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자, 웃짜, 웃짜짜’
  • 장영희 기자 (view@sisapress.com)
  • 승인 1998.04.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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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절망의 돌파구’ 의학 심리적으로 증명돼

타이타닉이 침몰해 차가운 대서양 바다에 빠진 상태에서 남자 주인공은 여자 주인공에서 이런 농담을 던진다. “화이트스타라인(선박회사)에 강력한 항의 편지를 보내고 말거야”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선, 절대 웃음이 나오지 않을 절망적인 상황에서 인간은 웃을 수 있는가?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 아닐까? 그렇지 않다. 미국의 경우 29년 대공황은 미국 역사상 가장 고통스런 시기였다. 그러나 이 때만큼 미국에서 웃음이 꽃핀 시기도 없었다. 유태인들도 웃음을 잃지 않는 태도로 나치의 압제를 이겨냈다. 그들이 ‘유머의 꽃은 슬픈 시대에 핀다’는 격언을 만들어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조난 · 표류 · 수감자의 생존 비결 ‘웃음’
  지금 한국은 타이타닉의 상황과 많이 닮아 있다. IMF 체제와 극심한 불황으로 인해 대량 실업과 공황 심리의 수렁에 빠져 침몰 직전에 있다. 지난해부터 늘기 시작한 유머 광고가 올해 들어 더욱 많아졌고, 코미디 프로그램이 상종가를 치며, 컴퓨터 통신 등에서 유머가 부쩍 증가한 현상은 이런 비관적인 현실을 이겨 보려는 몸부림이 아닐까 하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38~39쪽 기사 참조). 이민규 교수(아주대·심리학)는 “사람이 웃을 수 있다는 것은 어떤 상황과 거리감을 둘 수 있다는 얘기다. 인간이 위기에 처하거나 절망스러울수록 웃는 것은 상황을 객관화해 문제를 풀어보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이다”라며, 웃음이 현명한위기 대처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사람은 왜 웃는가. 어렵고 고통스러울 때일수록 왜 웃어야만 하는가. 웃음의 효능은 무엇일까. 동물 중 웃는 표정을 짓는 것은 인간뿐이다. 시력 없이 태어나 웃음을 한 번도 못본 아기라도 태어난 지 넉 달만 되면 웃는다. 그러나 사람은 성장하면서 점점 웃음을 잃어 간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여섯 달 된 아기는 하루에 평균 3백번 넘게 웃지만, 어른이 되면 겨우 14~17번 웃는다.

  사람들은 흔히 고통·분노·걱정·고민·위험·공포 같은 생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웃음을 몰아낸다고 생각한다. 물론 현실 세계에서는 기쁜 일보다 슬프고 고통스런 이이 더 많다. 그러나 고통스러운 때일수록 웃어야 한다. 평소의 웃음은 분위기를 좋게하는 정도지만, 절망 상태에서 웃는 웃음은 치료제이기 때문이다. 옛 소련의 대표적인 반체제 인사 나탄 아나톨리 샤란스키는 9년 동안 악명 높은 레포르토브 형무소에 갇혀 비밀 경찰의 처형 위협을 받으면서도 건강하게 살아 나왔다. 그는 자신을 공포에 떨게 하는 사형장의 모습을 농담 대상으로 삼아 혼자 웃음을 만들었다. 영국 랭카스터 대학 존 리치 교수는 94년 펴낸 <생존의 심리학>에서 인간의 극한 상황, 가령 포로·감옥 생활·표류·조난·질병 같음 무서운 위기를 겪었던 사람들이 어떻게 생존할 수 있었는지를 꼼꼼히 살폈다. 이 사람들의 생존 비결은 웃음이었다.

  일상 생활에서도 웃음의 위력은 크다. 심리학자 사무엘 자누스와 과학자 세이모어 피셔는 많은 코미디언의 생애를 연구한 뒤 이런 결론을 내렸다. 코미디언들이 남을 웃기게 된 것은 스스로 겪은 삶의 고통을 이겨내기 위한 수단이었다. 찰리 채플린은 빈민가에서 태어났는데, 그가 다섯 살 때 아버지가 술로 목숨을 잃었다. 이 때문에 어머니도 미쳐 버렸다. 채플린에게 웃음과 유머는 생존 수단이었다.

15초 웃으면 이틀 더 오래 산다
  미국의 위대한 대통령으로 추앙받는 에이브러햄 링컨도 마찬가지다. 그의 삶은 실패와 좌절의 연속이었다. 직장을 잃고 사업에 실패했으며 지방 의회, 하·상의원, 부통령 지명전 등 모든 선거에서 떨어졌다. 링컨이 “나는 울지 않기 위해 웃어야 한다. 밤낮으로 나를 짓누르는 두려운 고통 때문에, 내가 웃지 않았다면 나는 죽었을 것이다”라고 토로한 것은 웃음의 위력을 웅변한다.

  물론 웃음이나 유머가 문제 자체를 해결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웃는 동안에 적어도 그 문제를 해결할 힘을 찾게 된다. 사람이 어떤 문제에 대해 웃을 수 있을 때 우리는 그 문제에서 자신의 감정을 단절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나아가 웃음은 문제 밖에서 그 문제를 들여다보는 객관화를 가능하게 한다. 반면 눈물은 고통의 심각성에 초점을 두므로 더욱 사람을 고통과 하나로 묶는다.

