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떠넘기기’ 경계하자
  • 김호균(중앙대학교 강사) ()
  • 승인 2006.05.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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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들어선 정부에 대하여 국민들이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그러나 새 정부의 경제개혁 방향이 단적으로 드러나면서 과연 변화를 바라는 이들의 기대가 얼마나 충족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신한국 창조??를 표방하는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정부가 동원할 것으로 보이는 정책수단이 ??구한국??의 그것과 같거나 오히려 후퇴한 측면마저 엿보이기 때문이다.

‘고통분담에 의한 신한국 창조??가 허구적 캠페인이 되지 않으려면 먼저 경제난에 임하는 정부의 목표가 단순한 경제 활성화인지 개혁을 통한 활성화인지 분명해야 한다. 정부가 경제 활성화를 위해 구태의연하게 일차적으로 고려하고 있는 임금인상 억제는 단기적으로 투자를 늘림으로써 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일방적 부담이 장기화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경제가 활성화하면 임금이 다시 오를 터이다. 노동자들은 당연히 보상심리에 기초해 임금을 인상하라고 요구할 것이 빤하다. 그러면 투자는 위축되고 경제는 다시 침체할 것이다. 결국 임금인상 억제에서 출발하는 경제활성화는 악순환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악순환은 우리나라를 다시 후진국으로 전락시킬 위험을 안고 있다.

임금억제는 고통의 ‘일방 부담??

임금억제는 정부의 주요 목표 가운데 하나인 국제경쟁력 향상에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임금인상이 가격상승을 가져온다면 그것은 임금이 가격에서 차지하는 비중만큼만 상승하는 것이므로 절대적으로 큰 것은 안다. 또한 임금억제로 국제경쟁력을 회복하려는 것은 후진국 시절에나 나오는 퇴행적 발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수출 구조를 개선하겠다는 전향적 목표를 설정했다면 선진국과 경쟁할 생각을 가져야 한다.

임금억제가 가져오는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기업의 채산성 개선이다. 물론 채산성 향상이 경제 활성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보장 은 없다. 자본가는 이윤을 생산적으로 재투자하지 않고 부동산 투기에 쓸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직 우리나라 재벌이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믿을 만한 근거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결국 임금억제는 경제 활성화를 위한 바람직한 도구가 아니다. 오히려 선진국 진입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다. 그런데도 임금억제를 통한 경제 활성화를 꾀한다면 그것은 국민의 공감대를 형성하기는커녕 냉소주의를 확산시킬 것이다.

고통의 일방 부담이 아니라 공동 분담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호황기에 가장 많은 혜택을 본 재벌들이 우선적으로 행동을 전환해야 한다. 그런데 이들은 지금까지 근시안적인 고통 떠넘기기에 안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지 자발적인 고통 분담 노력을 실천한 사례는 없다. 정부가 재벌에 대해 규제 정책을 펴야 할 필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 규제 정책의 핵심은 비생산적·투기적 부문으로부터 생산적 부문으로 자원을 재분배하고, 생산자가 주인의식을 가질 수 있는 실질적 조건을 갖추는 것이다.

재벌·지하경제 규제가 개혁 출발점

재벌의 부동산 투기 규제나 종업원 지주제 확대에 의한 경제력 집중 완화, 공동결정체 도입이 그러한 조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부의 정책은 재벌의 부동산 소유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려는 등 오히려 후퇴하는 모습마저 보이고 있다. 경제에 대한 정부 규제 완화라는 명분 아래 재벌에 대한 규제마저 완화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재벌에 못지 않게 시급한 개혁대상이 지하 경제이다. 지하 경제를 양성화하는 데 결정적인 무기가 될 수 있는 금융실명제 실시를 정부는 늦추고 있다. 정부가 우려하는 부작용이란 무엇인가. 자본의 해외도피가 대표적인 부작용일 것이다. 단기적으로 보면 그것은 부의 유출이므로 부작용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기생적인 지하 경제가 사라지면 이 부문으로 흘러들어가던 가치 부분도 사라지므로 생산에 이용할 수 있는 가치가 더욱 커진다는 점을 지나쳐서는 안된다. 지하 경제를 규제하면 장기적으로 생산 자본의 증대, 따라서 부의 증대를 가져올 수 있다. 결국 정부가 말하는 부작용의 내용이란 한편에서는 일부 기득권층의 이익을 잠식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경제정의 실현 및 국민경제에 순기능을 하는 것이다.

신한국 창조를 위한 고통분담이 단순한 수사학이 되지 않으려면 누구보다 ‘구한국??에서 기득권을 누렸던 집단의 고통 분담 노력이 우선해야 한다. 따라서 재벌과 지하 경제에 대한 규제가 개혁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사람이 바뀌어도 정책이 바뀌지 않으면 ??신한국??은 창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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