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절반’이 의석은 1%
  • 서명숙 기자 ()
  • 승인 1991.07.11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성후보, 정당공천·자금·조직력 모두 불리…광역선거 63명 출마해 8명 당선

 지난 4월. 재야세력 일부를 영입해 재출범한 신민당이 광역의회 선거대책마련을 위해 서울 수유리 크리스찬 아카데미하우스에서 전국 지구당위원장 단합대회를 열었을 때의 일이다. 김대중 총재는 '의도적으로' 새로이 영입된 이?정 수석최고위원과 88년 재야입당파로 영입뤘던 박영? 부총재 사이에 앉아 눈길을 끌었다. 좌중에서 "이건 완전히 左영숙 右우정이구먼" 하는 농담이 오갔다. 김영삼 민자당 대표최고위원의 야당총재 시절, 측근 실력자였던 '좌東英 우◎◎'를 빗댄 농이었다. 실제로 참석자들은 여성정치인의 위력을 실감하는 표정이 었다.

 현재 우리나라 정당들은 여성이 유권자의절반이라는 점 , 여성의 사회적 발언권과 사회참여 폭이 점점 커지는 점을 고려해 여성에게 일정한 몫을 할애하고 있다. 이른바 전국구 의원과 당직이 그것이다. 그러나 직접선거의 영역에서는 아직도 엄청난 벽이 존재한다.

 지난 두 차례의 지방의회 선거에서 여성후보들은 그 벽을 실감했다 3월 기초의회의 경우, 총 4천2백77명을 뽑는데 여성후보1백24명이 도전했다. 여성계에서는 기초의회 선거에서 여성후보의 의석차지 비율을20% 정도로 예상하고 큰 기대를 걸었었다.

 '작은 정치의 장' '행정민주주의의 장'인 기초의회에서는 탁아소 ·부녀회 등 지역사회살림경험을 가진 여성들이 더 유리할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결과는 기대 이하였다. 40명의 여성의원이 탄생, 전체 의석의 0.9%를 차지하는 데 그쳤다.

 최근에 치러진 광역의회 선거 결과는 더초라했다. 총 8백66명의 의원을 뽑는 이 선거에는 63명의 여성후보(정당공천 39명,무소속 24명)가 나섰다. 당초부터'광역의회 특성을 감안하면 자금 · 조직력이 달리는 여성후보의 진출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뤘다. '이중의 불리함'을 안고 싸워야 하는무소속후보가 많은 점도 비관적인 요소였다. 그러나 서울지역의 경우 토뀨온 (43 · 민중당 · 은평을6 · 여성운동가) 촐교구 (53 -무소속 · 영둥포4 · 전 한국소비자보호협의회 총무) 요효구(47 ·무소속 ·도봉2 · 인간실현학부모연대 회장) 후◎◎(34 ·신민당 · 중랑갑3 · 박영숙 부총재 비서관)씨 등여성 ·환경 ·소비자 운동에 앞장서온 '유명' 후보들이 나선 만큼 의외의 선전도 기대뤘던 터였다. 그런데 결과는 민자당이 공천한 5명과 신민당이 전략지역으로 비워둔 광주와 전남 지역에서 무소속 여성 후보 3명이 당선되는 데 그치고 말았다 . 여성후보 당선율은 기초의회(32,7%)보다 훨씬 낮은12.5%에 불과했다.

 지난해부터 여성계에서는 '지방의회에 여성의원을 내보내자'는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돼왔다. 89년 여성개발원이 처음 실시한 '여성 점치지도자 훈련'에는 수강생 1백명 모집에 1백40명이 몰려 여성들의 지자제참여 열기를 예고한 바 있다. 그뒤에도 여러 여성단체가 앞다투어 연 지자제 교실에는 여성 수강생이 항상 넘쳐났다. 이런 열기에 유권자들의 의식변화와 여성후보들의 전문적 자질 향상 등으로 '여성의 지방의회대거진출'이 점쳐지기도 했다 .

 그럼에도 두 차례 '실전'에 예상보다 적게 참여한 여성후보들조차 참패하고 만 것이다.

