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두 살 ‘슈퍼 스타’ 조성모의 힘
  • 성우제 기자 ()
  • 승인 1999.12.02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치밀한 마케팅 전략으로 인기몰이 … 애절한 발라드로 성인까지 사로잡아

■ 대중 음악

경기도 하남시의 미사리 통기타촌은 30~40대의 음악 공간으로 유명하다. 방송에서 듣기 힘든 자기 세대의 음악을 들으려고 그곳을 찾는 사람들, 특히 여성들에게 “요즘 가수 중에는 좋아하는 사람 없어요?”하고 물으면 열 가운데 아홉은 똑같은 대답을 한다. “조성모요!”

‘조성모 현상.’ 초근 대중 문화계에서 보이는 가수 조성모(22)의 행보는 일종의 ‘현상’이라 할 만하다. 작년 가을에 등장해 신인 가수로는 보기 드물게 데뷔 음반을 밀리언 셀로로 만들더니(발라드 장르의 신인 가수로서는 처음이다), 지난 9월 발표한 2집 음반은 1백90만장 판매를 기록했다.

조성모가 소속한 GM프로덕션(대표 김광수)은 “요즘도 하루 5천~7천 장씩 나간다. 이 추세대로라면 12월 7일께 2백만 장을 넘길 것이다”라고 밝혔다. 90년대 중반 댄스 음악 돌풍을 일으킨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이 후 처음 2백만 장을 돌파하는 데다, 댄스 장르에 비해 ‘순간 폭발력’이 떨어지는 발라드 음악이라는 특성, 지금도 불황에서 헤어ㅏ지 못한 음반 시장을 감안한다면 ‘현상’이라는 말이 그리 어색하지 않다.

CF 계약금으로 11월 16일 하루 7억원에 가까운 돈을 벌어들이고(두 달 사이에 12억원), 음반 발매 3개월이 지난 지금도 각종 음악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는 ‘조성모의 힘’은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사실 조성모의 1 · 2집 음반 내용 자체는 이만한 현상을 만들어낼 특별한 것을 담고 있지는 않다. 사랑과 이별의 슬픔을 가늘고 애절한 목소리에 담아 노래할 뿐이다. 게다가 조성모는 90년대 발라드의 대표자인 신승훈처럼 노래 실력이 뛰어나지도 않다. 높이 올라가는 부분에서는 힘이 달려 유려하다거나 시원하다는 느낌을 주지 못한다. 신승훈과 함께 90년대 발라드 음악을 주도해온 이승환처럼 작곡 · 프로듀싱 능력도 아직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얼굴 잘 생기고, 운동 · 연기도 잘해
이 같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조성모가 90년대 말 대중 음악계의 최강자로 떠오른 것은, 치밀하게 계산된 홍보 · 마케팅 정략과 한국의 특수한 음악 환경에서 말미암았다.

조성모라는 ‘대중문화 상품’의 마케팅 전략은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데뷔할 대부터 가동되었다. 우선 화제 만들기. 조성모의 첫 음반은 음악이나 목소리보다 뮤직 비디오로 먼저 알려졌다. 1집 음반을 발표할 때 기획사는 <투 헤븐>의 뮤직 비디오 제작 · 홍보에 승부를 걸었다.

데뷔 앨범 뮤직 비디오에 이병헌 허준호 조민수 김하늘 김승우 황수정 같은 스타 연기자가 대거 출연해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신이 가수의 뮤직 비디오에 등장한 스타 배우들은, 7분짜리 뮤직 비디오에서 애절한 내용의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더군다나 가수는 여기에 얼굴조차 비치지 않았다. 연기자들의 유명세에 목소리만 얹어놓은 것이다. ‘가수 얼굴 숨기기’는 대중에게 궁금증을 넘어 신비감까지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다음 음반 제작을 내세워 철저하게 몸을 숨겨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서태지가 만들어놓은 대중 음악계의 마케팅 문법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 셈이다.

음반 · 뮤직 비디오를 발표한 지 두 달 반 만에 조성모가 대중 앞에 얼굴을 드러냈을 때 대중의 반응은 ‘얼굴도 잘 생겼네’였다. 이후 조성모는 계산된 프로그램에 의해 자기를 하나씩하나씩 보여주었다.

다섯 살짜리 딸과 함께 조서모의 열렬한 팬이라고 밝힌 서울 창동에 사는 정 아무개씨(여 · 35)는 “조성모의 노래가 좋아서 듣고 있지만, 하나씩하나씩 차례대로 보여주는 조성모의 매력에 빨려들어 갔다”라고 말했다.

