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매파, 북한에 군축 압력
  • 남문희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1998.04.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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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 · 국방부 ‘한반도 안정=미국이익’판단, 북한 설득 나서

지난 3월초 한국을 방문한 돈 오버도퍼 전 <워싱턴 포스트>기자는 국내 주요 인사들과 광범위하게 만나 한국이 북한에 먼저 군축을 제안할 필요가 있다는 미국 정부의 입장을 전한 바 있다(<시사저널> 제440호 참조). 그런데 미국은 최근 북한측에도 다양한 경로를 통해 군축 회담에 임하라고 종용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서울의 한 외교소식통은‘한반도 군축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결정되었고 이미 행동에 들어갔다“라고 말했다.

 미국이 이처럼 갑작스럽게 남북한 군축을 화두로 꺼내기 시작한 배경은 무엇인가. 이 역시 미국에서 전개되었던 논쟁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시아 경제위기 이후 미국 내 논쟁은 군축 분야에서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즉 아시아 가국이 경제위기에 빠지자 자연발생적으로 군사비를 삭감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미국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군산복합체나 미국 군부는 이를 자신들의 손실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국무부 · 국방부등 안보정책담당자들은, 단기적으로는 손실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미국의 국방비용을 줄일 수 있으므로 이익이라고 주장한다. 즉 잘하면 지역안정과 군비축소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논리이다.

 아시아에 군축을 정착시키는 과정에서 한반도는 가장 중요한 시험대이다. 긴장 수위가 높은 한반도에서 군축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 아시아전체에 강력한 효과를 퍼뜨릴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경제위기 이후 명목상으로는 10%, 실질적으로는 20%가까이 국방비를 삭감했는데 이 기회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미국의 인식이다.

 미국은 또한 북한측에도 지금이야말로 북한이 군축을 단행할 절호의 기회라고 설득하고 있다고 한다. 즉‘한국은 국방비를 이미 삭감했고, 미국이 주한미군의 병력을 증강해 한반도 안보를 책임지고 있다. 만약 북한이 이 때를 놓쳐, 한국이 경제위기에서 벗어난 뒤 군비증강을 시작하면 북한은 더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미국은 주한미군의 병력증강에 대응해 북한이 △지난 3월12일부터 대대적인 군사훈련에 돌입했고 △22일에는 평양시내에서 군대가 시가행진을 하는 등 무력시위를 하고 잇는데 대해‘쓸데없는 정력낭비’라고 일축하고 있다. 한국에 증강된 미군은 한국의 안보 공백을 메우기 위한 것일 뿐 북한을 공격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북한 군부의 현명한 지휘관들’이 누구보다 잘 알 것이라는 지적이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군축압력은 최근 제네바에서 있었던 4자회담이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나면서 더욱 강화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미국 대표단 중 특히 군부 고위관계자들은 상당한 기대를 가지고 회담에 나갔다가, 북한측의 무성의한 태도를 보고 대단히 분개했는데, 지금 이들의 목소리가 미국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지금 매파가 비둘기파를 잡아먹으려하고 잇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태도 변화 안보이면 본때 보이겠다”
 매파들은‘6 · 25를 일으켜 미군을 5만명이나 죽게 한 것도 북한이고, 한반도를 끊임없이 불안정하게 만드는 것도 북한이다’‘지난해 미국은 PL480(잉여농산물 원조)자금으로 6천4백만달러나 지원했으니 이제는 북한이 태도변화를 보일때다’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태도가 변하지 않는다면, 이번에야말로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미국 군부의 강경한 입장은 기필코 북한측의 성의 있는 태도를 끌어내겠다는 분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군축방안과 관련해 미국측이 최근제시하고 있는 방안이 바로 남북한의 장거리 직사포부대를 휴전선으로부터 32~48km후방으로 이동 배치하는 것이다. 남북한이 이 같은 방안에 합의할 경우 미국은 중재자 및 감시자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입장이다. 또 러시아 미사일 부대에 미군 감시단이 파견되어 있는 것처럼 북한이 만약 북한군 부대에 미국측 중재요원을 받아들이기로 결단을 내릴 경우 북한의 대외 신용도가 매우 올라갈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럴 경우에 미국은 대규모 식량지원이나 경제 제재 완화 같은 선물을 줄 용의도 있다는 것이다.                                                                 
南文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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