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왕국의 ‘파리목숨’ 노동자
  • 안강 김방희 기자 ()
  • 승인 1991.0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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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근무 5명중 1명이 죽거나 다쳐…보상금 등 손실액 지난 10년간 8조원

 “지난 11월15일 (주)풍산 안강공장에서는 안전사고로 14명이 중화상을 입어 현재 3명이 숨지고 사망자가 더 늘어날 것 같다…유명가수의 교통사고는 크게 보도되지만 14명의 노동자가 중화상을 입고, 그중 3명이 사망하고 나머지는 병실에서 신음하고 있는데도 바르게 보도조차 되지 않고 있다.”

 이것은 산업재해의 심각성을 지적하면서 이를 다루는 언론의 태도에 분통을 터뜨린 어느 노동자의 신문투고 내용이다(<한겨레신문> 90년12월4일자).

 이 투고에서 지적한 사고는 지난 11월15일 오후 2시께 (주)풍산 안강공장(경북 경주군 안강읍 산대리) 202제조부 2QC개발공실에서 섬광탄 조립 도중에 발생했다. 피해자는 개발공실에 있던 작업자 전원으로, 2명의 여직원을 포함해 14명에 이른다.

 이들 중 한준식 이희자(여) 이광우씨 등 3명은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했고, 나머지 11명도 중화상을 입고 입원중이어서 사망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입원중이 송용수(31)씨를 간호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송씨의 누나 2명이 교통사고로 숨지는 불상사도 겹쳤다.

 안강공장은 ‘산재왕국 속의 산재 소왕국’이라는 별칭을 얻고 있다. 지난 2년간 이곳에서 발생한 산재사고는 70여건, 사망자는 6명이었다. 안강공장의 종업원수가 4천여명이므로 연간 1만명당 8명이 산재로 숨지는 것이다. 이는 산재발생률 세계 1위라는 우리나라의 평균치를 휠씬 웃도는 수준이다. 이 시기의 국내업체 평균 산재사망률은 1만명당 2.5명 미만.

 안강공장 노동자들은 수작업으로 포탄을 조립해야 하는 공정 특성 때문에 언제나 산재사고 위험에 노출돼왔다. 그렇기 때문에 노조쪽에서 산재문제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주)풍산 노동조합 안강지부장 朴世鉉씨는 “단지 방위산업체라는 이유만으로 노동자들은 그동안 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그러나 매년 화약폭발사고로 2~3명씩 죽어가는 상황에서 어떻게 안심하고 일할 수 있겠느냐”하고 목소리를 높인다.

 “풍산노조 안강지부는 88년 7월18일 정구일씨가 폭탄성능 시험작업중 폭발사고로 사망한 것이 계기가 되어 설립됐다. 안강지부의 역사는 곧 안강공장 산업재해의 역사다.” 1대 노조지부장을 역임한 후 해고되어 해고노동자복직실천협의회 회장직을 맡고 있는 鄭鍾吉(28)씨의 설명이다.

 

“회사의 과욕이 참극 불렀다”

 노조의 활동에 대해 회사와 정부는 89년 신년 벽두의 대규모 공권력 투입과 대량해고, 회사내 노조전담반 설치 등으로 맞섰다. 90년초 회사는 임금을 올려준 만큼 감원하겠다는 기발한 경영합리화 계획으로 사회적 물의를 빚기도 했다(<시사저널> 90년2월18일자 참조).

 풍산은 군수물자를 생산하면서 지난 20년간 급성장했다. 현재 안강을 포함한 전국 4곳에 공장이 있고 1만여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30대 재벌의 하나다. 이 과정에서 끊임없이 정경유착 의혹을 받아왔으며 일해재단 비리와 관련, 柳纘佑 회장은 89년 국회 청문회에 출석하여 증언하기도 했다.

 언론과 정치권의 무관심 속에서 이번 사고는 이 지역 노동운동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12월에는 풍산노조와 포항?경주지역 노동관련 단체가 중심이 되어 (주)풍산 폭발화재사고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위원장 朴世鉉)가 결성되었다.

 공대위쪽은 이번 사고와 관련하여 △제품개발실을 임의로 작업장화하였고 △4명이 정원인 작업실에 14명을 투입하였으며 △폭발물을 다루는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기존 작업자는 1명뿐이었고 나머지는 비전문 지원작업자였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안전교육과 안전설비에 대한 투자가 미흡했다는 점을 문제삼고 있다. 즉 노동자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은 채 연말에 몰린 물량을 무리하게 생산하려던 회사의 과욕이 이번 사고의 원인이라는 주장이다. 이는 3도 화상을 입고 대구동산병원에 입원중이 김덕룡(25)씨의 서면진술에서도 확인된다. 그는 “제일 큰 사고원인은 작업량을 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었던 것 같다‘고 진술한 바 있다.