  캐나다에 거주하며 <웃음의 건강학>이라는 책을 펴낸 저술가 김용운씨는 “인생이란 자신에게 일어나는 10%의 사건과 그것에 어떻게 반응하는가 하는 90%의 자세에 의해 이루어진다. 웃음은 우리에게 사물이나 대상을 보는 긍정적이고 건강한 관점을 갖게 한다”라며, 특히 지금 같은 엄혹한 시기에는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웃음은 사물을 거꾸로, 뒤집어서, 옆에서, 뒤로 보게 해 삶에 대한 시야를 넓게 해준다는 것이다.

  웃음은 이런 심리적 효능만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다. 웃음은 직접적으로 몸에 영향을 미친다. 웃음과 신체에 관한 관계를 말할 때 흔히 드는 예가 노만 커즌스의 경우이다. 미국의 유력 잡지 <토요리뷰> 편집장이었던 이 사람은 64년 희귀한 관절염인 강직성 척수염에 걸려 사실상 사망 선고를 받았으나 웃음으로 병을 고치는 기적을 이루어냈다. 커즌스가 한 일이란 단지 당시 가장 익살스런 영화로 소문난 <몰래 카메라>와 ,막스 브라더스>등을 보면서 배꼽을 잡고 웃는 것뿐이었다. 병마에서 벗어난 후 68년 커즌스씨는 <질병 해부>라는 책을 펴냈다.

  ‘우리들병원’ 이상호 원장(척추 교정 전문의·신경외과)은 국내에서 강직성 척추염에 걸린 환자를 상대로 웃음 요법을 처방하고 있는 거의 유일한 의사이다. 이원장은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웃음소리 클리닉 등에서 웃음을 처방하고 있고, 광대옷을 입고 환자들을 즐겁게 해주는 간호사 웃음 부대까지 조직되어 있으나, 한국에서는 아직 의료법에 웃음 요법이 공식 진료 과목으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웃음의 임상학적 연구로 잘 알려진 미국 캘리포니나 주 로마린다 의과대학 리버크 교수와 스탠리탠 교수는 96년 웃음같이 아주 흔한 것이 체내의 복잡한 면역 활동을 솜씨 있게 조저아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들의 논문은 전세계 의학계에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두 교수는 남자 60명에게 박장대소할 1시간짜리 비디오를 보여주면서 비디오를 보기 전과 볼 때 그리고 보고 난 뒤 혈액 속의 면역체 증감을 연구한 결과, 웃을 때 체내에서 병균을 막는 항체인 인터페론 감마 호르몬이 2백배나 늘어난 사실을 발견했다.

  40년 동안 웃음과 건강을 연구한 미국 스탠퍼드 의대 월리엄 프라이 교수의 연구 결과도 주목할 만하다. 프라이 교수는 <치료제로서의 웃음>이라는 책에서, 웃음의 생리적 효과에 대해△뇌하수체에서 엔돌핀이나 엔케팔린 같은 자연 진통제가 생성디게 하며△부신에서 통증과 신경통과 같은 염증을 낫게 하는 신비한 화학 물질이 나오며△혈액 순환과 혈압이 낮아지고△웃음이 스트레스와 분노를 줄이며 신체 모든 기관에 긴장을 누그러뜨린다고 보고 했다. 프라이 교수는 10초 동안 배꼽을 잡고 껄껄걸 웃으면 3분 동안 힘차게 노를 젖는 것과 같은 운동 효과가 있으며, 잘 웃지 않는 사람보다 웃는 사람이 오래 산다고 주장했다. 미국 인디애나 주 볼 메모리얼 병원은 건강 교육 책자에 ‘15초 웃으면 이틀 더오래 산다’고 적어 놓았다.

  웃음이 작업장의 능률을 올리고 공부를 잘하게 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96년 <유머와 치유력>이라는 책을 펴낸 케나다으 캐트리 펜윅 박사는 작업장을 조사한 결과 웃음이 스트레스 수준을 줄이고 의사 소통을 원활하게 하며 사기를 높여 준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사기를 15% 올리면 생산력은 40%나 늘었다. 미국 웨스트 체스 대학 연구진에 따르면, 유머 감각이 뛰어난 학생들은 공부도 잘했다.

“가짜 웃음도 진짜 웃음과 비슷한 효과”
많은 의사와 심리학자의 연구는 웃음의 효능을 충분히 증명한다. 세계 전역에서는 인도의 ‘웃음 클럽 인터내셔널’ 같은 단체가 벌이는 웃음운동도 일어나고 있다. 한국에서도 참새 · 최불암 · 빠떼루 · 만득이 시리즈 등 많은 유머가 나왔고, 지난해 말부터는 IMF 시리즈도 인기를 모으고 있다. 썰렁한 웃음도 있고 세태를 풍자한 냉소도 있다.

우리의 웃음이 대부분 내면에서 표출되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는 것이어서 그늘져 있다는 비판(사회학자 김성기씨)이 없지 않다. 하지만 웃을 일이 없는데 어떻게 웃느냐고 하는 사람들에게 가짜 웃음이라도 지으라고 강조하는 학자도 적지 않다. 패트릭 플래너갠 같은 학자들은 거짓 웃음도 진짜 웃음과 비슷한 화학적 반응을 체내에서 일으키며, 일부러라도 웃는 연습을 하면 진짜 웃음으로 바뀔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은 해마다 4월을 전국 유머 강조의 달로 제정해 웃음을 전염시키고 있다. 미국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 아니라 웃는 달이다. 본디 웃음이 많은 민족이었던 우리가 지금 잘 웃지 않는 것은 왜일까. 지금 같은 절망의 시대에는 웃어야 한다. 웃음은 절망을 무력화하는 왁친이자 유일한 독파구이다. 폭소 · 홍소 · 희소 · 대소 · 방소 · 미소하자. ‘웃자, 웃짜, 웃짜짜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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