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와의 전쟁 예산 ‘엉뚱’
  • 박중환 정치부차장 ()
  • 승인 1991.0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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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치안보다 시국사찰에 역점 둔 편성…‘전쟁 계속 선언’ 공포탄에 그칠 듯

 “범죄의 뿌리가 뽑힐 때까지 새해에도 계속하겠다”는 ‘전쟁 계속 선언’은 아무래도 공포탄에 그칠 듯하다. 이런 지적은 새해 경찰 예산을 분석해보면 더욱 자명해진다.

 “예산은 정부의 정책의지를 국민의 돈으로 구체화시킨 것”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새해 경찰에 관한 정책의지는 민생치안보다는 대공?정보 등 시국사찰에 더 역점을 두고 있음이 드러난다.

 지난 연말 국회에서 의결된 새해 예산 중 경찰의 수사?정보?대공 등 3개 부문 예산액은 모두 7백61억3천5백만원이었다. 이는 추경을 포함한 지난해 총예산 6백53억7천9백만원보다 16.5% 늘어난 액수이다(이하 지난해 예산은 추경 포함).

 이를 부문별로 보면 수사활동 예산이 지난해보다 13.4% 증가한 3백89억1천9백만원, 정보예산은 21.1%가 는 1백28억4천5백만원, 대공예산은 19.2% 많은 2백43억7천1백만원으로 각각 집계됐다. 이같은 증가율의 차이만 봐도 범죄와 전쟁을 치를 수사예산이 정보?대공 예산의 뒷전으로 밀렸음을 알 수 있다.

 

이기겠다는 의지 있는지 의문

 그런데도 경찰은 민생치안에 예산을 대폭 지원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근거로 치안본부 예산 배정을 제시한다.

 치안본부의 수사?정보?대공예산은 각각 1백49억8천1백만원?14억2천4백만원?53억3천1백만원으로, 90년 대비 증감률은 수사활동 예산이 20.5% 줄었으며 정보?대공예산은 각각 72.7%와 48.8%가 감소했다.

 이같은 치안본부 예산을 보면 경찰이 정보?대공에 비해 수사활동에 더 많은 지원을 해 민생치안을 안정시키려 한다는 의지를 읽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일선에서 치안을 맡고 있는 시?도 경찰국의 예산배정을 보면 ‘전쟁’을 벌여놓고 이겨야겠다는 의지가 과연 있는지 의아스럽다. 13개 시?도경의 총 수사예산은 2백39억3천8백만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54.5% 늘어난 반면 정보예산은 1백14억2천1백만원으로 무려 1백12%가, 대공예산은 1백90억4천만원으로 90%가 각각 증가했다.

 민주당 金正吉 의원은 “시국사찰에 치중된 경찰예산은 곧 있을 지방자치제 선거에서의 경찰 동원, 노동운동 탄압,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에 따른 농민들의 시위 진압 등에 적극 나서려는 정부의 의도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대도시 경찰 정보예산 두배로 증가

 시?도경별로 예산내용을 살펴보면 정보?대공부문의 예산 편중이 그 지역의 시국 동향과 관계있음을 시사해 흥미롭다. 서울?부산?대구시경의 경우 수사예산은 지난해에 비해 54.8%~65% 증가한 반면 정보예산은 1백13.6%~1백23.5%나 증가했다.

 인천시경과 경기도경의 경우 수사예산은 각각 97.5%와 82.7% 늘어났다. 이에 비해 정보예산은 1백36.8%와 1백30.2%, 대공예산은 1백21.3%와 1백36.5%로 크게 증가했다.

 서울 부산 대구 등의 대도시에서는 잇따른 선거를 앞두고 정보활동이 대폭 강화될 것으로 보이며, 노동운동이 활발한 인천 경기 지역에서는 일반 정보는 물론 대공정보활동도 강화될 것같다.

 호남지역의 경우, 농민운동이 활발한 농촌을 낀 전북도경 예산은 수사(32.8% 증가?이하 괄호안 수치는 증가율)에 비해 정보와 대공 부문이 각각 85.9%와 1백1.8%로 강화된 반면, 80년대 ‘시위의 도시’ 광주를 끼고 있는 전남도경은 수사(44.8%)와 대공(73.9%)에 비해 정보예산(1백7.4%)이 높게 반영됐다.

 지난해 핵폐기물처리시설로 폭력시위가 있었던 안면도를 관내에 두고 있는 충남도경의 경우는 수사(68.1%)에 비해 정보(1백33.6%)와 대공(1백12.1%) 부문의 예산이 2배 안팎의 증가율을 보여, 그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게 한다.

 민자당내 민주?공화 두 계보 의원들의 출신지역이 집중된 충북?경남의 경우 수사(31.5%?32.3%)와 정보(81.4%?92.8%) 부문에서 평균치를 지켰으나 대공예산만은 각각 1백3.5%와 1백21.9%로 높은 증가율을 나타냈다.

 이밖에 시국과 관련한 집단 시위나 노동운동이 덜한 강원?경북?제주도의 경우 3개 부문의 예산 증가율이 모두 1백% 미만을 지켰다.(표 참조)

 

“국회내 예산분석 전문기구 설립 시급”

 치안본부의 한 관계자는 “치안본부의 정보?대공활동이 시?도경으로 대폭 이관돼 예산도 그만큼 이관될 수밖에 없었다. 예산편중이 있었다면 그 때문에 생긴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각 부문별 예산은 수뇌부가 아니면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지난 정기국회 때 여야 의원들은 ‘범죄와의 전쟁’에 대한 입씨름을 벌였으나 경찰예산 편성상의 이러한 문제점에 관해서는 별다른 지적 없이 넘어갔다.

 치안 안정을 위해 범죄인의 검거 못지않게 중요시되고 있는 재소자에 대한 교도행정 역시그 예산편성에서 난맥상을 여실히 드러낸다. 새해 교도행정 예산은 총 1천8백14억원으로, 지난해보다 23.1%가 늘어났다.

 이 가운데 관서 운영비(48.4%), 교도소 사업비(40.8%) 등 경직성 경비는 전체 증가율에 비해 2배 수준으로 높아졌다. 그러나 재소자를 건전한 사회인으로 내보낼 수 있도록 돕는 재소자 수용사업비는 15% 증액에 그쳤다.

 또 최근 급증하고 있는 범행청소년을 교정시키는 원생교과과정 교육비와 직업훈련비는 15.9%와 5.7%씩 늘어나는 데 그쳤으며 원생의 보건위생비 등의 수용관리 예산은 4.5% 줄었다.

 새해의 경찰?교도행정 예산이 이 정도로나마 집계?분석된 것도 김정길 의원 그리고 그가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정책연구실의 한 젊은 연구원 김용문씨의 한달여에 걸친 조사?노력의 결과이다.

 김연구원은 “방만한 예산자료를 개개 의원 차원에서 분석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어려움을 털어놓으며 “국회내에 예산 전반을 분석하는 전문기구를 설립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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