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이을 다리는 ‘한 · 미 공조’
  • 남문희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1998.0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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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년 한반도 정세 분석/주변 4강의 대북 전략과 한국의 과제

‘IMF 우산속의 한반도’. 올해의 한반도 정세를 전망하면서 전문가들 사이에 농담 반 진담 반처럼 나오는 얘기다. 지난해 11월 한국이 국제통화기금 체제에 급속 편입된데 이어 북한 역시 비슷한 상황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물론 올해 상반기 중 미국과 연락사무소 교섭이 잘 풀려 국제금융기관들의 자금이 북한에 들어갈 경우를 상정한 말이기는 하다.

 남북한 모두가 국제금융기관의 우산 밑에 들어간다는 것은, 미국의 우산 밑으로 들어간다는 말과 다를 바 없다. 국제 금융기관의 실질적 대주주가 바로 미국이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이 구제통화기금 체제에 전격 편입되기 전에도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은 점차 확대되는 추세를 보여 왔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일본 · 중국 등 주변국 사이에서 미국의 주도적 지위가 급속하게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은 지난해 8월 북 · 일간 북경회의를 실질적으로 기획하고 주도하면서, 일본을 북한 진출의 보조파트너로 편입시켰다. 또 지난해 10월의 미 · 중 정상회담은 북한 진출에서 미국의 기득권을 중국으로부터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전략가들이 지난해 하반기 이후 일련의 주도권 강화 전력을 추진해 왔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미국 동향에 정통한 한 서방 소식통은“미국은 김영삼 정부와 공조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따라서 다음 정권에 대한 준비를 안 할 수 없었다”라고 지적했다. 차기 정부에서도 협조가 안 될 경우를 대비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서방 소식통은 한국의 대선과 관련한 다음과 같은 비화를 소개했다. 미국은 한국의 대선 결과에 따라 두 가지 선택지를 준비했다. 하나는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지 못할 경우이다. 이 경우는 한국민들이 변화를 수용할 의사가 없다는 것으로 판단해,‘한국민에게 교훈을 주겠다(Let's teach them a lesson)'는 것이 미국의 정책 방향이었다. 반대로 미국의 희망대로 김대중 후보가 당선될 경우, 김대중씨는 △만델라 · 하벨 · 바웬사 · 아키노처럼 고생을 많이 했고 △한국을 변화시킬 수 있는 인물이므로’그에게 기회를 주겠다(Let's give him a chance)'는 입장이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오는 2월 출범할 새 정부에는 사상 유례없는 도전과 함께 기회가 함께 주어져 있다. 주변국들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역시 자기 나라의 현안과 이해 관계에 따라 북한 진출 일정을 준비하면서 김대중 정부의 행보에 촌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들 나라의 올해 한반도 전략을 살펴보자.

미국, 연락사무소와 경제 제재 완화 맞교환
 
 미 · 북한 관계를 정상 궤도에 진입시키기 위해 접촉 채널의 다양화 · 다각화 · 공식화를 추진한다.

4자회담: 앞으로 남북대화와 병행해 안보 문제를 특화해 다루는 회의로 위상을 조정한다.

연락사무소 개설: 미 · 북한 간에 기술적인 문제는 이미 해소된 상태. 그러나 북한의 워싱턴 사무소 운영 경비와 외교 행낭 및 필요 물자의  판문점 통과 문제에 대한 북한측의 결정이 지연되고 있다. 미국은 연락사무소 개설에 대해 북한이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판단해, 그 전단계로서‘관변 민간단체’의 평양사무소 개설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연락사무소 개설은 현 단계 미국의 북한 정책에서 주요 목표인 만큼 금년 상반기 중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협의를 계속하고 있다. 새 정부 출범 직후 현안으로 등장 할 수 있다.

경제 제재 완화: 연락사무소 개설에 따른 선물로 제시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95년 초의 1단계 완화 조처에 이은 2단계 조처가 발표될 수 있다. 미국은 이미 지난해 9월부터 미국인들의 북한 채권 보유 현황을 조사해 왔다. 북한 유전 개발 사업에 대한 미국 석유 메이저들의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서도 완화 조처가 필요한 상황이다. 앞으로 예상되는 활동은 △대북 일반 무역(수출입) 품목확대 △미국 기업의 대북 투자 허용 확대 △미국 금융기관의 북한 진출 허용 △북한 경제인 미국 방문 허용 확대 △미국 경제 단체의 북한 접근 지원 등이 될 것이다.