‘얼굴도 잘 생겼네’의 다음은, ‘운동도 잘하네’였다. 조성모는 KBS 2 텔레비전 <슈퍼TV 일요일은 즐거워>의 한 코너인 ‘출발 드림팀!’에 지난해 10월부터 출연해 오면서, 가늘고 연약한 가수 이미지와는 정반대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높이뛰기에서 여자국가대표도 이기는 운동 실력이 음아 시장의 가장 ‘큰 손’인 10대 팬들을 끌어들인 것으로 대중 음악계에는 보고 있다.

다음은 ‘연기도 잘 하네’이다. 조성모는 1집 두 번째 타이틀곡인 <불멸의 사랑>에 이어, 2집 타이틀곡 <슬픈 영혼식>에도 유명 배우들을 캐스팅해 드라마 형식의 뮤직 비디오를 제작했다. 1집 때와 달리, 조성모는 <슬픈 영혼식>에서 ‘가수’가 아닌 ‘연기자’로 데뷔했다. 신현준 최지우 정준호와 함께 슬프고 처절하게 연기한 것이다.

치밀한 마케팅 전략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조성모 기획사는 한국 대중에게 새롭지만, 달콤하고 감각적으로 다가가는 일본풍 이미지를 음반 재킷과 뮤직 비디오에 적극 도입했다. 2집 음반 재킷은, 올해 일본에서 7백만 장 판매 신기록을 수립한 우타다 히카루의 음반 재킷을 그대로 베꼈다. 조성모의 뮤직 비디오에 등장하는 감동적인 몇 장면은 일본 영화에서 따 온 것이다.

댄스 가수 지망생이던 그가 춤추지 않는 이유
조성모는 텔레비전 순위 프로그램에 좀처럼 나오지 않는 가술, 또 춤을 추지 않는 가수로도 유명하다. 올 가을 음반 판매량에서 H.O.T와 젝스키스를 가볍게 누르면서 부동의 1위를 지킨 그는, 11월 14일 새 앨범(내년 1월 <조성모 클래식>이라는 음반이 새로 나온다) 준비 작업에 들어갈 즈음에 이르러서야 순위 프로그램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이유는 한 가지이다. ‘2위의 초라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조성모는 원래 댄스 가수 지망생이었을 만큼 춤 실력이 뛰어나다. 그러나 그는 텔레비전에서는 춤을 추지 않는다. 콘서트에서 청중은 그의 매력을 또 하나 발견한다. ‘춤도 잘 추네.’

음반 기획사의 이 같이 노련한 마케팅 전략과 더불어, 스물두 살인 평범한 청년을 하루아침에 슈퍼스타로 만든 것은 한국 대중음악의 환경이다.

최근 몇 년 동안 대중음악은 10대의 성격을 더욱 강화해 가는 추세이다. 지금 한국 대중음악을 주도하는 장르는 테크노 · 힙합 · 하드코어. 성인들이 보기에 세 장르 모두 ‘시끄럽고 현란하고 따라 부르기가 불가능한 음악’이다.

조성모의 서정적인 발라드 음악은, 바로 그 성인대중을 사로잡았다. 발매 1주일 만에 승부를 보는 댄스 음악과 달리 발라드 음악은 소리 소문 없이 퍼져 나가고, 한번 불이 붙으면 지속적이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조성모의 1집이 2집 발표 직전까지 힘을 발휘하고, 2집도 3개월이 지나도록 꾸준히 정상을 고수하는 것은 발라드라는 장르의 특성에서 말미암는다. 댄스 음악과 달리 발라드는 두고두고 들을 소장용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성모의 애절한 발라드 음악은 지난해 김종환에게 열광했던 성인들을 음반 시장에 다시 불러들였다. 마케팅 전략으로 화제를 불러일으킨 데다가 대주음악에 등을 돌렸던 성인들까지 끌어들임으로써 ‘조성모 현상’을 만들어낸 것이다.

슈퍼스타 반열에 오른 조성모는 기획자의 이미지 만들기와, 성인층 소외라는 대중음악의 특수한 환경이 없었더라면 평범한 발라드 가수로 머무를 수도 있었다. 그에게 ‘발라드의 황제’라는 칭호는 아직 성급한 것인지도 모른다. 음악의 황제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통해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