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 야당’ 재건해야 강력 여당 견제한다
  • 조용준 기자 ()
  • 승인 2006.05.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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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전당대회 분석/당 결속·화합이 급선무

민주당의 앞날이 순탄치 못하다. 92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선거 전략상 영·호남의 단순한 물리적 결합으로 태어났던 민주당은 11일 전당대회에서 그 결합을 연장시키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이번 전당대회는 민주당의 한계와 모순을 고스란히 보여줌으로써 유일 야당의 앞날에 상당한 시련이 있을 것임을 예고한다.

절반을 가까스로 넘어서는 득표율(53.02%)로 재산임을 얻는 데 성공한 李基澤 대표는 대표수락 연설의 첫 마디에서 “정통 야당?유일 야당의 대표로서 국민에게 위임받은 그 막중한 책임을 맡겨주신 데 대해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대표의 말마따나 민주당은 정통 야당의 뿌리를 이어내려온 정당인 동시에 현존하는 유일 야당이다. 따라서 민주당은 지난 대통령선에서 金泳三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은 유권자 58%를 자신의 품에 끌어안음과 동시에 거대 민자당에 비판?견제 세력이 되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민주당은 과연 그럴 만한 역량을 지니고 있느냐라는 질문에 대해 자신있게 ‘예??라고 답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대표를 선출하는 1차 투표결과가 나오던 11일 밤 9시경, 전당대회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金元雄 의원은 ??민자당은 개혁한다는데 여기는 이게 뭐냐. 저쪽은 컬러 텔레비전을 보는 느낌이다??라고 탄식했다.

컬러 텔레비전과 흑백 텔레비전을 빗댄 이말은 오늘날 민자당과 민주당이 처해 있는 상황을 명확하게 간파하고 있다. 민자당은 적어도 현 단계에서는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여러 형태를 일소하는 데 앞서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실사를 하지 않는다는 답답함은 있으나 정치인들의 재산 공개도 앞장서 추진하고 있고, 당 운영의 낭비적인 요소도 제거하고 있다. 소모적 정치자금을 줄이기 위해 지구당 폐지와 중앙당 축소도 검토하고 있다. 민자당 金宗鎬 정책위의장은 당사 주변 수수한 음식점에서 경제정의실천연합회 간부들을 만나 경제정책에 대한 건의를 듣기도 했다.

민자당의 이러한 개혁적 모습은 국민에게 여와 야가 뒤바뀐 것 같은 느낌마저 주고 있다. 이같은 과감한 개혁은 민자당이 이를 주도하기 이전에 ‘정통 야당??인 민주당이 벌써 실행했어야 할 부분이다. 참신성이라는 기준 하나만을 놓고 볼 때도 민주당은 민자당에 크게 뒤떨어진다. 최근 갤럽연구소의 여론조사 결과 민자당 지지도가 59.9%인 반면, 민주당은 3분의 1 수주인 21.7%인 것만 보아도 현재 국민의 마음이 어디에 쏠려 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민주당 지지도 민자당의 3분의 1

단적으로 말해 민주당은 위기의 시대를 맞고 있다. 여당이 먼저 주도하고 앞장서 나가는 형국이며, 민주당은 이를 뒤쫓아가기도 바쁘다. 이대표는 11일 전당대회에서 “군사독재 세력에 투항하고 그들의 힘에 의해 탄생한 김영삼 정권의 가장된 개혁??이라고 목청 높여 비난했다. 그러나 먼저 개혁을 실행하지 못하고 목소리만 높인 비난이라는 점에서 이대표의 주장은 설득력을 얻기 힘들다.

전당대회장에 나선 대표 및 최고위원 후보들의 정견발표에서도 이 나라의 정치상황과 관련해 미래지향적이고 비전을 제시해주는 내용은 극히 드물었다. 후보들마다 한결같이 ‘김심??을 팔기에 바빴고, 상대 후보를 비방하는 데 열중했다. 그들은 지금이 과거의 반독재 투쟁 경력을 강조하는 대신 국가의 장래에 대해 건설적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 시대이고, 대다수 국민이 그런 기대를 갖고 있다는 사실조차 망각하고 있는 듯했다.

대표 후보로 나선 金相賢 의원은 “金大中 선생께서 당을 떠날 때 7억원을 남겨두고 떠났는데, 그가 떠난 지 3개월 지난 지금 7억 5천만원이라는 막대한 부채가 생길 정도로 당운영이 대단히 어렵다??라며 당 재정문제를 잘 돌보지 못한 이대표를 간접 비난했다. 그는 또 ??최근 용팔이 사건 수사 과정에서 안기부가 공작정치를 위해 정계에 공작금을 줘왔다는 사실이 광복 이후 처음으로 밝혀졌다??고 말해 용팔이 사건과 이대표가 관련이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려 애쓰기도 했다.