 광역의회의 경우 정당공천을 의도적으로 받지 않고 시민후보로 나선 경우를 제외하면 여성후보들 상당수가 정당공천의 높은벽에 부딪혔다. 전국여성지도자협의회(회장 김송자)를 비롯, 여성단체들은 선거 전에 각 정당에 여성후보를 공천해달라는 '압력'과 '호소'를 한 바 있다.

 그러나 실제로 각당의 여성후보 공천비율은 3%를 넘지 않았다. 7백11명의 후보를낸 민자당이 11명, 5백64명의 후보를 낸 신민당이 17명의 여성후보를 지명했고 민주당이 5명, 민중당이 6명의 후보를 냈다. 공천비율 못지 않게 그 내용도 문제였다.

 11곳에 여성후보를 낸 민자당의 경우 '확실히 당선이 불가능한' 취약지구인 전주 갑4, 순천 2, 여천시 1, 광주북구 3지역 둥 4곳을 포함시켰다. 따지고 보면 공천지역은7개 지구에 불과했던 셈이다. 어렵게 내놓은 11명의 후보에는 '여성대표'로 보기는 힘든 가수 이선희씨까지 포함돼 있었다.

 공천자 발표 뒤 여성단체 대표 몇몇이 고위당직자를 찾아가 "나이 어린 대중가수를 공천해놓고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여성후보라고 하는가. 민자당의 여성후보관이 이 정도밖에 안되는가"라고 거세게 항의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러자 그 고위당직자는 "그럼 11명이라 생각하지 말고여성 10명에 가수 1명으로 받아들여달라"고 대답했다.

 신민당의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 17개지역에는 '확실히 당선이 안되는' 경남 산청 1, 경북 경주군 1, ◎산 사하 4, 대구수성2 둥 4곳이 포함뤘다. 물론 신민당은민자당의 여성후보 공천비율(1.5%)에 비해 2배(3%)의 '성의'를 보였다. 그러나 평소 진보적인 여성관을 가진 정당임을 자부하며, 선거법 협상에서 "지방의회 의원 정수의 4분의 1을 비례대표제로 하되 그 구성비는 남녀 50대 50으로 하자"는 소위 '여성비례대표 할당제'를 주장해온 신민당으로서는 인색한 비율이었다.

"20억 쓰는 후보 바라보며 허탈감"
각 정당이 여성후보 공천에 인색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향후 정국구도의 나침반이 될 중요한 선거에 당선전망이불투명한 여성후보를 내보내는 '모험'을 할수 없다는 당략적 판단 때문이다. 후보공천권을 쥔 지구당위원장들이 다음 총선에서자신의 선거를 도와줄 만한 자금과 조직력이 있는 남성후보를 선호한 것도 여성공천을 가로막은 요인으로 작용했다.

 여성후보들은 공천의 벽 외에 실제 선거전을 치르면서 자금과 조직의 열세라는 벽에 부딪혔다. 물론 여성후보라고 모두 돈와조 직이 달렸던 것은 아니다. 서울지역 ㄱ후보(민자당)의 경우는 사업가 출신의 재력가, 이 후보는 '20억을 뿌렸다'는 소문이 지역에 파다하게 나돌 정도로 막강한 재력을 과시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성후보들은 소속 정당과 관계없이 남성후보들에 비해 자금과 조직면에서 열세를 드러냈다. 이번 선거는 어떤 형태의 '바람'도 일어나지 않은 채 철저하게 돈과 조직이 위력을 발휘한 만큼, 여성후보들은 그만큼 불리한 선거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

 '참여와 자치를 위한 시민연대회의'치 ·민대표로 출마한 전풍자씨의 경우, oi단지의 여성 유권자들에게 여성후보 지J,.:,호소하던 중 "맨 입으로 이런 것만 돌리면 어떡하느냐"는 빈축을 사고 '막연히 짐작만하던 선거풍토의 현실'에 충격을 받았다. 한 여성후보는 "돈이 달려 선거법이 허용한흥보물 추가제작도 포기했다. 그런데 상대후보는 모든 유권자들에게 흥보물을 서너번씩 돌리고 막관에는 10만원짜리 봉투까지 공공연히 오가는 걸 보니 다리에 힘이 쭉빠지더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 그러나 몇몇 여성후보들은 자금력의 취약을 '깨꿋한 선거' 캠페인으로 적극 활용하는가 하면, 시민 · 여성운동 출신의 후보들은 출마를 적극권유해온 주위사람들로부터 작은 성금을 모아 선거비용에 보탬으로써 새로운 선거문화의 가능성을 열기도 했다.

