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마른 지구 ‘물 전쟁’ 카운트다운
  • 허광준 기자 ()
  • 승인 1998.04.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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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뒤 인류 3분의 2, 기근 사태 맞아 … 국가간 ‘물꼬 싸움’ 발발할 위험

서태평양의 산호섬 마셜 제도의 중심지 마주로에 사는 타르키네 라빈은 요즘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다. 새벽 4시에 깨어나 누구보다도 일찍 하루를 시작하지만, 그가 종일 하는 일이라고는 그저 기다림뿐이다. 라빈이 목을 빼고 무작정 기다리는 것은 가족을 먹여 살릴 깨끗한 물이다. 새벽에 물통을 들고 나와 줄을 서면 오후 2~3시가 되어야 38ℓ짜리 물통 하나를 채울 수 있다.

최근 지독한 가뭄이 계속되는 이 섬 주민들은 먹을 물이 없어 고통을 겪고 있다. 거리에는 뽀얀 흙먼지만 일 뿐 섬 어디에서도 물 흔적을 발견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비가 온 것은 지난해 12월이다. 주민들은 에어컨에서 나오는 물을 받아 빨래를 하는 지경이고, 근력이 있는 사람은 모두 마른 땅을 파헤쳐 수맥을 찾는 일에 나서고 있다.

3만 명이 모여 사는 마주로는 그나마 사정이 좋은 편이다. 지하 저수지에서 제한적이나마 물을 계속 공급받고 있고, 일본에서 보내 준 소형 정수기가 도움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주민 1만2천명이 사는 에베예는 1주일에 서너 번씩 오는 식수선에 의존하고 있다. 배가 오는 날이면 주민들은 새벽부터 부두로 몰려가지만, 찰랑거리는 물통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한밤중이다. 기상관측소는 이 곳의 가뭄이 6월까지 계속될 것으로 본다.

인구 증가 · 환경오염으로 물 부족 심각
물은 지구에 존재하는 몇 안 되는 무한 자원으로 여겨져 왔다. 땅 위와 땅 속과 대기권 안에서 물은 무한히 순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구가 늘어나면서 사람이 쓰는 물의 양이 늘어난 데다, 산업화에 따른 환경오염으로 실제로 쓸 수 있는 물은 갈수록 줄고 있다. 가뜩이나 물이 부족한 터에 작년부터 지구 전체를 위협하고 있는 엘니뇨현상은 온갖 기상 이변을 불러일으키며 지구촌의 물 사정을 악화시키고 있다. 지난 3월 22일 세계 물의 날을 맞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물과 지속적인 개발에 관한 국제회의’에는 전 세계 84개 나라 관계 장관과 50여 개 비정부기구(NGO)가 참가해 물 위기를 논의하고 대처 방안을 찾았다.

물이 부족해 곧 위기가 닥쳐올 것이라는 예언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농사를 짓거나 공업용수로 쓰는 물은 물론이고, 먹을 물조차 머지않아 부족하게 되리라는 경고는 끊임없이 나왔다. 심지어 국가끼리 총칼을 들고 ‘물꼬 전쟁’을 벌이게 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계속 나오고 있다. 95년 국제 물 심포지엄에서 세계 물 정책연구소 샌드러 포스텔 소장은 20세기 국제 분쟁의 원인이 석유에 있었다면, 21세기의 원인은 물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도 올해 물의 날에 발표한 기념 메시지에서 “2000년대에는 물을 둘러싼 전쟁이 발생할 것이라는 예상이 있다”라고 주의를 환기했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역시 지난 3월 20일 연설에서 “물은 삶의 근원이지만, 갈등의 근원이 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이는 결코 지나친 전망이 아니다. 강과 호수 중에서 2백15개가 국경을 넘나드는 다국적 수자원이다. 이를 둘러싸고 마찰을 빚고 있는 곳도 많다. 이스라엘 · 시리아 · 요르단 · 팔레스타인 등이 얽혀 있는 중동의 요르단 강은 대표적인 수자원 분쟁 지역이다. 나일 강 하류의 이집트는 상류의 수단과 우간다가 댐을 건설해 물을 독차지하지 않을까 염려하여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유프라테스 강 상류에 댐을 건설한 터키도 시리아와 맞서고 있다.

아시아에서도 인도와 방글라데시가 갠지스 강을 놓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동안은 당사국 간의 협상과 국제기구의 중재를 통해 그럭저럭 평화를 유지해 왔지만, 누군가가 물을 석유 같은 자원으로 활용하기로 마음먹는 순간 전쟁이 쉽게 터질지도 모른다. 사실 물은 어느 나라든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자원이며,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잠재적 무기이기도 하다. 사람 몸에서 물이 차지하는 가치를 고려하면 당연한 판단이다(왼쪽 그림 참조).

