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현 최고위원
  • 편집국 ()
  • 승인 2006.05.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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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김 두루 아는 마당발 정치인



 김상현 최고위원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그의 입지전적인 경력이다. 열다섯살에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그는 구두닦이, 창고지기, 사환을 거치면서 독학으로 공부를 마쳤다(고등학교 3학년 중퇴). 18세에 海公 申翼熙 선생을 만나면서부터 정치에 뜻을 둔 그는 19세에 당시 鄭一亨 박사가 회장으로 있던 대한웅변협회 부설 웅변학원에서 김대중 부원장을 만나 정치적으로 운명공동체 관계를 맺었다. 그는 63년 민주당 창당 발기인으로 정당에 처음 참여해 당시 金大中 선전부장(대변인) 밑에서 선전부 차장을 지냈다. 그가 한때 ‘동교동 황태자’로 불리며 김대중씨의 대리인 노릇을 했던 인연도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그는 29세이던 65년 서울 서대문구 보궐선거에서 서울시장 출신 임흥순씨를 가볍게 제치고 국회의사당에 처음으로 발을 디뎠다.

 국회의읜으로서의 그의 경력을 보면 6ㆍ7ㆍ8대 의원에서 갑자기 14대로 넘어간다. 이는 그가 반독재투쟁으로 5년여의 옥고와 73차례의 가택연금, 17년 동안의 정치활동 규제를 당했기 때문이다. 그는 6대 국회에서 <경향신문> 공매처분에 정부의 압력이 작용했다는 사실을 폭로한 것을 시발로, 4시간 30분에 걸친 박정희 정권의 대일청구권 자금반대 연설, 3선개헌 저지투쟁 등 반독재투쟁의 선봉에 나서게 된다. 그가 투옥ㆍ고문ㆍ연금으로 점철된 암흑기를 맞은 것은 72년 유신반대 투쟁에 나설 때부터였다. 88년 총선 전에 겨우 복권되어 13대 총선에 도전했지만 분패했고 다시 4년을 기다려서야 14대 국회에 입성할 수 있었다.

 그는 과거에 ‘동교동 황태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번 전당대회에서는 동교동 가신그룹의 반대편에 서 있다. 동교동쪽 시각으로는 ‘양김씨’를 모두 모셨던 그의 경력이 탐탁치 않았으리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그는 87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김대중씨의 평화민주당이 아닌 김영삼씨의 통일민주당에 남았으나, 90년 3당 합당을 반대하면서 김영삼씨와도 결별했다. 이러한 정치 경력은 그의 최대 약점이다.

 이런 경력 때문에 그가 듣는 말 중의 하나는 이기택 대표와 마찬가지로 ‘과연 김영삼 대통령에 맞설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그는 “나는 김영삼 대통령이 위기에 빠질 때마다 도와준 사람이다. 김대통령은 내게 약점이 있지만 나는 그에게 약점이 없다. 정부 여당에 약점 잡힌 사람이 야당 대표가 되어서는 안되다”고 주장한다.

 

“여당 돈 받아쓴다” 소문

 현재 그는 “정부 여당으로부터 돈을 받아 쓰고 있다”는 근거없는 소문에 시달리고 있다 그는 “민주당 최고위원으로서 대표가 되겠다는 내게 여야를 막론하고 그런 말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한마디로 일고의 가치도 없는 음해이다. 나는 현재의 김영삼 대통령과 비교해도 훨씬 도덕적 우월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정치적 야심이 많다”고 스스로 말한다. 이는 그가 민주당 대표에 당선된다면 할 일이 많다는 뜻이다. 그는 “최고위원 8명이 역할을 분담해 각자 통일ㆍ환경ㆍ중소기업 같은 절박한 사안에 전문가가 되도록 하고, 당 3역도 대표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자신의 소신대로 기자회견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역할 분담론’을 펼친다. 그의 이같은 주장은, 자기는 대권에 나서지 않고 오로지 후계 양성에만 힘쓰겠다는 ‘킹 메이커론’이나 ‘당내 덕치민주주의론’에서 연유한다.

 김최고위원이 이에 못지않게 강조하는 것은 ‘책임질 줄 아는 정치인’이다. 그의 주장으로는 국내 모든 정치인 가운데 維石 趙炳玉 박사만이 책임질 줄 안 유일한 정치인이었다. 따라서 그는 “다음 총선에서 원내 안정세력을 얻지 못하면 대표직에서 사퇴하겠다”는 공약을 미리 내걸었다.

 이제 막 출범한 김영삼 정부에 대해 그는 “김대통령은 마르코스가 될 수도, 막사이사이가 될 수도 있는 사람이다. 만약 그가 개혁에 힘쓰면 힘껏 도울 작정이지만 말한 바를 지키지 않는다면 치열한 반정부 투쟁을 벌이겠다”라고 강조한다. 그는 84년 5공시절에 김영삼 대통령과 함께 ‘민주화 추진협의회’를 만들어 공동대표 권한대행을 맡았었다. 이것이 그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경력이다. 그가 만약 대표에 선출된다면 거대 여당 민자당에 맞서 과거 민추협 시절의 야성을 어떻게 펼쳐나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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