 선거운동 주체를 엄격히 제한한 선거법은 사회 · 여성단체의 여성후보 지지움직임을 근본적으로 봉쇄했다. 결국 한국여성단체협의회는 "선거법이 까다로워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느 특정후보를 잘못 지지했다가는 오히려 해를 줄수도 있다"면서 "공명선거 전단을 배포하는쪽으로 여성후보를 돕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한YWCA연합회 한국여성유권자연맹둥도 공명선거캠페인과 선거고발 창구 운영둥의 '간접 지원' 방식에 머물렀다.

 70년대말부터 이들 여성단체와는 다른 흐름의 '진보적 여성운동'을 주도해온 소위 운동권 여성단체들도 그 한계는 마찬가지. 여성운동가 노영희 후보는 "실제 선거를 치르면서 그동안의 여성운동이 소수의 지식인 여성 사이에서 편협하게 머물렀음을 뼈저리게느꼈다"면서 "이번 선거는 여성운동계에 지역중심의 대중운동 둥 새로운 황동방식을 모색해야 한다는 과제를 던졌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정작 우려했던 여성후보에 대한편견은 예상보다 심하지 않았다는 게 후보들의 공통적인 경험담이다. 대부분의 여성후보들은 산업사회의 급속한 가치관 변화,남성 위주의 정치행태에 대한 불신, 상대적으로 덜 오염된 여성후보에 대한 호감, 여17성들이 지방의회 샅림에는 더 적합하다는 인식 때문에 과거 다른 선거에 비해 기존관념의 도전을 덜 받았던 편이라고 말한다.

 물론 서울의 일부 선거구에서는 "메니큐어를 바른 며느리를 찍겠는가‥‥ 듬직한 머슴을 찍겠는가" "이 지역에는 자존심도 어른도 없는가"라는 둥 여성후보를 겨냥한 유인물이 나돌기도 했다. 지역에 따라 다소 다르긴 하지만 여성후보의 진출을 적극 지지할 것으로 기대뤘던 20~30대 젊은 주부들이 오히려 냉담한 반응을 보임으로써 여성후보들을 당황케 했다. 그러나 오히려 50~60대 노인층조차 "이번엔 여성들이 나서야 한다"고 격려하기도 하는 둥 의식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상덕 후보는 "여성이라는 점이 유리한 조건도 아니었지만 감표요인도 아니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지방의회 선거는 값진 경험
여성계에서는 참패로 끝난 지방의회 선거결과를 여성의 정치진출을 위한 시작으로보고 있다. 즉 한줌의 소수가 참여했던 지난날 선거와는 달리 무려 1백85명이 기초 ·광역선거를 통해 값진 직접선거의 경험을축적했고, 금권 타락선거 속에서도 깨끗한여성후보의 이미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유권자들과의 직접 접촉을 통해 여성 유권자의 정치교육과 지역대중 활동의 필요성에 눈뜨게 된 것도 큰 수확으로꼽히고 있다.

 하지만 이런 값진 경험이 앞으로 여성의의회진출을 보장하는 건 아니다. 여성계에서는 비례대표제 또는 공천 할당제의 도입 ,철저한 선거 공영제의 도입 , 선거운동 제한규정의 완화, 금권 ·관권 개입선거의 원천방지없이는 여성후보의 진출이 근본적으로어렵다고 주장한다. 즉 이제까지 남성 위주의 정치판에서 상대적 불이익을 받아온 여성세력이 정치공간에 진출하려면 일정한 기간의 상대적 특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세상의 절반이라는 여성이 의석의 1%I못 차지한 것이 우리의 엄연한 정치현실이다. 그러나 그것을 단순히 여성들의 역량부족탓만으로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의 정치풍토도 그 책임의 절반은 져야 하는게 아닐까.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