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표범당은 어떻게 와해됐나
  • 노순동 기자 (soon@sisapress.com)
  • 승인 1999.1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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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작<모든 권력을 민중에게>/흑인 인권단체 흥망사 추적

다큐멘터리 <모든 권력을 민중에게>는 60년대까지 횡행한 빨갱이 사냥 실태와, 흑인 인권운동 역사를 일별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60년대 대표적인 흑인 인권운동 단체 흑표범당(66~82년)의 흥망사라고 할 만하다. 가입자를 흑인으로 제한하고 무장 자위권을 주장하는 등 사회주의 사상에 기반을 두었던 흑표범당은,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 에드거 후버가 ‘미국의 안전을 위협하는 대표적인 단체’라고 지목하리만큼 흑인으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이 단체는 ‘흑표범 21 사건’으로 명명된 대량 검거 사태 이후 몰락했다. 2년 뒤 구속된 지도부가 대부분 무혐의로 풀려났지만, 곧 내분에 휩싸였던 것이다. 하지만 흑표범당이 제시한 주거·의료 관련 자활 프로그램은, 이후 미국의 사회 복지 제도를 다듬는 데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흑표범당이 와해된 과정을 추적하면서 정부가 얼마나 집요하게 방해 공작을 폈는지 예증해낸 이 작품은, 인권운동가 무미아 아부 자말 사건을 이해하는 실마리를 제공한다(다큐멘터리를 만든 리류리 감독도 한때 흑표범당에 몸담았던 활동가다). 흑표범당의 일원이자 라디오 저널리스트로 일했던 무미아는 81년 경찰관 살해 현장에 있다가 살인 혐의로 구속되어 18년째 수감되어 있다. 12월2일 사형이 집행될 예정이었으나, 연방법원에 신청한 구속 적부 심사가 최근 받아들여져 가까스로 보류되었다.

 무려 18년 동안 재판이 진행되고 있지만 구명 운동은 최근 들어오히려 활기를 띠고 있다. 그에게 유리한 증언이 속속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건의 진행 추이는, 인터넷 공간을 꼼꼼히 중계되고 있다. ‘거부와 저항’이라는 예술가 네트워크는 ‘무미아 911-사형 중지를 위한 예술의 날’ 행사를 마련하기도 했다.

 유명한 미국의 좌파 정론지 <Z 매거진>(http:www.zmag.org)은, 아예 무미아 페이지를 따로 만들어 놓았다. 그곳의 정보에 따르면, 증인 백여명 가운데 무미아의 살인 장면을 증언한 이는 2명에 불과하고, 그 가운데 1명은 강압과 회유에 따른 허위 증언이었다고 고백했으나 재판부에 묵살 당했다. 피살자의 몸에서는 44구경 총탄이 발견되었으나 무미아가 갖고 있는 총은 38구경이었으며, 다른 사람이 총을 쏘고 달아났다는 목격자의 진술이 무시되었다는 주장도 많다. 담당 판사는, 그가 사형 선고를 내린 32명 가운데 30명이 유색 인종이었음이 밝혀져 평소의 성향을 의심 받고 있다.

 무미아는 수감 중에도 잡지 기고와 인터뷰를 통해 인종 차별 실상을 환기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전체 인구의 6%에 불과한 흑인 남성이, 전체 형기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것이 신기하지 않은가. 다른 죄수와 마찬가지로 사형 대기 행렬도 점점 더 검어지고 있다.’(문화 월간지<더소스> 기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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