359호>에 대해 최석태씨<미술평론가>가 보내온 반론이다. <편집자>

 국립현대미술관은 말 그대로 나라가 세운 현대 시기 한국미술을 다루는 미술 박물관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연구·수집·전시할 대상은 역시 국립인 중앙 박물관이 다루지 않는,대체로 20세기 전반을 아우르는 것이어야 한다. 과천 그 산골짜기로 옮기기 전부터 어렵게 수집한 적잖은 미술품이 속한 시대도 대략 1900년대 이후부터 당대라고 할 시기에 해당하는 것이다.

 현대미술관이 드러내 보이고 있는 난맥상은 이른바 미술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관장·전문직이 되면서 지금까지도 해결하지 않은 문제에 엎쳐 더욱 심화되었다. 그런 사정의 하나가 과천으로 옮기면서 저질러진 것이다. 미술관의 우리말 표기는 그대로인 채, 영문표기가 “근대” 또는 “현대”를 뜻하는 모던에서, 바로 지금인 당대를 뜻하는 컨템퍼러리로 슬그머니 바뀌었다. 왜 그랬던가?

 보통 ‘현대’와 ‘미술’을 붙여 쓰는 경우는 ‘현대주의(모더니즘)미술“을 뜻이다. 다소 혼동스러운 언어 습관이 현대 미술관 하면 현대 미술 , 즉 현대주의 미술을 다루는 것이라도 너도나도 여기도록 한 것이다.

 관장 임영방씨는 연초 한 일간지에 작품 구입 방향에 대한 자신의 “원칙”을 밝히면서 국내 작품은 광복 이후 것을 외국 작품은 대표성을 인정 받은 것을 구입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지난달 말에 있었던 이전 10주년 기념 토론회에서도 소장품이 귀찮으며, 기획전만을 하는 형태의 전시 시설이 자기의 바람이라고 공표하는 대담성(?)을 보이기도 했다.

 이런 예로 보면,그는 자기에게 주어지고 기대되는 바와 자기가 지켜 나가야 할 바에 대해 나모르는 쇠로 일관하는 것같이 보인다.

 이전에 해온 전시에 대한 왈가왈부는 이제 그만 하자. 이전 기념으로 연다는 주요 공모전 수상 작가전의 경우, 관변적인 직능 단체와 재벌 언론들이 개최하는 이런 공모전을 둘러싸고 그동안 벌러졌던 심사의 공정성·모방성 시비를 비롯한 수많은 논란은 간단히 없었던 것으로 하고 이를 정당 화하는 행사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또한 올해의 작가라면서 뽑은 경우도 관장을 제외한 어느 누구도 내심 동의하기 힘든 것임에 틀림 없다. 명색이 올해의 작가라면 지난해(또는올해)에 인정할 만한 활약을 보였던 사실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지난해에 외국의 무대 미술 경연대회에서 수상한 경력만 내세운 것은 선정된 이의 예술 능력 여하에 관계없이 너무나 섣부른 선정으로 보인다. 게다가 이런 전시 행사를 치르면서 저지른 무능과 실책에 더하여 관장의 인사말을 제외하고는 학예직의 변변한 글 하나 제대로 없이 “연구 기능을 제고했다”니.

 이런 태도와 아울러 그가 관장으로 있으면서 지금까지 전시와 행정,소장품 구입을 통해 보인모습은 정말이지 앞서의 토론회에서 한 발제에 대한 토론에서 얘기된 바로 그 “한 실격의 인물”에 해당하는 것 같다.

 그가 국립현대미술관 책임자로서 할 일, 해서 안될일을 분별없이 마구 헤대면서 국내외의 당대 미술에 치중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활동 중인 미술가들과 정부를 비롯한 미술교육계,과도한 관련을 맺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일부 상업 화랑들. 언론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강화하려는 전략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이 기관에서 벌어질 파행을 막고 미술가들과 국민으로부터 정당한 신뢰를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활동적인 상업 화랑에도 못미치는 활동의 질과 효과에 더하여 정통성 면에서 치명적인 과오를 저지르고 있는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특히 미술 분야에서 서구화 일변도다 싶은 걸음을 걸어왔다. 우리의 경우 겉모습과 결과를 맹종하는 것이 아니라 서구를 비롯한 모든 문화권이 자기의 문화적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얼마나 노력을 기울였고 기울이고 있는가 하는 점에 착목해야 할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우리의 지난 자취에서나 우리 당대에서 과연 바람직한 방향을 끌어내 보임으러써 우리의 미술 문화를 풍부하고 바람직하게 정립하는 것을 사명으로 하는 기관이어야 한다. 외부의 미술 문화도 자기를 바르고 풍부하게 한 연후에, 또는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신중하고 공정하게 들여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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