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만담 아니다”
  • 박준웅 편집부장 ()
  • 승인 1992.04.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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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秉泰 강남갑 민자 낙선의원

 싸움에 진 장수는 할말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구차한 변명이나 ‘남의 탓’만 할 때의 얘기이다. 겸허하고 냉철하게 패인을 따지고 다음의 결전에 대비하는 자세는 누구에게나 꼭 필요하다. 바둑 뒤의 복기와 같은 이치일 수도 있다. 정치에서는 더욱 그렇다. 패자일수록 패착을 찾아내어 재기의 터전을 마련해야 한다.

 14대 총선에서 강남갑은 전국적으로 가장 관심을 모았던 선거구의 하나였다. 신정치 1번지로 불리는 이 지역의 선거결과는 이번 총선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함축하고 있다. 비록 초선이지만 경제기획원 차관보·외국어대 총장 등 관계와 학계에서 쌓은 관록에다 정계에 입문해서는 金泳三 민자당 대표의 측근 중 측근으로 3당통합의 막후 주역을 맡았던 □□□ 현역의원이 선거일을 불과 20여일 앞두고 뛰어든 金車□ 전 연세대 부총장의 지명도와 국민당 바람에 무너진 것이다. 5선 관록의 야당거물도 맥을 쓰지 못했다.

 오늘의 우리 정치현실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이 지역의 패자로부터 ‘할말’을 들어보는 것은 내일의 정치판도를 조망해본다는 점에서 뜻깊을 수 있다.

낙선은 하셨지만 소감이 없을 순 없겠지요? 패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부동표를 한표도 못가져온 것 같아요. 그 부동표가 완전히 김동길씨 쪽으로 가지 않았나 판단됩니다. 완전히 바람이 분 거죠. 바람이 왜 불었느냐. 저는 세가지로 봅니다. 하나는 제일 직접적인 것으로 바로 옆 선거구인 강남을의 안기부 흑색선전 사건, 그게 결정적인 것입니다. 두 번째는 솔직히 시인하지만 민자당에 대한 염증이 작용한 겁니다. 강남은 아시다시피 원래 야성지역 아닙니까. 세 번째는 김동길씨가 출마하기 전부터 텔레비전서 무슨 코미디 프로가 있었다고 합니다. 최동길이라고 해서 한달가량 ‘이게 뭡니까’ 하고 계속했지요. 이게 청소년에게 굉장히 흥미를 주었고, 또 가정주부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더구나 이 양반이 시간을 많이 안두고 3월 1일 하루아침에 등록해버리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바람이 일어난 것은 사실이죠. 이와 같은 세가지 바람이었는데, 그중 김동길 바람은 15일 이후 줄어들었지만 마지막에 안기부 등 악재바람이 부니 부동표로 남아 있던 20% 정도가 다 넘어간거지요. 사실 강남이 야성지역이고 그동안 바람선거가 이루어져왔지만 민주화가 한고비 지났으니 이제는 바람선거가 아닌 지성선거, 즉 정책과 사람을 보고 판단하는 식의 선거를 기대했지요. 그런데요 결국 강남이 바람정치에 앞장서고 말았다는 데 대해서 상당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강남갑은 학력과 소득수준이 높고 아파트밀집지역이고 해서 신정치 1번지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번에는 김동길씨에게로 여성표가 많이 몰렸다고 하던데, 그 원인은 어디 있다고 보십니까?
 지성적이 아니고 감성적으로 움직였다고 봅니다. 지성적이라면 그 사람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저울질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말재주나 웃기는 것 등에 확 넘어간 것 같습니다.

세 후보 모두 페어플레이를 했다고 생각하십니까?
 민주당측에서 나를 비방 모략하는 전단을 6만5천장이나 뿌렸습니다. 이것은 명백한 선거법 위반일 뿐아니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이기 때문에 금명간에 꼭 정식으로 고발하겠습니다. 그 정도로 지저분한 선거였습니다.

대학총장과 부총장을 지낸 대표적인 지성인 두분과 5선관록을 지닌 야달 거물이 대결해 전국적인 관심이 쏠렸었는데, 세 후보 사이의 쟁점은 무엇이었습니까?
 쟁점이 될 수 없었던 게 김동길씨는 선거를 하면서 그냥 지나가는 이야기나 만담이나 했지 교육문제 이외에 아무것도 건드린게 없어요. 예를 들면 대학정원을 대학에 맡겨서 모든 것을 대학자율에 맡기자, 이렇게 되면 공장의 3부 가동처럼 대학을 3부제로 운영할 수 있으니 밤 12시까지 개방하여 모든 학생을 대학에 다 집어넣자는 극단적인 자유방임적 교육정책 이외는 말한 것이 없었지요.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말도 안되는 소리지요. 그외에는 쟁점이 없었지요. 내놓은 것이 없었으니까요. 그다음 이중재씨는 계속해서 3당통합은 야합이었다는 이야기만 했지요. 정책가지고 쟁점이 되지 못했습니다.

