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청렴’이 국민 신뢰 첫걸음
  • 싱가포르ㆍ대만ㆍ 조용준 기자 ()
  • 승인 2006.05.08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해외취재/‘금권’ 몸살 앓는 대만...‘윗물’부터 맑은 싱가포르

 

 지난해 대만의 1인당 국민소득은 1만5백달러였다. 우리나라의 6천7백달러와 비교할 때 거의 두배에 가깝다. 그러한 대만에서 최근 한창 논쟁을 벌이고 있는 사안 중의 하나는 정부 고위 관리의 재산공개에 관한 것이다. 지난해 12월 처음으로 실시한 입법원(우리나라의 국회 해당함) 총선거에서 제1야당의 위치를 확실하게 굳힌 민주진보당 의원뿐만 아니라 집권 국민당 내에서도 고위 관리의 재산을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가고 있다.

 대만의 <自立晩報>는 2월 18일자에 다음과 같은 기사를 싣고 있다.

 “고위 관리들의 재산을 공개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사람들은 ‘한국에서도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 관료의 재산을 공개한다고 하는데 우리가 못할 이유가 어디 있느냐’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리엔잔(連戰) 차기 행정원장(우리나라의 총리)의 대답은 ‘공개는 하고 싶지만 먼저 제도적 장치부터 마련해야 한다. 한국의 경우 일종의 정치적 쇼 아니냐’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리덩후이(李登輝)총통이나 이제 곧 자리에서 물러날 하오바이춘(?柏村)행정원장의 입장도 같다.

 그러나 <自立晩報>는 다음과 같이 반박하고 있다. “쇼라고 해도 그것은 환영받는 쇼 아니냐!”

 

대만 고위직 부패, 하위직 확산 우려

 중국 본토에서 건너온 후 40여년 만에 처음으로 입법의원을 직선으로 선출한 대만에서나, 이제 ‘문민정보’가 출범하는 우리나라에서나 똑같이 고위 관료의 재산공개가 문제가 되는 것은 공교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나 대만이나 경제적으로는 ‘아시아의 용’에 올라 있지만 진정한 민주개혁 제도는 이제야 비로소 정비하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과 1,2위를 다투면서 외환보유고에서는 싱가포르를 앞서고 있는 대만은 이제 겨우 탕베이시의 지하철 공사를 시작했다. 도시 전체가 각종 공사로 파헤쳐져 있어서 80년대 초기 지하철 1호선을 건설하던 서울 종로를 연상케 한다. 게다가 빈번하게 터지는 총기 살인사건 등 어지러운 치안으로 뒤숭숭하다. 대만의 치안은 군대까지 동원할 정도로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현재 대만에는 중국 본토에서 밀수입한 각종 총기류와 대만에서 비밀리에 제작한 총기류가 상당수 퍼져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야간 검문 때 경찰들은 꼭 방탄복을 입어야 한다.

 대만 정부는 6개년 개발계획에 따라 타이베이 북단 질릉(基隆)시와 최남단 가오슝(高雄)시를 잇는 2차 고속도로를 건설중이다. 그러나 최근 고속도로의 제2구간 공사와 관련해 스캔들이 터졌고, 교통부장관이 옷을 벗었다.

 타이베이에 상주하는 국내 모기업의 지사장은 “대만에서 관료의 부정부패가 사라졌다는 것은 이미 옛말”이라고말한다. 정부가 발주하는 각종 입찰에서 입찰 전에 고위 관리를 만나 은밀히 봉투를 전하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지사장은 “입찰 때만 되면 고위 관료에게 줄을 대주겠다는 전화가 폭주한다”고 밝혔다. 리엔잔 차기 행정원장이 개인 소득세 서열 10위안에 들어갈 정도로 금권정치가 우리나라보다 더 만연돼 있기도 하다. 대만의 대한무역관 金弘志 관장은 “언론에 노출되지 않아서 그렇지 고위 관리들의 부패상은 훨씬 심각하다”고 말한다.

 반면 하위직 관료들은 과거 장징궈(藏經國) 총통 시절의 엄격한 규율을 그대로 지키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ㅅ그룹 대만지사의 ㅊ과장은 “지난 4년동안 살펴보니 경찰 소방서 세무서등 하위직 관리들이 손을 내미는 경우는 거의 없는 반면 고위직 관리들의 부정은 그 정도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민원업무를 처리하는 데에도 “우리나라처럼 공장 하나 세우려면 그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하위직 공무원을 일일이 대접하다가 기력이 다 빠지는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만의 국민당 정권이 정치개혁에 실패한다면 고위 관료의 부패상이 하위직에까지 물드는 것은 시간 문제일 수 있다.

 

싱가포르, 뇌물 받을 의도만 보여도 위법

 신흥공업국(NICS)구룹의 선두주자인 싱가포르에서는 우리나라나 대만에서 벌어지는 것과 같은 논쟁을 찾아볼 수 없다. 싱가포르에서는 1959년 리콴유(李光  )의 인민행동당(PAP)에 의한 ‘뉴 싱가포르’가 출범하면서부터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개혁장치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잡아갔다.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난 지금은 모든 제도가 완벽하게 자리를 잡았다.