자산동결 해제: 이미 북한 채권 보유현황조사를 통해 미국 내 동결 자산 규모가 파악되었고, 앞으로 청산 협상이 진행될 것이다. 물론 시간이 걸릴 것이나, 이 자체가 경제 제재 완화를 위한 상징적 조처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군사 부문 및 그 밖의 협상: 북한 군사력이 아직도 강대한 상황에서 대북 협력은 곤란하다는 미국내 여론 때문에 군축 협상은 여전히 주요 이슈로 제기될 것이다. 특히 미사일 협상은 북한 미사일의 직접적인 타격 목표가 일본이라는 점을 내세워 일본이 협상에 참여하도록 유도할 것이다. 미국은 일본 자금과 북한 미사일이 상쇄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밖에 미군 유해 발굴 작업은 올해의 경우 다섯 차례에 걸쳐 실시하기로 이미 합의된 상태다. 식량지원은 지난해보다 두 배 정도 많은 65만t 규모로 확대할 예정이다. 지난해 10월 미국 정부의 식량 조사단 활동 이후 관심을 모으고 있는 잉여 농산물(PL480호)의 북한 지원 문제는 북한측이 그에 상응하는 조처를 취할 경우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일본, 경제진출 발판 영향력 강회 꾀해

 수교 배상금을 효율적으로 집행하기 위해 점진적으로 협상을 진행한다. 또한 북한 경제 재건에 주도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정치적 영향력 강화를 모색한다.

수교회담: 일본 정부는 원래 지난해 말 이내에 본회담을 개최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북 · 일 수교 회담은 진전 속도와 연동되어 있다. 따라서 미 · 북한 연락사무소 개설 시기를 전후해 표면화할 가능성이 있다. 또 한국 새 정부와의 협의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수교 배상금의 경우는, 수교이전이라도 북 · 일 연락사무소를 개설해 먼저 다루자는 의견과, 수교 이후에 다루자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북한내 일본인 처 고향 방문: 지난해 1차 고향 방문을 계기로 관계를 개선할 분위기가 마련되고, 2차 방문단 협의도 이미 진행 되었다.

일본 기업의 북한 진출:‘일 · 중 동북개발 협회’나‘동아시아 무역 연구회’등 주로 경제단체를 중심으로 하여 간접 접촉 및 조사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되었고, 수교 배상금 문제와 맞물려 투자 타당성 조사가 더욱 강화될 것이다. 수교배상금 지급과 관련해 일본 재계는‘경사생산(傾斜生産)방식’의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 즉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산업 연관 효과가 큰 분야부터 우선적으로 진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석탄 및 에너지 산업 △철강 · 금속산업 △정유 · 화학분야 △사회 간접 자본 분야에 우선적으로 진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에는 지방자치단체나 우익 단체들의 북한 내 활동도 활발해지고 있다.

중국, 지원 늘리고 정상회담 막후 추진

 미 · 일 공조와 미국의 북한 진출 강화로 인해 중국의 역할이 축소되는 것을 견제한다. 또한 북한 체제 붕괴를 막기 위해 최소한의 지원을 계속 유지하고 상황에 따른 역할 확대를 모색한다.

중국 · 북한 정상 회담: 올해 양국간 최대 현안은 강택민 · 김정일 정상회담 성사 여부다. 한 · 중 수교 이후 소원해진 양국 관계를 정상화하고, 미국의 본격 진출에 대비해 형평을 꾀하며, 중국의 북한 지원 확대를 위해서도 구체화할 가능성이 있다. 이미 양국 사이에는 96년에 이어 97년에도 이를 위한 실무 접촉이 진행된 바 있다.

