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추기경, YS만나 쌀 지원 호소한다.
  • 김당 기자 ()
  • 승인 1997.08.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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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6일 전후 면담 이루어질 듯 … 정부의 북한돕기 정책 변화 가능성



  천주교 김수환 추기경이 김영삼 대통령을 만나 정부의 대북 식량 지원을 호소할 예정이다. 김추기경은 상대적으로 북한 지원 모금 활동을 적극 펼쳐온 한국천주교를 대표하는 데다가 그 자신이 북한돕기운동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동참해 왔기 때문에 김대통령을 만나는 것 자체가 갖는 상징성이 매우 크다.

김추기경은 그동안 ‘사랑은 어떤 적개심도 녹일 수 있는 강력한 무기’라면서 6대 종단이 참여하는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의 옥수수 10만t 보내기 운동에 국민이 적극 동참하자고 호소해 왔다. 따라서 그동안 정부 차원의 직접 지원을 호소해온 김추기경과 김대통령의 만남을 계기로, 정부의 대북 식량 지원 정책이 유연한 자세로 전환하지 않겠느냐는 기대 섞인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이같이 전망하는 근거는 지난 6월 김추기경이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를 만난 이후 국민회의가 북한동포대책위원회를 구성해 대북 식량 지원에 적극 나선 데서도 찾을 수 있다. 김대중 총재는 6월 22일 통일 기원 대미사에서 김추기경을 만난 직후 간부회의에서 “김추기경이 자신을 찾아온 중국 교포의 눈물겨운 호소를 전하면 ‘북한 지원에 정부와 정치권이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 달라’고 요청했다”라고 소개했다. 국민회의는 이날 간부회의에서 그만 민간 단체를 통한 대북 식량 지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정부가 지원에 나서야 하며, 공식 지원이 어려우면 국제적십자사에 쌀을 기탁하는 방법으로라도 정부가 북한 식량난 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쪽으로 당의 입장을 정리했다.

정부의 이 바뀌리라는 또 다름 근거는, 김추기경이 8월12~22일 한국 천주교 최고 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한다는 사실이다. 중국 정부의 추청을 받은 김추기경의 공식 방중 목적은 한·중 천주교 교류 방안을 논의하는 것이지만, 김추기경은 연변에서 조선족을 위한 미사를 집전하고 백두산 천지에서도 미사를 집전할 계획이다. 따라서 김추기경은 방중 기간에 조·중 국경 지대에서 북한의 식량난과 그로 인한 탈북자들의 비참한 실태를 체험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 “위기 넘겼다” … 민간 단체 “아사 진행중”
김추기경은 조·중 국경 지대에서 지신이 직접보고 느낀 바를 김대통령과 면담하는 자리에서 자연스레 전하면서 식략 지원을 호소할 것으로 보인다. 김추기경과 김대통령의 만남은 특별한 변수가 없다면 김추기경이 귀국한 직후에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민족서로돕기불교운동본부(불교운동본부)의 한 관계자는 그 시점이 7월 초부터 전개해온 ‘민족 화해를 위한 북한 동포 돕기 백만명 서명 운동’의 보고대회가 열리는 8월 26일을 전후해서일 것이라고 관측했다. 천주교 관계자들도 이 같은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이 같은 전망은 북한동포돕기운동을 전개해온 종교·민간 단체들이 2·3차 모금 활동을 하면서 느끼는 위기 의식에서 말미암은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각 종교·민간 단체들은 1차 모금 때와 달리 국민적 관심과 참여 열기가 점점 떨어지고 있는 것을 우려해 왔다. 따라서 어떤 방식으로 건 침체 국면의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져 왔다. 일부에서는 김추기경이 북한 지원을 촉구하는 무기한 단식이라도 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아이디어’가 제기되었고 실제로 이를 추기경에게 눈물로 호소한 이도 있었다. 그러나 그 보다는 더 ‘온건’하고 현실적으로도 가능한 대통령 면담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 동포 돕기에 나선 종교·민간 단체들이 극적인 돌파구를 마련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한 배경에는 2차 지원 분 모금 실적이 부진하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북한 지역을 엄습한 가뭄, 그리고 이미 북한 주민들이 대량 아사(餓死)하기 시작했다는 판단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민간 단체들은 정부 차원의 대북 지원을 4자 회담과 연계해온 정부 방침과 북한이 일단 식량 위기 고비는 넘겼다는 정부의 인식을 민간 차원의 2차 식량 지원활동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꼽아 왔다.