지구 위에 존재하는 물은 13억㎦이다. 그 중 97%가 먹을 수 없는 바닷물이며, 민물은 3천5백만㎦로 추정된다. 민물의 70% 가까이는 빙산이나 빙하 같은 극지방의 얼음이고, 눈으로 볼 수 없는 지하수가 약 30%를 차지한다. 큰 강과 하천은 전체 민물의 0.006%에 지나지 않는다. 지구 위의 생물이 의존하는 물 자원의 99%는 지하수 형태로 존재하고, 호수나 강은 1%일 뿐이다. 일찍이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한 말대로 ‘땅 속에 매우 거대한 강이 흐르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반영해, 세계기상기구(WMO)는 올해 물의 날의 주제를 지하수로 정했다.

최선의 대책은 물 아껴 쓰기
많은 수자원 연구가들이 갈수록 지하수에 주목하는 것은 그것이 가진 독특한 자원적 가능성 때문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지층은 댐 같은 저수 시설 없이도 엄청난 물을 저장할 수 있다. 또 땅 위의 물ㅊ럼 날씨 변화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지도 않는다. 매우 안정된 수자원인 셈이다. 바레인 · 지부티 · 쿠웨이트 · 카타르 같은 나라에서는 강이나 호수 같은 지상 수자원이 전혀 없기 때문에 전적으로 지하수에 의존하고 있다. 카리브 해나 태평양의 섬나라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환경오염은 땅 속이라고 피해 가지는 않는다. 여러 화학물질과 중금속에 오염된 물은 땅 속으로 스며들어 지하수에 영향을 미친다. 환경학자들은 이 같은 상황을 ‘화학적 시한폭탄’이라고 부른다. 당장 문제가 보이지 않을 뿐이지 언젠가 폭발하고야 말 상황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보이지 않는 지층 밑을 흘러 다니는 지하수는 결코 냉장고에 넣어 둔 물처럼 언제든지 안전하고 손쉽게 꺼내 먹을 수 있는 자원이 아니다.

국제 사회가 물 문제에 함께 대처하기로 한 것은, 물은 제한적으로 공급되는 반면 수요는 어느 나라나 할 것 없이 급속히 늘고 있는 현실 때문이다. 인구가 늘어나는데 따른 당연한 결과인 것 같지만, 사정은 더 심각하다. 물 수요는 인구증가 속도의 두 배로 늘기 때문이다. 2000년께 아프리카 사람 1명이 얻을 수 있는 물의 양은 50년 전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아시아 사람이 쓸 수 있는 물의 양도 3분의 1로 줄었다. 아프리카와 중동 등 제3 세계를 중심으로 이미 3억 명 가량이 먹을 물이 모자라 고통을 겪는다. 이들을 포함해 약 12억 명이 깨끗한 물을 마시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오는 2050년이 되면 세계 인구의 3분의 2가 물 부족 사태를 맞게 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더러운 물로나마 죽음을 피하더라도 사정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는다. 콜레라 같은 치명적인 질병이 목마른 자의 생명을 노리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더러운 물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 질병으로 해마다 2천5백만 명이 목숨을 잃는다. 그 중 4백만은 어린이다.

지구촌의 물 문제를 악화시키는 것은 부의 집중 못지않게 위험한 물의 편중 현상이다. 전 세계 식수는 60%가 러시아 · 미국 · 중국 · 인도네시아 · 브라질 등 땅덩이가 넓은 10개 나라에 편중되어 있다. 물 소비량도 나라 별로 편차가 크다. 미국인 한 사람은 하루에 물 6백ℓ를 쓰는데 비해 아프리카 사람은 그 20분의 1인 30ℓ를 쓴다. 구미 사람이 따뜻한 물로 샤워를 즐기는 동안 아프리카 여성들은 물을 긷기 위해 하루에 평균 4시간씩 물동이를 이고 고달프게 걸어야 한다.

물이 있다고 다 젖줄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남미의 아마존 강은 세계 전체 강 담수량의 15%를 차지하는 거대한 강이지만, 열대 우림으로 우거진 강 유역에 접근하기가 어려워 실제로 이 강물을 젖줄로 이용하는 인구는 2천5백만 명 밖에 안 된다. 그러니 물이 있어도 걱정, 없어도 걱정인 것이다.

내로라하는 물 전문가도 결국 가까운 장래에 닥쳐올 물 부족 사태를 막는 최선의 방안은 아껴 쓰는 것 뿐이라고 결론 내린다. 이번 파리 회의에서도 여러 가지 프로그램과 대처 방안이 나왔지만, 그 핵심은 수자원을 보호하고 재활용하는 데 지구촌 주민들이 더 노력하자는 것이었다. 앞으로 흥청망청 소비하는 것을 가리켜 ‘물 쓰듯 한다’고 비유하는 표현은 수정되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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