 지난해 10월경 싱가포르의 부패사례수사국에서는 싱가포르의 유력 일간지인(스트레이트 타임스)주간과 기자1명, 중앙 은행 관리 1명과 증권회사 직원 등 4명을 수사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사건의 발단은 <스트레이트 타임스>가 싱가포르의 지난해 경제성장률을 정확하게 보도한 데서 비롯되었다. 싱가포르 경제발전국(EDB)은 지난해 국내총생산 기준 경제성장률을 5.5%로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4.7%에 그쳤고, <스트레이트 타임스>는 경제발전국이 공식 발표를 하기전에 경제성장률이 4.6~4.8%가 될 것이라고 미리 보도했다.

 싱가포르 부패사례수사국은 이를 그냥 넘기지 않았다. 수사국은 <스트레이트 타임스>가 어떻게 해서 이 문제를 정확하게 보도할 수 있었는지 그 경위를 비밀리에 추적하기 시작했다. 수사결과는 곧 밝혀졌다. 중앙 은행의 관리는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증권회사 직원에게 경제성장률을 귀띔했고, 그가 이를 <스트레이트 타임스> 기자에게 흘린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약간의 향응이 베풀어진 사실로 아울러 밝혀졌다. 싱가포르의 실정법에 따르면 이는 분명한 범죄행위였다. 중앙 은행의 관리는 구속되었다. 이는 물론 지난해 싱가포르 정부가 경제성장률을 놓고 예민해 있던 때에 벌어진 사건이기는 하다.

 1963년 2차로 개정된 싱가포르 부패방지 법에 따르면 모든 공무원은 뇌물을 받지 않았더라도 뇌물을 받을 의도를 드러냈거나, 그에 준하는 처신을 했을 때에는 범죄가 성립한다. 관료들이 감히 부정과 부조리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원천 봉쇄하고 있는 것이다.

 싱가포르의 모든 관청은 일반 민원업무 담당 부서를 제외하고는 민간인의 출입을 엄격히 제한한다. 적어도 보름 이전에 문서로써 방문 의사와 목적을 명확히 밝히고 해당 관청의 최고 관리자로부터 승낙사인이 나야만 관청을 방문해 공무원을 만날 수 있다. 약간의 안면만 있으면 언제라도 관청을 방문하고 공무원을 만날 수 있는 우리나라와는 전혀 사정이 다르다.

 싱가포르 정부가 이런 제도를 만든 것은 부패방지라는 ‘절대적’ 과제를 위한 것이다. 물론 관청이 아닌 외부에서 사람들을 만날수는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일정 수준 이상의 술이 제공되는 가무장이나 여자가 나오는 술집은 절대로 출입할 수 없다. 싱가포르에 처음 나가는 한국 무역회사의 현지 주재원들이 그들에게 차나 한잔 하자고 전화했다가 몇번씩이나 거절당한 끝에 그들로부터 오히려 차를 대접받는 것은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일이다.

 싱가포르의 모든 공무원은 자신의 생일이나 자식의 결혼 또는 부모의 회갑 등 집안의 주요 행사 상황을 관청에 문서로 신고하도록 돼 있다. 즉 누가 어떤 선물을 했고, 행사비용은 얼마가 들었는지 보고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고위 관료와 집권당의 정치인 들이 특급 호텔에서 초대형 행사를 갖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민원 현장에는 기습감찰이 실시되고 공무원들은 정기순환제에 따라 한 부서에 일정 기간 이상 근무할 수없다. 이 모든 것이 부정부패를 철저히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이다.

 이처럼 공무원에게 엄격한 규율을 의무화 하고 있는 반면 봉급은 대단히 높다. 싱가포르의대학 졸업자가 일반 회사에서 받는 초임은 약 1천5백 싱가포르달러, 우리나라 돈으로약 75만원 수준이다. 그러나 장관의 월 급여는 3만 싱가포르달러가 넘는다. 우리나라 돈으로 1천5백만원이라는 거액이다. 구질구질하게 판공비니 정보비니 하는 명세도 없다. 그냥 월급이다. 여기에다 벤츠 자가용과 골프장 회원권도 제공된다. 정부가 이렇게 높은 급여를 주는 것은, 이 돈이면 충분하니 다른 데에 신경쓰지 말고 국민에게 힘껏 봉사하라는 뜻이다.

 

정부 힘을 국민봉사에 선용한다.

 싱가포르에서는 껌을 팔지 않는다. 껌이 수입금지 품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제약이 논란거리가 되는 일은 없다. 싱가포르 국민들은 ‘숨막혀 질식할 듯하다’는 감정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이런 모든 제약 뒤에는 무엇보다 깨끗한 정부, 정직한 정부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껌을 씹지 못하면 총리도 껌을 씹지 못한다. 서로 똑같기 때문에 불평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국민에게만 일방적으로 금지와 자제를 강요하는 일은 없다. 고위 관료부터 ‘절제’를 실천하는 것이다.