북한 식량난의 최근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7월 21~26일 압록강·두만강 접경 지역을 다녀온 불교운동본부 집행위원장 법륜스님이 답사보고 기자회견에서 가장 강조한 것도 정부와 국제 기구 그리고 민간 단체의 북한 식량 수급 실태와 전망이 제각기 다르다는 사실이었다. 국제 사회의 지원 등으로 북한의 식량 위기가 해소되었다고 보는 정부의 입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세계식량계획(WFP)과 식량농업기구(FAO)의 주장에 따르더라도 국제 지원 물량 및 자체 수입분 등으로 곡물 66만t이 북한에 반입되어 6월 말 현재 식량 재고량이 59만t에 달해 각각 6·8월에 수확하는 감자와 옥수수 등으로 올해의 식량 위기는 넘길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정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의 곡물 생산량이 3백69만t에 달하고, 자체 절약분 백만t에다 국제 지원 및 수입 물량 66만t을 더하면 6월말 현재 재고량이 1백22만t으로 대규모 아사 위기는 넘겼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간 단체들의 분석에 따르면, 유엔기구나 정부 모두 북한의 96년 곡물 생산량을 과대 평가해 추정하고 있다. 우선 품종과 비료, 농업 기계화 장비, 관개 수리 시설, 기후 및 토양 조건 등에서 남한과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북한의 생산량이 3백50~4백만t(남한은 95년 5백48만t) 이상 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정부 자료는 홍수로 인한 유실량(30만~60만t)과 조기 수확 농산물 중 이미 96년에 사용한 식량 72만9천~80만t을 97년 사용한 식량으로 분석하고 있어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만 제외해도 정부가 추정하는 재고량 1백 22만t은 근거 없이 과다 책정된 것이며, 실제 재고량은 96년 기초 재고량 15만 8천t을 포함하더라도 3만3천t밖에 안 된다는 것이 민간 단체들의 주장이다. 이같은 분석을 토대로 하여 민간 단체들이 추정한 97년 6월 말 현재 배급 기준별 식량 현황은 아래<표>와 같다.

북한 식량 부족량 10월말까지 최대 2백38만t
<표>에 따르면 97년 10월 말까지 북한은 최소 92만5천t(세계식량계획 배급 기준:1인 1일 4백52g)에서 최대 2백37만8천t(유엔의 최소 권고치기준:1인1일6백g)까지 식량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난다. 법륜 스님은 “현재 북한 인구가 1천9백만명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것은 종전 통계 2천3백~2천5백만명에 비추어 보면 약 4백만~6백만명이 줄어든 것이다. 북한의 평균 사망률보다 높아진 사망률만큼 아사한 것으로 판단해보면, 이미 북한에서는 대량 아사가 진행중이라고 볼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민간 단체들은 대량 아사 징수를 △식량 절대량 부족 △식량 수송의 어려움과, 지원 식량의 서쪽 집중 같은 분배의 비효율성 △영양 부족으로 인한 신체 저항력 약화 등에서 찾는다. 따라서 민간 단체들은 북한의 식량 실태에 대해 어떤 수치를 가지고 어떻게 분석하더라고 현재 북한에서는 대량 아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민간 단체들은 한국전쟁 수 반 세기 동안 맺혀 있던 골 깊은 불신과 적대 감정이 한쪽이 굶어 죽어감으로써 풀려가고 있는 중이라는 역설적인 사실에 더 주목하고 있다.

대북 식량 지원에 나선 모든 민간 단체들이 8월 26일 세종문화회관에서 백만명 서명운동 보고대회를 가진 뒤 그 결과를 청와대에 전달하고, 김수환 추기경이 김대통령을 만나 정부 차원의 획기적 대북지원책을 호소하는 ‘강온 양면 전략’을 구사하기로 한 것도 바로 이런 절박성 때문이다.
김 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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