親政내각 출범 헌법 건망증 재발
  • 김승웅 편집국장대리 ()
  • 승인 1991.0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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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체협’ 발족 관련 朴哲 장관 기용 주목

 “親政 약체내각이다”-지난 12?27개각을 평하는 한 민자당 중진의원의 표현이다.

 5공시절 장관까지 역임해 5?6공의 權脈파악에 관한한 자타가 공인하는 ‘실력자’로 알려진 이 중견 정치인의 개각평엔 일단 수긍이 간다.

 이번 개각을 평민당은 “5공회귀적이며 냉전사고적인 인물들이 대거 등용된 개각”이라 평하고 있다. 또 민주당은 “민주개혁이나 경제안정이라는 국민의 요구에는 전혀 부응치 못한 개각”이라고 맞장구 쳤다.

 그러나 여야의 평가나 누가 새 감투를 썼느냐에 연연해 할 계제는 아니다. 적어도 이번 개각에서만은 준수됐어야 마땅한 헌법조항이 또 지켜지지 않은 채, 탈법개각이 되풀이됐다는 점이 문제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여야는 고사하고 언론조차 이 사실에 주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헌법은 “국무총리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하고 있다(62조).

 총리는 법조문 그대로 국회의 동의를 얻은 연후에 대통령이 임명해야 ‘합헌적’이다.

 군사정부가 들어서고 30년이 지나는 동안 계속돼온 이 탈법관행을, ‘민주화’를 최고명분으로 내세워온 6공정부가, 더구나 2년 남짓의 임기밖에 남겨두지 않은 盧泰愚정부가 한번쯤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깨부수기를 바랐다.

 국회의 동의는커녕 집권여당의 당내 동의마저 거른 채 임명되는 대한민국 국무총리 밑에서 ‘민주화’는 제대로 된 열매를 결코 맺을 수가 없다.

 집권세력은 ‘친정 약체내각’이라고 꼬집는 자당 증진의원의 평가를 자기들을 향해 등뒤에서 던지는 돌팔매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인물기용면에서도 문제점을 던진 개각이었다. 역대 내각의 컬러는 으레 신임 총리의 성품이나 기량에 의해 판가름나는 법. ‘약체 운운’의 평가는 결국 신임 盧在鳳 총리의 컬러가 약체이며, 이런 弱色 평가가 뒤따르는 이유는 노총리의 경력, 구체적으로 그가 20여년 남짓 정치학자로서 교단을 지켰을 뿐 정치실무나 관료무대에 선 것으로는 대통령특보와 청와대비서실장을 역임했다는 고작 2년 안팎의 취약한 경험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야당가에서는 2~3년 전 그가 학계로부터 ‘出廬’를 앞두고 했던, “광주사태는 김대중 평민총재의 ‘外廓을 때리는 노련한 정치기술’ 때문에 발생했다”는 민정당(당시) 연수원에서의 연설내용을 지금껏 ‘뼈저리게’ 기억하고 있다. 이번 개각이 한갓 약체조각이라는 차원을 넘어, 불신과 갈등을 더욱 조장시킬 개각으로 평가받을 요인이 될 것 같다.

 여야가 내각제개헌유보와 지자제합의로 가까스로 타협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판에, 왜 하필이면 약색의 학자 출신을, 그것도 당가에 두고두고 기억될 인물을 총리로 기용했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정가에서는 “집권여당의 정치수준이 이 정도”라고 개탄하는 소리가 높다.

 한편 여권은 이번 개각이 오는 3월부터 실시될 지방자치 의회선거에 대비, 신임 노총리의 자평대로 △정치권력의 非집권화 △정치권력의 非집중화 △행정권한의 대폭적인 민간이양 △국민정서의 함양 등을 노린 지자제 실시 준비내각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야권에서 비난하는 약체정부론에 대해 ‘그래야만 지자제에 가장 걸맞는 정부’라는 논리로 맞서고 있는 것이다.

 여권은 6공출범 이후 중첩돼온 정치적 난제들이 이번 지자제합의 실시를 기점으로 일단 해결된 것으로, 또 지금 같이만 순항할 경우 노대통령은 2년 안팎의 잔여임기 동안 적어도 국내 정치문제에 관한한 아무런 시련이나 도전을 받을 요소가 없을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굳이 있다면 내치문제가 아닌 외교문제, 구체적으로는 북방정책의 마무리단계인 남북한 정상회담을 잔여임기 내에 성사시키는 문제만 남아 있을 뿐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이 남북정상회담이야말로 한 핵심 정치인의 표현대로 “국내정치문제는 이미 다 승부가 난 판”이라서, 6공정부가 후대에 남겨놓고 싶어하는 득점요소로 치부되는 성싶다.

 이번 개각은 정부의 이같은 숨은 의지의 기술적 표현으로 볼 수도 있다. 지난해 6월의 샌프란시스코 한?소정상회담에서부터 대소외교의 사령탑을 맡아온 노재봉 비서실장을 총리자리에 앉히는 한편 북방외교의 구체적 구현과 일선업무를 맡아온 崔浩中 외무장관을 부총리겸 통일원장관에 승진기용한 점이 바로 그것이다.

 또 후임 외무장관직에 오른 李相玉씨가 노총리와는 서울대 정치학과 동기동창관계인 데다 최부총리와는 같은 대학 같은 과 선후배라는 점에서 盧?崔?李의 학맥 트리오를 형성한 ‘외교승부내각’의 진의를 읽을 수 있다.

 이번 개각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 李哲彦 체육장관의 기용이다. 체육부는 최근 지자제선거를 겨냥한 정치포석이라는 체육계 내의 거센 비판과 의혹에 상관없이 ‘전국생활체육협의회’를 발족시킨 바 있다(<시사저널> 61호). 따라서 ‘정치색’을 짙게 띤 그가 석달 후로 임박한 지방자치선거는 물론 총선?대선으로 이어지는 향후 정국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리라고 보는 사람이 많다.

 경제장관 가운데서는 李鳳瑞 상공장관의 발탁 이외에는 무풍인사였다는 점도 이번 개각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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