 싱가포르국립대학의 존S.T 콰 교수(정치학)는 싱가포르의 가치이념을 △개인에 우선하는 공동체의식△사회를 구성하는 기초집단으로서 가족에 대한 끊임없는 지원△논쟁이 아니라 합의에 의한 주요문제 해결△민족적ㆍ종교적 화학과 융화△가난한 사람에 대한 연민△정직한 정부 등 여섯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콰 “교수는 15년 동안(66~81년)의회에 야당의원이 단 한명도 없었는데도 현 정부가 정직하게 남아 있고 그 힘을 남용하거나 악용하지 않은 것은 정말로 독특한 예“라면서 65년부터86년까지 집권한 필리핀의 마르코스와 비교했다. 그리고 지난 30여년 동안 인민행동당이 집권할 수 있었던 이유를 ”정직한 정부가 그 힘을 국민에게 서비스하는 데 선용했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리콴유 전 총리는 그가 총리로 있던 지난 85년 “왜 정부각료의 월급을 올려주어야 하는가”라는 국회연설에서 “레종 데트르‘(존재이유)라는 철학용어까지 동원하며 정부의 정직성을 강조했다. ”행정부는 근본적으로 부패 할 가능성에 노출돼 있다. 정부가 항상 가장 높은 품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지도력 자체가 엄밀한 조사를 받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것에 실패한다면 실존 이유, 존재 이유가 사라지는 것이다.... 나는 아마도 제3세계 국가의 총리 중에서 가장 많은 월급을 받으면서도 가장 가난한 사람일 것이다.“

 ‘가장 많은 월급을 받지만 가장 가난하다’는 그의 말은 그가 부패한 정치자금을 만들지 않았다는 사실을 뜻한다. 그의 이 말은 그후 많은 제3세계 국가의 정치지도자들이 즐겨 인용했지만 싱가포르와 키콘유씨의 경우처럼 엄격하게 적용된 예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오늘날 싱가포르 행정부의 중추를 이루는 공무원들은 거의 모두가 싱가포르 유일의 종합대학교인 싱가포르대학 출신이다. 이 나라에서는 국민학교 2학년만 되면 우열반을 나누고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치며 이 과정이 반복된다. 그렇게 해서 가장 우수한 인재들만 대학을 나오게 되고, 이들 대부분이 공무원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싱가포르 공무원을 세계에서 제일 잘 훈련된 공무원이라고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바로 이 사실 때문에 ‘소수 엘리트에 의한 사회’라는 비난이 쏟아지지만, 싱가포르 행정부는 공무원들에게 항상 국민을 위한 ‘봉사정신’을 강조함으로써 이 비난에서 벗어나고 있다.

 

정직한 정부 없이 사회 안정 없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면, 싱가포르에서는 개인이 토지를 소유할 수 없다. 몇몇 공장 부지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국가 소유이다. 아파트 또한 99년동안 만 개인 소유 이다. 이 기간이 지나면 다시 국가에 귀속된다. 토지와 아파트를 이용한 투기가 애초부터 생겨날 수가 없다. 아파트 값은 99년에서 과연 얼마나 남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아파트제도에 대해 공무원들이 얼마나 많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있다. 싱가포르 아파트의 대부분은 주택개발국(HDB)에서 지은 것인데, 모든 아파트단지마다 중국계 말레이시아계 인디언계 및 다른 인종이 섞여 살도록 그 비율이 정해져 있다. 중국인의 경우 한 아파트단지 안에 87%만이 살도록 배정받고, 바로 옆 아파트에도 84%만이 입주를 허가 받는다 나머지는 말레이, 인디언 등이 입주해 살도록 해서 민족적 갈등을 없애고 있다.

 60년과 89년에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중국인의 경우 말레이 친구가 57%에서 67%로, 인디언 친구가 42%에서 60%로 증가했다. 이는 아파트 정책으로 인종간의 갈등을 방지한 훌륭한 사례이다. 오늘날 싱가포르에서 차이나 타운과 아랍인 거리, 인디언 거리등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은 이 모두가 HDB 아파트 때문이다. 싱가포르의 이러한 민족 갈등 방지책은 우리나라의 지역 감정이나 지역 편차성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경제에서는 다같이 우리나라를 월등하게 앞서고 있는 싱가포르와 대만을 보면 새로 출범하는 김영삼 정부가 과연 어떤 점들을 받아들여야 할지 명확하다. 싱가포르와 대만은 다같이 ‘깨끗하고 정직한 정부 없이는 결코 사회 안정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아울러 리콴유나 장징궈 같이 솔선수범 하는 지도자 많이 나라를 부흥으로 이끌고 갈 수 있다는 사실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