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었던 언론에 발등 찍힐라
  • 이숙이 기자 (sookyiya@sisapress.com)
  • 승인 1998.04.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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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 북풍 파동후 ‘언론대책’절감… KBS사장 임명 때 방향 드러날 듯

당초 KBS 홍두표 · MBC 이득렬 · SBS 윤혁기 사장은유임이 확정적이었다. 정권이 바뀌면 으레 방송사 사장도 교체되던 관례를 깨고, 김대중 정부가 이들의 남은 임기를 보장하겠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 KBS홍두표 사장이 전격 경질되자 언론계가 그 배경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홍사장은 누구로부터도 사퇴 압력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홍사장 경질과 관련해 대선 당시 보도의 공정성을 문제 삼아 경고장을 보냈을 것이라는 추측과 함께, 앞으로는 더 적극적으로 언론에 대처하겠다는 김대중 정권의 달라진 언론관이 담겨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바야흐로 김대통령의 ‘언론정책’이 시작되었다는 얘기다.

“신문 비판한 < PD수첩 >바영은 의미 심장”
 때마침 방송을 탄 MBC <PD수첩>은 이런 관측에 더욱 힘을 실어 주고 있다.  <PD수첩>은 3월10일과 24일 두 번에 걸쳐 재벌 신문과 권언유착의 폐해를 강도 높게 비판했는데, MBC가 이 방송을 내보낸 것을 놓고 김대통령의 언론 길들이기 신호탄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김대통령측은 지금가지 언론을 어떻게 생각해왔고, 앞으로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김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늘상“민주주의 정부에서 언론 통제란 있을 수없다”라고 강조해 왔다. 언론 개혁도 시장 원리에 따라 자율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순리라는 입장이다. 야당시절 ‘언론은 권력자편’이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경험해 온 김대통령으로서는 굳이 무리하지 않더라도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언론이 친여 성향을 띨 것으로 낙관했다. 그 이면에는 자기가 정치를 잘하면 언론도 자기를 도와줄 것이라는 ‘순진한’판단이 있었다.

 이런 김대통령의 언론관을 과신한 탓인지 새 정부의 언론대책은 두 달이 넘도록 ‘무대책’이라고 할 정도로 미흡했다. 김영삼 정권시절의 이원종 · 오인환 라인처럼 강성 언론 사령탑도 없었고, 그렇다고 광화문팀이나 동숭동팀 같은 외곽 언론대책반도 없었다. 박지원 공보수석등 몇몇 인사가 몸으로 때우고 있는 정도다. 이렇다할 언론 대책이 없다보니 공보수석실의 업무도 뚜렷하게 내세울 만한 것이 없었다. 그날그날 국내외 언론 보도와 PC통신 · 인터넷에 올라온 여론 동향을 대통령에게 간략히 보고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현 정권의 서투른 언론정책은 북풍 사건을 거치면서 심각성을 드러냈다. 단적인 예로 청와대측은 북풍이 조기 종결되기를 바랐지만, 언론이 이를 따라 주지 않고 오히려 한건주의 식으로 보도해 정국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상태에 빠졌다.

 북풍 파동을 겪으면서 여권 내부에는 언론대책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급격히 확산되고 있다. 청와대 문희상 정무수석 · 박지원 공보수석, 국민회의 정동영 전대변인 · 정동채 문체공위 위원등이 그 필요성을 절감하는 그룹이다.

 이들은 MBC의  <PD수첩>처럼 언론이 스스로 앞장서서 언론 개혁의 물꼬를 터주기를 기대했다. 실제로 <PD수첩>이 주제로 삼은 ‘재벌언론’과 ‘권언유착’은 김대통령이 신문에 대해 가장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부분이었고, 이 방송이 나간 후 표적이 된 <ㅈ일보> · <ㅈ일보>등은 사주와 노조가 상당한 불쾌감을 표시하며 MBC가 새 정권에서 언론 개혁의 총대를 멘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에 대해 <PD수첩> 정길화 PD는 ‘음모론적 시각’이라고 일축했다. 매체 간의 건전한 상호비판이 필요하다는 순수한 문제 의식에서 출발했지 결코 정치권 입맛에 맞추려는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PD 역시 이 방송이 결과적으로 김대중 정부의 언론정책에 유리하게 활용될 수 있음을 완전히 부인하지는 않았다.

 김대중 정구너은 역대 정권이 번번이 고전했던 언론의 높은 벽을 어떻게 넘을 것인가. <서울신문>과 KBS에 새 사령탑이 임명되는 4월 이후면 DJ정부의 언론관이 점차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李叔伊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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