대북 무상 지원 증대: 96년 이후 중국의 무상 지원은 공식 통계로 약 4천만 달러 수준에 이르고 있다. 또 중국 군부가 북한 군부에 비공식으로 지원하는 액수도 상당한 수준이다. 중국의 지원은 과거와 같은 대규모보다는 북한 체제 붕괴를 방지하는 최소 규모에 머무르고 있어, 북한측의 불만이 고조되어왔다. 따라서 올해 북측의 외교 공세가 더욱 강화될 경우 지난해 보다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중국 기업 북한 진출: 주로 나진 · 선봉 지대에 대한 진출이 지난해부터 크게 확대되었다. 식당 · 상점 · 관광 · 중계무역 등의 서비스업과 항만 · 수송 · 도로확장, 호텔 · 통신 분야에 대한 투자가 연변 지역에 기반을 둔 조선족 기업과 지방 정부 차원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홍콩 · 싱가포르 · 대만 등의 화교 자본이 중국 정부와 긴밀히 협조해 북한 진출을 강화하고 있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페트릭크레딧 사의 원정교 확장 공사를 비롯해, 타이슨 기업(시멘트 저장 시설), 페레그린사(합작은행), 아주개발 집단(카지노 아파트 면세점 분야), 신동북아 그룹(선봉 국제 공항 및 헬기 착륙장, 청량음료 생산)등이 그 사례다.

러시아, 다각 협력 모색. 자금 부족해 실행력 의문

 러시아 역시 북한에 접근할 방법을 활발하게 모색하고 있다. 96년 나진 · 선봉에 대한 8개 분야 협력 원칙을 담은 경제과학의정서가 양국 간에 체결되었고, 지난해 9월 미하일 라프신 러시아 농업당 대표가 평양을 방문해 농업 분야 지원을 협의했다. 또 10월에는‘북 · 러 경제 무역 및 과학기술 협조 위원회’ 제2차 회의가 모스크바에서 열렸다. 올해 역시 이 같은 각종 협력 회의가 확대될 가능성이 있으나, 자금 부족으로 인해 추진력이 약한 것이 문제다.

한국, 미국 손잡고 대북 경협 활성화해야

 주변국의 북한 진출 전략을 참고할 때 새 정부의 전략 과제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지난해 8월 이후 전개되고 있는‘미 · 일 공조를 통한 한반도 재편구도’를 다시 ‘한 · 미 공조 중심체제’로 환원해야 한다. 김대중 후보가 당선된 이 후 미국측 실무자들의 태도를 집중 분석해보면 그 가능성이 전혀 없지 않다. 미국 실무자들은 한 · 미 협조 관계만 복원된다면 미 · 북한 관계와 북 · 일 관계의 속도를 재조정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또 현재까지는 북한 문제에 대한 김대중 착 대통령의 입장을 최대한 배려하는 모습도 엿보인다. 카터 전 대통령 방북과 남북 정상회담 문제에서 이런 모습이 두드러지게 관찰된다. 즉 미국은 지난해 하반기까지만 해도 카터가 올해 1월20일께 북한을 방문해, 북측과 정상회담 문제를 협의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하순에는 카터의 방북과 정상회담 추진은 김대중 차기 대통령의 의중에 따르겠다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또 최근에는 당분간 경제 문제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한국측 입장과 북한측 사정을 고려해 전체적으로 일정을 연기할 수 있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미국측이 이 같은 입장을 갖는 것은, 미 · 일 공조보다는 한 · 미 공조를 통한 한반도 문제 해결이 미국의 국익에 더욱 바람직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 · 미 공조가 여의치 않았기 때문에 일본을 파트너로 설정하기는 했지만, 일본이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은 미국으로서도 부담스럽다. 또한 일본 내 신팽창주의를 대변하는 우익 세력들이 미국에 대한 보조역할을 거부하고 독자 진출을 주장하고 나올 경우 미국으로서도 감당하기 어렵다. 따라서 새 정부는 이 같은 미묘한 국제 역학 관계를 통찰해, 한 · 미 공조를 강화함으로써 주도권을 되찾아올 필요가 있다.

 두 번째로는, 남북 경협을 강화해야 한다. 한 · 미간 정책 공조만으로는 남북 관계의 전분야를 커버할 수 없다. 미국 기업의 경우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가 해제되기 전까지는 북한 진출에 한계가 있다. 즉 미국의 대북 진출은 당분간 정치 · 군사 · 인도적 분야에 국한 될 수밖에 없고, 경제 문제는 고스란히 남북한 몫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새 정부는 기업의 대북 진출을 더욱 활성화함으로써 한 · 미 공조 체제를 보완하고, 한반도 문제를 당사자가 해결하기 위한 주춧돌을 지금부터라도 차근차근 놓아야 할 것이다.   
 南文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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