이에 맞선 이대표도 결코 뒤지지 않았다. 그는 “일부 후보가 나를 헐뜯는 말을 하는데 참 가슴이 아프다. 얼마 전에는 내가 유신에 협조했다고 말을 퍼뜨렸다가, 姜昌成 의원(당시 중앙정보부 차장보?보안사령관 출신)이 아니라고 확인해주니까 슬그머니 말을 흐리더니 이번에는 용팔이 사건에 관련됐다고 음해하고 있다. 나는 이렇게 당하면서, 30년 동안 군사독재 정권에 의해 용공으로 음해당했던 김대중 선생의 심경을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고 맞받아쳤다.

전당대회장의 분위기도 위험스러울 만큼 과열됐었다. 대회장 곳곳에서 신민계와 민주계, 혹은 영남권과 호남권 대의원들의 감정 충돌이 끊이지 않았다. 2차 결선 투표에 앞서 김상현 후보와 鄭大哲 후보가 손을 맞잡고 대의원 앞을 지날 때 “김상현!??연호 구호가 터져나오자, 대구?부산 대의원들은 이에 뒤질세라 ??이기택!??구호를 크게 외쳐 대항했다. 그 넓은 체조경기장이 ??이기택!??과 ??김상현!??연호 구호를 뒤덮여 금방이라도 집단충돌 사태가 벌어질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경선이 끝나고 이대표는 ??이제 신민계도 민주계도, 영남도 호남도 없는 하나의 민주당이 됐습니다??라고 소리쳤지만 그야말로 선언적 의미에 지나지 않았다. 1차 투표에서 과반수를 확보하는 데 실패하자 이대표 사무실에서는 ??당을 쪼개고 나가자??는 대구지역 지구당위원장들의 목소리가 드높았다는 후문이다.

이처럼 이기택과 김상현으로 대표되는 민주·신민계 사이의 갈등은 좀처럼 치유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대표와 동교동 직계로 불리는 權魯甲 韓光玉 최고위원 등의 연대는 그들의 의도대로 전당대회를 무사히 치러내는 데는 성공했다. 동교동 그룹의 한 핵심 관계자는 “이대표가 민주계에 한광옥 권노갑 후보를 밀도록 정직하게 지시했다??고 인정했다. 그런데도 앞으로의 당 운영에서도 과연 그같은 단합이 가능하겠는가라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수석으로 최고위원에 재신임받은 金元基 의원은 ??일차적으로 당 결속과 화합 수습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해 경선 이후의 분열상이 심각하다는 것을 시인했다.

이대표와 동교동 직계 사이에는 당직 배분을 50 대 50으로 균등하게 나눈다는 합의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를 둘러싸고 벌써부터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대표는 2년 후의 전당대회에서 대통령후보로 선출되기 위해 지금부터라도 당 장악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 반면 동교동 그룹은 자파에서 2명의 최고위원이 나온 만큼 실질적으로 당권을 장악하려 할 것이 분명하다. 처음부터 이해득실에 따른 연대였던 만큼 두 진영의 연합은 화학적 결합으로 승화되기 어려울 가능성이 더 높다. 또한 당직의 균등배분밀약 등 반개혁적이고 케케묵은 구악을 답습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는 비난에서도 벗어나기 힘들다.

신민계·민주계 과연 없어졌나

민주당의내부 상황으로 볼 때 현단계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체질 개혁이다. 전당대회에서 모든 후보가 ‘강력한 민주당??을 외쳤지만 당 체질을 바꾸지 않고 강력한 야당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체질을 바꾸지 않을 때 국민의 지지가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유권자의 지지를 못얻는 정당이 강력한 힘을 가질 수는 없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가장 논란이 많았던 것은 대의원 선정에 관한 문제이다. 당초 예상을 깨고 뜻밖의 인물들이 최고위원에 진입하고, 당을 위해 당연히 지도부에 들어야 할 사람들이 탈락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민주당 관계자들마저 “대의원 자질 수준에 문제가 있었다??는 자탄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최고의원 투표함의 뚜껑이 열리자 ??金令培 金正吉 朴英淑 전 최고위원들은 당을 위해 최고위원 자리에 계속 있어야 할 사람인데 안타깝다??는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중부권의 한 의원은 ??당에 꼭 필요한 사람들이 뒷전으로 밀리는 꼴을 보니 이런 대의원 수준으로 미래를 개척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앞선다??라고 착잡한 심경을 토론했다.

대의원 자질 문제는 지구당위원장 자질과 직결된다. 거의 모든 대의원이 지구당 차원의 경선에서 선출되지 않고 지구당위원장이 임명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의 투·개표 관계자들은, 투표용지의 대의원 이름에 성과 가운데 이름이 같고 끝 글자만 다른 것들이 무더기로 나오자 매우 놀란 표정이었다.