 이상과 같은 이유를 들어 공대위측은 △사고에 책임이 있는 회사관리자와 노동부 산하 근로감독관 처벌 △안전대책 재정비 △안전과 관련한 인사?경영사항에 노조의 참여보장 등을 요구하고 있다. 더구나 풍산노조(위원장 이철규)는 지난 12월9일 발족한 ‘연대를 위한 대기업노동조합회의’(약칭 연대회의)에 참여하면서 “올해에는 산업재해를 분쟁이슈의 하나로 삼을 것”이라고 밝혀 이번 사고의 파장이 쉽사리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회사쪽에서는 처음 노동자의 부주위나 실수가 사고원인이라는 입장이었다가 최근 “이유야 어떻든 이번 사고로 피해를 입은 유가족들에게 최대한 보상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노조쪽  관계자는 이에 대해서도 “유족들을 회유하여 이번 사고가 사회문제화하는 것을 막으려 한다”고 비난했다.

 

사회 무관심속 대책없는 산재예방

 노동운동 관계자들은 이번 사고를 계기로 연간 2천명 정도가 사망하고 15만명 정도가 다치는 우리의 산재 현실을 다시 한번 돌아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88년 7월 수은중독으로 문송명군이 사망했을 때 쏠렸던 일과성의 관심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산업재해는 노동자의 생존권과 직결된 문제”라는 인식이 지속적으로 확산되기를 바라고 있다.

 우리나라의 산재현황을 살펴보면, 89년의 경우 1천7백24명이 사망하고 13만8백42명이 부상당했다. 보상금으로 지급된 3천6백93억원을 포함, 경제적 손실은 2조원에 가깝다(표 참조).

 80년에서 89년까지 10년간 사망자수는 1만5천7백5명, 부상자수는 1백37만9천여명에 달하고 경제적 손실액은 8조원에 이른다. 매 5시간마다 1명, 하루에 4명 이상이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셈이다. 10년간 전체 재해자수 1백39만4천7백여명을 10년간 전체 노동자수(약 7천만명)로 나눈 연평균 산재율은 2%다. 따라서 10년 동안 근무한 노동자 10명중 2명은 죽거나 다친다는 계산이 나온다.

 88년 통계를 기준으로 한 산재발생률은 다른 신흥공업국의 3배 정도이며 일본의 4.4배 수준이다. 90년 3/4분기까지의 잠정적인 집계만 보더라도 사망자수 1천6백77명, 부상자수 10만1천1백87명으로 89년에 비해 줄기는커녕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다.

 노동부의 이 통계수치는 ‘많이 축소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노동과 건강 연구회(공동대표 양길승?이원영)쪽에서는 집계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현행 노동부의 통계는 산업안전보건법?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라 요양이나 보험금 지급을 신청하고 승인받은 경우에만을 집계한 것이라는 것이다.

 이 집계에 포함되지 않은 산재는 우선 해당 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사업자의 경우, 산재보상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거나 요양승인을 받지 못한 경우, 노동자가 요양신청을 하지 않는 경우 등이다. 이중에서도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노동자가 요양신청을 하지 않는 경우다. 연구회가 경인지역 4개 주방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신청누락률이 80%를 넘는다. 노동부의 통계수치가 20%만을 대상으로 작성된 것이라면 실제 산재 건수는 5배 이상이 되는 셈이다.

 누락된 부분을 고려하든 안하든 산재왕국이라는 불명예는 씻을 수 없다. 이는 우리나라의 급속한 경제성장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 방재공업의학연구소의 李揆學(49) 소장은 “선진국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산업재해는 안강공장 사고와 같은 기계재해, 중금속오염 같은 화학재해, 고급직업병에 해당되는 전자기파재해 순으로 변화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선진국에서는 산재대책이 어느정도 마련된 시점에서 다음 단계의 산재가 부각되게 마련인데 우리나라는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세 가지 유형의 산재가 혼재돼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한다.

 노동부에서도 산업재해의 중요성을 감안, 3년 전에 별도의 출연기관인 한국산업안전공단을 설립하고 자체내에 산업안전국을 신설 운영해왔다. 하지만 노동부 관계자의 푸념처럼 “근로감독관 1명이 6백~7백개 사업장을 감독해야 하고 기업에 대한 강제규정도 미약한 현실”에서 산재예방 대책은 기업의 ‘시혜’ 차원에서 머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풍산 노동자들의 문제제기는 때늦은 감마저 없지 않다. 안강공장 사고는 산업재해 문제가 앞으로 노동운동의 전면에 떠오르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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