당선자인 김동길씨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정치선배로서 부탁하고 싶은 점이나 충고가 있다면?
 정치를 코미디로 보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유세장에서도 문제를 제기했으나 본인이 답을 피했습니다만, 그가 깃발론을 내세울 때 큰 목표가 토지국유화였습니다. 토지국유화라는 것은 아시다시피 사유재산의 기본을 흐트리는 것입니다. 사회주의사상의 기본골자가 토지국유화 아닙니까. 그것은 토지공개념과 전혀 다른 것입니다. 토지공개념은 개인이 땅을 가지되 그 사용을 공공목적에 적합하도록 컨트롤하는 것이니까 이것은 자유시장경제·자본주의원칙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지만, 토지소유 자체를 국유화한다는 것은 완전히 자유경제의 기틀을 부인하는 사회주의 사고방식 아닙니까. 그런데 그분이 그런 말을 해놓고서 느닷없이 우리나라 최대 재벌의 계열회사나 마찬가지인 국민당에 들어갔습니다. 국민당은 극우보수 정당입니다. 그러면 본인이 과거에 토지국유화를 내세웠던 것하고 극우보수의 재벌당인 국민당에 들어간 것하고 양자간에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밝혀야 됩니다. 아직도 토지국유화를 주장하고 있는지, ‘나는 버렸다, 수정했다’라든지 해명이 없는 거지요. 그것을 물었더니 본인은 다른 이야기로 웃기고 농하고 할 뿐이지 문제의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국회의원이 되더라도 꼭 부탁하고 싶은 것은 정치란 코미디가 아니며 말 하나 행동 하나 국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세를 세 번 하니까 그 사람의 정체가 드러나기 시작했어요. 일종의 약장수라는 말이 쫙 돌기 시작했거든요. 제 생각에 유세를 두 번만 더 했더라면 그 사람 그대로 끝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평소에 황의원은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지 않습니까. 13대 때에도 여성표가 많았고….
 그 여성표가 감성적으로 확 돌아버린 겁니다. 또 한가지 이번 선거에서 가장 유감으로 생각하는 것은 우리나라 최대 재벌이 막강한 조직력과 자금을 일시에 투입했던 것입니다. 이른바 공명선거감시단이라고 해가지고 1천5백명을 투입했습니다. 마지막날 공명선거감시단의 어깨띠를 두르고 각 동에 서가지고 선거운동을 했습니다. 두 번째는 현대 조직을 통해 공갈 협박까지 한 정도입니다.(사례로 여성부장의 경우를 이야기함)

이번에 김동길씨와는 거의 2만표가량 차이가 났는데요. 4년 후에 다시 이지역에 도전하실 생각입니까?
 물론입니다. 김동길씨의 정체는 6개월 안에 밝혀지리라고 봅니다. 지역주민이 김동길이 누구냐 하는 것을 전혀 알 수 없었던 것입니다. 선거기간이 너무 짧았다는 것이 유감이죠.

3당합당 주역으로 널리 알려져 있고, 이번 선거에서도 그점을 부각시키려고 했는데 그것이 패인으로 작용했다고는 생각지 않으십니까?
 패인은 아니고 부정적으로 작용한 것 같습니다. 그것이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지만, 결정적인 패인은 역시 악재입니다.

그 악재가 전국으로 영향을 미쳤을까요?
 서울에서는 굉장히 컸습니다. 아직 정신 못차렸다는 거지요. 세상에 안기부직원이 그런 짓을 했으니 저라도 안찍습니다. 심지어 친구들을 만나면 “병태 너 아니면 민자당 꼴도 보기 싫다”고 이야기 할 정도였습니다.

3당합당의 당위성이나 필연성은 지금도 확신합니까?
 물론입니다. 왜냐하면 3당합당을 함으로써 민주화가 한고비 지난 것 아닙니까. 역사의 한단계를 밟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지금 다소 시끄럽더라도 민주화 문제는 말이 안나오는 것 아닙니까. 이제는 국가의 운영·경영·관리문제로 넘어온 것이지 지금 새삼스럽게 옛날처럼 민주화냐 아니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습니까?
 5월이 되면 대통령후보자가 결정될 것입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정권재창출이니까 그것을 위해 제가 해야 할 일을 챙겨보고, 이 지역에서 대통령표가 많이 나오도록 하는 일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것이 끝나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여러 가지 할 일이 있지 않겠습니까. 어떤 점에서는 국회의원 아닌 것이 이다음 정부에 보다 자유롭게 봉사할 수 있는 길이 되지 않나 봅니다.

