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잘하면 뭐해” … 핵사고 터질까 안절부절
  • 워싱턴 변창섭 편집위원 ()
  • 승인 1999.1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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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차원 Y2k 대비 철저 … 러시아 등 ‘문제 국가’ 동향에 촉각

 ‘1999년 12월31일 자정이 지나 새해로 진입하는 바로 그 시각. 태평양 마셜 군도에서 발진한 미국 해군 전투기 조종사가 컴퓨터 작동이 잘못되어 추락한다. 똑같은 시각 뉴욕이 타임스 스퀘어. 시계 바늘이 새해의 시작이자 새 천년을 알리는 1일을 가리키는 순간, 대낮처럼 환하게 광장을 밝히던 전광판이 갑자기 꺼지며 거리가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최근 미국 NBC 방송이 Y2k 문제의 심각성을 경고하기 위해 방영한 영화에 나오는 충격적인 장면들이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일찌감치 Y2k 대비책을 세워놓은 미국이 서기 2000년 밀레니엄을 코앞에 두고 안절부절하지 못하고 있다. Y2k를 해결하기 위해 대통령 산하 ‘2000년 자문위원회’가 지금까지 모두 76억 달러를 투입했지만, 방금 소개한 가상의 일들이 당장 내년 1월1일을 기해 현실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50개 주 전역이 벌써부터 비상 체제에 들어가 있는데도 지난 10월 중순께 Y2k로 인한 컴퓨터 오작동이 메인 주에서 현실로 나타나 관계자들을 아연 긴장하게 만들었다. 메인 주 정무장관실 컴퓨터가 2000년도 신형 승용차와 트레일러를 1916년에 만든 구식 자동차로 잘못 분류한 것이다. 당시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정무장관실 컴퓨터가 2000년을 1900년으로 잘못 인식해 승용차 8백대, 견인 트레일러 1천2백대 등 2천여대이 차량등록증에 ‘구식 자동차’라고 표시했다.

병원 · 학교 · 중소기업 대비책 미흡
 이미 지난해 말부터 Y2k의 심각성을 경고해온 클린턴 대통령은 최근 연방정부의 대비 태세에 일단 만족을 표시했지만 여전히 문제가 남아 있다. 실제로 2000년 자문위원회가 최근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긴급 전화 서비스인 ‘911 업무센터’의 경우 전국적으로 2천개 가운데 10월1일 현재 절반 정도가, 그리고 의료 기관의 경우 40%만이 Y2k 대비책을 마련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각급 학교의 3분의 1이 아직 적절한 대비책을 마련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으며, 중소기업 약 80만개가 Y2k 대비에 취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주목할 것은 미국 전역에서 가동되는 상업용 원자력발전소 1백3개이다. 미국 의회 산하 회계감사원(GAO)은 올 연말부터 내년 초까지 Y2k에 따른 재앙을 막기 위해 새해 첫날부터 종합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런 경고가 나오기 무섭게 미국 핵에너지연구소(NEI)는 지난 2년간 모든 핵발전소를 대상으로 Y2k와 관련한 컴퓨터 오류를 20만 건 넘게 시험했으며, 그 가운데 문제가 드러난 5%를 보완했다고 밝혔다. 말하자면 적어도 핵 발전소 만큼은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것이다.

 세계 금융의 핵심인 월 스트리트 주식 시작은 어떤가. 최근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 따르면, 가장 큰 위험은 Y2k를 염려한 투자자들이 주식을 대량으로 내다 파는 바람에 주식갋이 폭락할 가능성이라고 한다. 이 신문은 Y2k 자체로 인해 주식 시장이 혼란에 빠질 가능성은 적지만 문제는 투자자들의 불안 심리라고 지적하고, 특히 지금부터 내년 1월1일 사이에 위험도가 높은 주식과 채권이 대거 매물로 나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월 스트리트 주식값 폭락 가능성
 물론 미국이 신경 쓸 곳은 미국 자체만이 아니다. 냉전이 끝난 뒤 세계 유일의 슈퍼 강대국인 미국은 남의 나라에서 벌어지는 'Y2k 재앙‘에 나몰라라 할 수 없는 처지다. 그 가운데 가장 심각한 관심사는 역시 우발적인 핵사고다. 핵무기의 경우 조기 경보 및 자동 통신 시스템에 내장된 날짜 관련 칩이 작동되지 않아 뜻하지 않은 사고를 일으킬 수 있다. 미국 정부는 최근 러시아 정부와 핵탄두 미사일 오발을 막기 위한 특별 통제소를 콜로라도 주 피터슨 공군 기지에 설치하기로 합의했다. 중앙정보국(CIA)은 러시아·우크라이나·중국·인도·인도네시아·이집트가 Y2k 대응을 소홀히 해 재앙을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러시아로부터 천연 가스를 공급받는 동유럽 국가와 이탈리아가 취약하며,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는 철도·항만·보건·중소기업 분야에서 일시마비 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아무튼 미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정부 차원의 Y2k 대비가 철저한 것 같다. 백악관 예산실이 지난 9월 중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정부기관의 경우 97%가 이미 Y2k 대비를 끝냈다고 한다. 특히 핵무기 수천개를 관리하는 국방부는 지난 7월 산하 22개소 44개 컴퓨터망 종사자 천여 명에게 Y2k 교육을 강도 높게 실시했는데, 여기에 든 예산이 무려 36억5천만 달러에 달했다.

 그러나 아무리 준비가 철저해도 올 연말까지는 어디까지나 가상 상황에 불과하다. Y2k 전문가들은 휴일인 내년 1일과 2일을 지나 컴퓨터가 본격 업무를 시작하는 월요일(3일)에야 비로소 미국 전역이 ‘Y2k 태풍권’에서 벗어났는지 여부를 가늠할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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