“들은 말이 있어서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로 심할 줄은 몰랐다??는 반응들이었다. 상당수 지구당위원장들이 대의원 명단에 가족과 친척을 집어 넣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어떤 위원장은 자신이 임명할 수 있는 20명 대의원 가운데 12명을 친인척으로 채우기도 했다. 이는 여야를 막론하고 정당인 가운데 이른바 ??정치 철새??가 많음을 반증한다.

그러나 이 문제는 일부 몰지각한 지구당위원장이나 대의원 들만 탓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대표 경선 양상이 어느 누구도 우세를 점칠 수 없는 호각지세로 접어들자 대표 후보 세사람은 자파 위원장들에게 ‘이탈표를 방지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라??는 명령을 하달했고, 표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에는 친인척으로 구성한 대의원이 가장 적합하기 때문에 이런 어처구니 없는 경우를 그냥 눈감아 주었다. 당 지도부에서부터 하위당직자?일선지구당위원장까지 이어진 부패의 연쇄구조가 서로의 묵인 속에 인정된 셈이다.

현재 민주당에서는 지난번 대통령선거 때 거의 뛰지 않고, 선거 자금을 제대로 쓰지 않은 문제 지구당을 개편하는 일이 시급한 현안으로 떠올라 있다. 문제 지구당의 상당수가 민주계에 몰려 있는 편이어서 과연 이대표가 ‘과감한??개혁을 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개정된 민주당 당헌에는 원내총무를 경선으로 선출하도록 명시돼 있다. 이는 이번 전당대회를 기회로 민주당이 진일보한 부분이다. 이대표와 동교동 직계의 주류는 洪思德 孫世一 金台植 의원 가운데 한명을 총무에 밀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중 이번 전당대회에서 이대표와 권노갑·한광옥 최고위원에 대한 지원을 가장 많이 한 사람이 가장 유리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현재는 홍사덕 의원이 유력하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으나, 주류측 총무 ‘내정??을 위한 민주계와 동교동 그룹 간의 신경전이 팽팽하다. 원칙은 경선이지만 ??진정한 경선??이 손상당하고 있는 것이다.

“DJ 없는 과도기적 상황 수습했다??

민주당에서 개혁 세력의 입는 그리 넓지 않다. “보수 세력의 막내이자 개혁 세력의 맏형??을 자처하는 정대철 최고위원은 1차 투표에서 16.6%의 지지를 얻는 데 그쳤다. ??깨끗한 정치 모임??과 ??민주정치 개혁모임??을 주도하는 李富英 최고위원은 지난번 전당대회에 이어 이번에도 역시 8위로 가까스로 최고위원에 들었다. 다음 전당대회부터는 최고위원 숫자가 줄어들게 되므로 이 정도의 위치도 지키기 어려울지 모른다. 이번에 최고위원에 당선된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지난번보다 보수 성향이 훨씬 강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부영 盧式鉉 최고위원을 제외하면 거의 보수 색채가 같은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 모든 당내 문제를 아우를 체질개혁의 가능성은 매우 불투명해 보인다.

체질 개혁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이기택 대표의 지도력 문제이다. 동교동 직계와 연합해 ‘김심??을 등에 업고도 절반을 겨우 넘겨 득표한 데서 알 수 있듯 이대표의 당내 입지는 확고한 편이 못된다. 당내 기반이 허약하고서는 지도력도 결코 생기지 않는다. 더구나 그의 상대는 과거 그가 총재로 ??모셨던??김영삼 대통령이고, 그의 한참 선배인 金鍾泌 민자당 대표이다. 누가 보아도 정치력의 심각한 불균형이다. 이들과 이대표가 대등한 지도자가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이대표가 앞으로 어떤 노력을 하느냐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裵基善 비서실 차장은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김대중 선생 없는 과도기적 상황을 수습하는 일이다. 전당대회를 통해 이만큼이라도 정치적 공백을 메운 것이 다행이다. 이대표는 다음 대권 후보에 가장 가까워진 것이 사실인 만큼 이럴 때 그릇을 키워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기택 대표는 대표 취임 이후 △강력한 야당 재건 △97년 정권교체 두가지를 지상의 과제로 삼았다. 그러나 97년 정권교체라는 목표는 현 단계의 민주당으로서는 아직 ‘머나먼 다리??인 것으로 보인다. 정권교체를 위해서는 강력한 야당 재건이 먼저이고 필수이다. 그가 ??재건??이란 단어를 사용한 것은 ??민주당은 강력한 야당이 아니다??라는 실토와 다름 없다. 강력한 야당 역시 그냥 ??재건??되는 것은 아니다. 그 전에 과감한 체질 개혁이 요구되고 이대표 자신의 지도력 배양이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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