다음 대통령은 역시 김영삼 대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연한 이야깁니다. 만일 연초에 전당대회를 열어 YS를 대통령 후보로 결정했다면 국민당은 안생겼을 겁니다. 당이 흔들리기 때문에 국민당이 생긴거 아닙니까. 그때 YS를 대권주자로 결정했다면 국민당이란 게 생길 수도 없고 이???게 어려운 선거를 치르지 않아도 됐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빠른 시일 내에 얼굴을 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로 모일 때만이 민심을 수습하지요. 현재 이 체제 하에서는 민심은 전부 이탈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이번 선거를 통해서 김대표의 위상이 약화됐고 책임론도 나오고 있습니다.
 과거의 내분 연장선에서 보면 그런데, 어떤 점에선 빨리 극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부산·경남을 제외하면 완전히 빵구난 것 아닙니까.

책임이 없다는 말인가요?
 이것은 현재 당에서의 책임문제가 아닙니다. 잘못하면 당이 붕괴 직전에 놓이게 되니 빨리 당을 세우는 차원에서 책임문제까지 포함에서 재정비해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당이 건전하 상태라면 사람에게 책임이 있지만 당이 흔들흔들하고 있지 않습니까. 내가 다녀보니까 이렇게 당이 인기가 없나 싶더군요. 여하튼간에 빨리 누가 간판스타가 되든 얼굴을 정해야 합니다.

YS의 후보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컨대 이번 선거에서 민주계는 크게 줄었고 민정계는 많이 늘어났으며 박태준 이종찬 노재봉 김복동씨 등 대안이 있거든요. 그래서 민정계가 세로 밀고 갈 경우 YS의 후보 가능성이 약화되는 것 아닙니까?
 있을 수 없는 얘깁니다. 왜냐하면 당이 지금 흔들리는 상태에서 빨리 조타수를 가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국가도 위기상황에는 헌법적인 절차도 무시하지 않습니까. 지금 계파가 어디 있습니까. 당이 살아나야 한다는 차원에서 문제를 바라봐야 할 것입니다.

한때 좌병태우병태라는 말이 있었듯이 YS에 밀착한 측근 참모역할을 했는데, YS 대통령만들기에 지금부터 발벗고 나설 계획입니까?
 대통령이 나라를 발전시키고 국민이 안심하고 믿을 수 있는 리더가 되기 위해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경제제도입니다. 지금까지의 경제는 어떤 점에서 독재정권 위에서 기생한 것입니다. 그것은 정경유착·특혜경제·정부간섭의 경제였습니다. 그러나 민주화된 사회에서 이것은 있을 수 없는 물거품같은 이야깁니다. 민주화가 된 상태에서 경제를 다시 재건하려면 제일 중요한 것이 정경유착을 끊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시장경제로 돌려야지 정부가 경제를 간섭하거나 컨트롤할수 없다고 봅니다. 경제정책 문제에 대해서 필요하면 다시 도와드리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민자당 총재인 노대통령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고, 이번 선거 결과로 여당이 위축돼서 권려의 누수현상이 앞당겨질것이라는 예측도 있는데, 이를 극복해 나갈 방안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누수든 탈수든간에 파이프가 끝나가니까 그런 현상이 나오는 것입니다. 빠른 시일 내에 그다음 사람하고 조인트를 시켜야 누수되지 않고 갈 수 있습니다. 5월 초에 후보가 결정되면 좋은 의미에서 대통령과 김대표 두분이 조인트 파이프를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만약 안그러면 누수가 아니라 탈수가 되어버립니다.

민주당 김대중 대표의 대통령후보 가능성이 한층 높아지고 있어서 다시 양김의 대결이 예상되는데 그럴 가능성과 결과에 대한 전망은?
 저는 평소의 지론으로서 양김체제를 안하면 우리나라 한 세대가 정리되지 않는다는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지역감정·민주화 등 여러문제에 대해 두 사람이 한번 링에 나와 국민이 보는 앞에서 깨끗한 선거를 치러줘야 여러 가지 문제가 정리된다고 봅니다. 또 그렇게 되면 문민정치도 착근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주영씨도 도전할까요?
 웃기는 이야깁니다. 출마해봐야 가능성이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제가 대담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우리나라 구조 하에서는 여소야대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국민성이 대통령을 하면 국회를 비워주고… 미국의 구조는 역사적으로 여소야대입니다. 그것이 전통이지만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여소야대하면 정치가 마비됩니다. 그런 점에서 제가 늘 내각책임제를 하자고 주장하는 것 아닙니까. 한 시대를 정리하고 문민정치의 착근을 위해 양김에 의한 대통령이 필요하겠지만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간에 마지막 대통령이 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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