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 퐁텐느 칼럼
  • 앙드레 퐁텐느 (<르 몽드> 고문) ()
  • 승인 2006.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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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나치 득세의 주범 ‘망명권’


 

  히틀러의 제3제국 몰락 이후, 독일은 자기나라를 2차대전 참상의 장본인으로 만든 악령들을 완전히 몰아낸 것처럼 보였다.  한동안 독일연방공화국(옛 서독)이 ‘보복적 태도’를 취한다고 소련측이 격분했지만 별 효력이 없었다.  서방측은 오히려 전후 서독이 너무 급히 평화주의로 치닫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까지 표명했다.  전체주의를 극단까지 몰고갔던 독일은 민주주의 시범국가로 탈바꿈했다.  경제대국으로 자리잡은 후에도 옛 서독은 표면적으로는‘정치소국’으로 만족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독일의 분단에 종지부를 찍는 날이 온다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것인가.  공산유럽에서 소련에 뒤이어 가장 탄탄한 경제 주체로 평가받아온 동독이 막대한 부를 이룬 서독과 합쳐진다면, 이 새로운 제국은 필연적으로 유럽대륙의 지배자가 되는 것이 아닐까.  이런 우려가 있었다.

  독일의 콜 총리 입장에서는 통일만이 동독 주민의 대이동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서독으로 물밀듯 밀려오는 동독인들로 말미암아 생겨나는 숙소ㆍ취업ㆍ치안 문제 등을 해결할 방도를 찾지 못해 부심하던 서독 정부는 동독인들에게 그들이 사는 곳에서 서독인들이 누리는 자유와 풍요를 누릴 수 있게 해준다면, 동독인들이 동독을 떠나 서독으로 몰려오지 않으리라 믿었다.  동독 마르크화를 시세의 5배에 사들인 것도 이 때문이다.  한편 동독 사람들은 완전히 서독 주민이 되면 그들도 단시일 내에 서독인이 누려온 것과 똑같은 복지를 누릴 수 있으리라 믿었다.

동독지역 일부 도시 실업률 25%

  그러나 서독인들은 가난한 친척에 불과한 동독인 없이도 얼마든지 잘살았으며, 동독 주민의 허리띠를 느슨하게 해주기 위해 자기들의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콜 총리는 1989년 12월 국회 연설을 통해 통일경비 충당을 위한 새로운 과제는 없으리라고 공언했다.  그런데 통일과정에서 예상보다 훨씬 많은 경비가 들어 결국 공약을 지킬 수 없었다.  좋은 평판을 받아온 동독 경제는 알고 보니 완전히 피폐상태였으며, 모든 설비는 낡을 대로 낡았고, 노동자의 생산성은 낮았다.  그런데도 동독인들은 엄청난 폭의 임금인상을 요구했다.  콜 정부가 감행한 동독지역에 대한 대규모 투자, 여러 공공기업의 민영화, 외국자본의 도입 및 자본유입을 위한 고금리정책 등은 이러한 현실을 신속하게 개선하는 데 불충분했다.  게다가 독일의 고금리정책은 최근 몇년 동안 계속된 세계적 경기침제의 주범으로 인식되는 형편이다.

  결과적으로 번창하던 서독 경제마저 침체의 늪에 빠졌으며 실업률과 물가상승률은 지난 40년 이래 최악을 기록해 국민의 불만이 쌓였다.  옛 동독지역의 경우 불안감은 더욱 심하다.  공산체제 아래에서는 실업이란 없었는데 몇몇 도시에서는 인구의 4분의1이 실업자 신세인가 하면, 동독 국민 전체가 자동적으로 누려온 사회보장제도도 재검토 대상이 되고 있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 이같은 부작용은 점차 사라져 통일독일은 세계의 흐름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리라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독일의 현실은 이와 상당히 거리가 있다.  이같은 위기를 맞은 독일을 필두로 몇몇 이웃 나라에서 민중주의와 민족주의, 그리고 외국인 배척주의 움직임이 표면화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같은 흐름이 왜 유독 독일에서 가장 거세게 일어나는 것일까.  그 답은 분명하다.  망명권 때문이다.  현 독일 헌법에 따르면, 망명을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서류심사를 하는 수개월 동안 국가로부터 숙소와 수당을 지급받을 권리가 있다.  수백만명의 망명 신청자들은 독일 실직자보다 생활형편이 좋다.  나치에 뒤이어 공산주의만을 알고 살아온 옛 동독 주민은 지난 60여년간 민주주의 경험이 없었다.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관용을 익힐 여유가 없었다.  동독인들은 ‘정치적’망명권의 혜택을 누리는 자들 중 대다수가 사실은 그러한 혜택을 누릴 권리가 없음을 잘 안다.

  그렇다고 이민자 합숙소에 불을 지르거나 외국인 20여명을 살해하거나, 유태인 묘지를 모독하는 행위 등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 독일의 최고권력층에서는 이같은 행위가 벌어지는 데 대해 수치심을 느낀다고 천명했으며, 국민의 압도적 다수가 점점 더 단호한 태도로 이같은 만행을 지탄하고 있다.  얼마 전 독일국가사회주의 및 반동세력의 온상이라 불리는 뮌헨에서는 30여만명이 촛불을 밝혀들고 악습의 재발을 규탄하는 ‘빛의 시위’를 벌인 바 있다.  이같은 국민의 지지에 힘입어, 모든 정당의 합의 아래 망명권 내용이 수정돼 사태가 진정되기를 기대해보자.  아울러 자신이 직접 체험했거나 혹은 가족이 겪은 시련에 대한 기억으로 말미암아 도저히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는 수십년 전의 그 비극도 자연히 해소되리라 믿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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